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 감독:스테판 프리어즈Stephan Frease
  • 원제:High Fidelity(2000) Cine:3130

1 # 거북이[ | ]

판돌이들에 관한 영화중 가장 재미있지 않은가 싶다. 주인공도 판가게 주인이고, 판가게에서 일하는 두 친구 역시 판돌이이다. 감독 스티븐 프리어즈는 연출력 자체가 그리 훌륭해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종종 소수자들에게 눈을 돌리는 모습을 보여주어 볼만은 한데, 이 영화는 다른건 몰라도 판돌이들에게만큼은 충분히 어필한다.

사실 판돌이들은 상당히 우울하게 묘사되기 마련인데 대표적인 인물이 판타스틱소녀백서에 나왔던 스티브 부세미이다. 판뛔기나 모을줄 아는 사회부적응자로 흔히 묘사되는거다. 이 영화의 죤 쿠삭은 그래도 자생력있는 판가게 주인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비관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소심한 직원 딕이나 오버하는 직원 배리같은 경우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어쨌든 언제나 베스트 5를 꼽는다거나, LP를 정리한다거나, 좋아하는 음악가를 두고 누가 더 좋다고 싸우는거나, 구리다고 생각하는 음악가를 비난한다거나, 여자 꼬시려고 좋아하는 음악을 모아 녹음해준다거나 하는 등의 모습들은 적어도 90년대 이전에 음악을 듣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참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나는 존 쿠삭의 방에 있는 얼추 만장 가까이 되는 것으로 보이는 LP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종종 보이는 BrianEno의 Before and After Science앨범이나 FrankZappa의 앨범들은 미국의 판가게를 한번 가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스토리 자체는 그다지 개연성없는 그렇고 그런 연애담이다. 나름대로 인기는 있지만 소심한 남자가 바보짓만 골라한다는 뭐 그런 얘기이고 이 연애담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에서 보아야하는 것은 판돌이들의 문화, 바로 그것이다. 좀 더 자세히 묘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긴 한다. 지금처럼 mp3로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LP시대의 이야기는 정말 고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에게 mp3만으로 음악듣는 것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도 알아줬으면 한다. 원제인 High Fidelity는 Hi-Fi라는 약자의 원어로 '고충실도'라는 뜻. -- 거북이 2004-2-14 11:22 pm

2 # 이동훈[ | ]

From: <mailto:the_last_lie@yahoo.com> To: <mailto:yebadong@yahoogroups.com> Sent: Monday, May 28, 2001 9:42 PM Subject: High Fidelity

어메리칸 뷰티 이후로 정말 볼만한 영화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차에... 그냥 어메리칸 뷰티 또 볼까하는 생각 도중에 (이미 8번 보았음, 대사 외움, 영어로 -^-;)... 우연히 탁~ 하고 눈에 꼬친 비뎌가 있었으니... 이름하야...

"사랑도 리콜이 되냐여?"

그냥 미친척하고... 비뎌를 뽑는 순간... 커버에 왠 '판 자켓?'...;; 역시 딱~하고 필이 꼬쳐서 빌려 봤습니다. -^-;;

너우 오래간만에 보는 비뎌라... 감동이 더했을 까요? 너무 좋게 봤습니다.

특히 바동처럼...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 특히 '음반'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강추하고 싶은 영화입니당.

제목은 무지하게 꿀꿀한데요... 이 비뎌의 제목은 저의 '최악의 영화 제목 번역 5'에 당당히 올랐 습니당.(원제는 high fidelity)

그냥 사랑 얘기는 아니구요... 사랑 얘기는 그냥 양념 삼아 나오고... 사실은 판 얘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음악보다는 판에 더 집착하는 페티쉬즘을 보여주더군요.
조아 조아 ㅎㅎ;;

잔 재미로는...

영화 보시면 아시겠지만... 주인공이 운영하는 중고 레코드점에 fantasric plastic machine, king crimson의 앨범 커버가 간간히 보이는데...
아마도 감독의 취향이 아닌가 합니당.
(나랑 비슷한걸? -^-;)

그리고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어서... 일본 반을 샀지 머야"라는 대사와... "느거덜 류이치 사카모토는 머할려고?"라는 대사도 재미있더군요.

그 외에도... 음악 팬이라면... 공감에 공감을 더할 이야기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아주 유쾌한 영화라 하겠습니당.

이상 끝.

동훈

ps : 내일 핑크 플로이드의 atome heart mother, meddle, ummagumma의 paper sleeve가 도착하는 군요... 아... 맘 설래랑. ㅎㅎ;;

3 # 신인철[ | ]

From: "Incheol Shin" <mailto:incheol.shin@vanderbilt.edu> To: <mailto:the_last_lie@yahoo.com>; "yebadong" <mailto:yebadong@yahoogroups.com> Sent: Tuesday, May 29, 2001 2:16 AM Subject: RE: High Fidelity

동훈님의 말씀처럼 정말 재밌게 봤던 영화에요.
어딘가 제가 올렸었던 감상평을 올립니다.

-- "Was my life miserable because I listened to pop music ?
Did I listen to pop music because my life was miserable ?"

분명히 씨디보다는 더 많은 정을 쏟았던 검은색 비닐 레코드가 빙글 빙글 돌아가는 모습의 도입부 부터 나는 이 영화에 쏘옥 빠져듬을 느꼈습니다.

극장가서 보는 외화, 돈내고 빌려보는 비디오보다는 티비에서 하는 한국 드라마가 더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한국 드라마에서 더 '공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좁은 아파트에 족히 몇천장은 될듯한 엘피 레코드를 늘어놓고 alphabetical order로 정리할까.. chronological order로 정리할까 고민하는 Rob (John Cusack)의 모습은 바로 몇년전의 내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Deep Purple 부터 Stephen Wolf까지 앨범을 그의 인생에 있었던 여러 사건들 -주로 여자들과 관련된 - 과 순서를 같이하여 정리하는것으로 합의점을 찾은 듯 했고 1983년 샀던 Fleetwood Mac의 앨범은 그에게 있어서 레코드 판이라기 보다는 그 당시의 추억이 농축되어있는 젊은날의 인덱스 인듯 했습니다.

Rob이 헤드폰을 끼고 엘피를 들으며 독백을 하는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많은 애들이 폭력적인 영화를 보거나 나쁜짓을 하는건 그렇게들 난리면서 왜 이런 온갖 꿀꿀함과 우울함과 슬픔과 괴로움이 농축되어있는 음악을 듣는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일까 ?"

"팝송을 들어서 내 인생이 불쌍한 것일까 내 인생이 불쌍해서 팝송을 듣는 것일까 ?"

청소년기에 꿀꿀한 음악을 들으며 혹시 음악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착각을 했었던 꿀꿀이들에게는 정말 35년만의 명대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Rob는 자신이 loser라고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그 궁상떠는 모습을 본 동거녀 Laura (Iben Hijejle) 는 헤드폰 잭을 뽑으며 그를 떠나고 Rob는 잠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발광하다가 Top 5 hearbreak in my life를 장황히 설명합니다.

Top 5 heartbreak Top 5 songs for monday morning Top 5 songs for a dead man

영화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Top 5는 역시 팝송 세대, 빌보드 캐쉬박스 차트 세대의 상징과도 같은 아이템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7학년때 첫 키스를 나누었던 첫사랑 하지만 그녀는 같은반 친구와 결혼을 해버렸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첫사랑과 결혼했다고 끝까지 우깁니다.
하지만 Rob는 technically는 내가 첫사랑이었다고 하죠

십대때 만났던 두번째 사랑 절대 가슴을 못만지게 해서 Rob를 안타깝게 했던 그녀였으나 누구와는 3일만에 같이 잤다는 소리가 들려 그녀 또한 Rob의 가슴을 무너뜨렸습니다

대학시절 만난 Charlie (Catherine Zeta Jones), Rob에게는 넘칠듯한, 너무나 고져스하고 너무나 섹시하고, 너무나 화제가 끊기지 않는 그녀역시 비오는 밤 아파트 밖에 서있는 Rob에게 절망과도 같은 hearbreak를 선사합니다.

이제 Laura 마저 Rob를 떠납니다.
Rob가 라이브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던 시절에 만난 lawyer Laura.. 노상 꿀꿀히 음악만을 들으며 몽상을 해대는 그에게 싫증이 난거죠.
Rob는 '나는 실연당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나는 도저히 행복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이건 모두 내가 실연과 꿀꿀함으로 비벼진 팝송만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립니다.

Rob의 직업은 레코드가게 주인입니다.
시카고 변두리의 중고레코드 전문점 Championship Vinyl이 그의 가게입니다.
이 가게에서 우리 음악 팬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너무나 공감이 가는 두 캐릭터를 만날 수 있습니다.

Dick: 작은 체격에 대머리를 삭발로 감춘 전형적인 음악-geek-nerd style

Barry: 키작고 뚱뚱한...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만이 최고라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시끄러운 음악 freak

Rob와 Dick이 듣고 있는 Dick 이 새로 가져온 Belle and Sebastian의 새 음악을 Barry는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fucking shit이라며 씨디를 집어던지고 음악을 바꿉니다.

"벨 앤 세바스챤.. 이게 음악이냐 !! 아침부터 웬 궁상이야 "

"니가 틀어놓은 음악은 어떻고 !!! 난 좋은 음악보다 내가 견딜 수 있는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어 !!!"

"이런 fuck !! 월요일 아침에 같이 들으면 좋을 음악으로 내가 어제 하루종일 고민해서 녹음한건데 !!
다음에 뭐가 나올지 궁금하지도 않아 !!!"

Barry에겐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만이 최고입니다 딸에게 선물로 줄 레코드 Stevie Wonder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를 사러온 손님도 Barry는 황당하게 쫓아냅니다.

"그 레코드 있어요 ?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있어"

"주세요 "

"싫어 "

"왜 ?"

"넌 그게 음악이라고 생각하니 ? Stevie Wonder가 70년대엔 정말 좋은 음악을 했지만.. 그렇다고 그따위 팝송을 부른 죄가 씻어질것 같아 ??"

"그래서 안팔겠다는거야 ?"

"그래"

"Fuck you !!"

이렇게 떠벌이던 '내가 듣는 음악만이 최고다..'라는 광적인 친구들을 우리는 쉽게 기억해 낼 수 있죠.

반면 Dick은 너드 스러운 생김처럼 조금 반대 성격의 음악 geek입니다.

"Rob 내가 어제 ????의 두번째 앨범을 다른 중고샵에서 샀거든"

"그래 ?"

"응 지금까지 재패니즈 임포트로만 있던건데 오리지널 엘피를 구했어... 녹음해줄께.."

"아니 됐어 "

"저번에 니가 일집 좋다고 했자나 "

"그랬었나  ?" "녹음해줄께.."

"됐어.. 사실 일집도 거의 못들었어..."

"그래도 니가 좋다고 했자나. 녹음해 줄께.."

"그래 알았어 !! 녹 음 해 줘 !!!!"

씨디로 구워준다고 했으면 좀더 2000년대 정서와 공감이 됐으려나요 ? 아뭏든 저런 친구들도 음악 좋아하는 무리들에는 꼭 한두명씩 끼어 있었습니다.

Loser처럼 살아가는 Rob지만 그에게는 나름대로 사업수완도 있었습니다.

"이제 Betaband의 3 EP's를 몇장 더 팔아볼께.."

- CD를 꺼내어 Betaband의 Dry the rain을 플레이 -

가게안에 있던 예닐곱명의 손님들은 음악에 맞추어 너도나도 어깨를 들썩거립니다.

"이거 누구야 ?"

"베타밴드"

"좋은데 ?"

"좋지 ?" -- 음악만을 들으며 하루 하루 낭비하듯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뭔가 인생의 전환점이 올 듯 합니다.

헤어진 여자친구.. Top 10 hearbreak list에 들까 말까 하다가 Top 5 heartbreak list로 올라간 Laura의 아버지가 돌아가십니다.

"니가 와줬으면 좋겠어 Rob.. 아버지가 너 좋아했잖아.."

"Ian도 오니 ?"

"아니 안와..."

Ian은 Tom Robbins가 분한 Laura와 바람난 이상한 음악을 듣는 윗집 남자입니다. ^^

"흑... 여긴 아빠가 나 어렸을때 자주 데려오던 곳이야..."

"음 그래 ?"

"나랑 섹스해줄래 ? 뭔가 다른 기분을 느끼지 않으면 팔이라도 태워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

"..."

"담배로 지져줄래 ?"

"아니 나 담배파는데 안보여서 지금 아껴 피우고 있는 중이거든"

"그럼 할수 없네 섹스 해야지 .. 가만 있어 내가 올라갈께"

우연이건 필연이건 Laura의 부친상을 계기로 그들은 다시 합칩니다.

더 이상 loser같은 Rob의 모습만을 볼 수없었던 Laura는 그의 디제이로서의 컴백 이벤트를 기획합니다.
Rob는 가게에서 레코드를 훔치던 10대 녀석들의 음반을 기획하고..
Loser에 지나지 않았던 '음악의 꿀꿀함에 희생당했던 자신의 모습'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듯 합니다.

클럽에서 다시 디제이 스테이지에 오른 Rob 더 이상 멍한 얼굴로 줄담배만을 피우며 레코드 가게 구석에 앉아있는 예전의 Rob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Rob가 그렇게 반대하던 Barry의 밴드의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Here's Sonic death monkey..."

그렇게도 꼴보기 싫었던 Barry는 영원한 Rob와 Laura...
그리고 그 일당들의 송가 Marvin Gaye의 Let's get it on을 정말 너무나 멋지게 불러줍니다.
Dick도 Greenday에 대한 해박한 지식때문에 사귀게 된 새 여자친구와 어울려 춤을 추고..
Rob는 Laura와의 새로운 인생.. 더 이상 loser가 아닌..
인생을 얻은듯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입니다.

-- 음악을 직접 하지 못하면서 음악을 듣는것 만으로 만족하고 ..그것이 인생에 있어서 큰 의미처럼 생각되었던 친구들의 아킬레스 건과도 같았던 그 아픈곳.
그 아픈곳을 Rob의 독백으로 찌르면서 영화는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lawyer로 잘나가는 Rob의 돌아온 여자친구 Laura는 'Critic으로서.. 음반 기획자로서의' Rob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었습니다.

Let's get it on. Barry의 밴드 Sonic Death Monkey의 그 쿨한 커버버젼처럼 Rob는 더이상 loser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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