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떠드는 소리 - 마스터피스

1 개요[ | ]

그냥 떠드는 소리 - 마스터피스
  • 2024-03-23 jjw

옛날 유럽에서 도시의 실질적 운영 주체는 길드였다. 적게는 수 십 개에서 많게는 백여 곳이 넘는 길드들이 얽히섥히 모여서 도시 운영위도 만들고 각자 사업장도 운영하면서 아웅다웅 살았다. 길드에 속한 "마스터"들은 본질적으로 자영업자들이었지만 도시 내 길드 사업은 전매특허를 받아 독점적으로 운영되었다. 당연히 조선의 금난전권처럼 뜨내기들이 여기 저기서 허가없이 장사하면 달려가 들어엎고 두들겨패고 쫓아냈다.

봉건제에서 농노는 거주 이전의 자유 따위 없었지만, 조선의 외거 노비는 뭐 허락받고 도망갔나. "도시의 공기가 자유를 만든다"는 소리가 있을 만큼 수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상당수는 그냥 거지가 되어 눌러앉았다. 그 와중에 여성의 대표적 부업은 매춘이었고, 남자애라면 먹여주고 재워주는 조건으로 길드의 도제가 되는 것 조차 행운이었다.

자본주의의 노동착취가 악랄하다고 하지만 근세 길드에 비할소냐 싶다. 갖 열이나 넘은 사내놈을 도제로 받으면 평균 14시간 이상을 부려먹었고 헛간이나 다름 없을 곳에서 감자나 던져주며 끼니를 때우게 하여도 아무 문제 없었다. 그래도 마스터에게는 한 가지 의무가 있었으니 도제를 교육시켜 언젠가는 길드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주어야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자기 사업장이야 아들 주고 말지 왜 남에게 넘기겠냐만 일단 도제가 다자라서 길드원이 되어 자기 가게 차리면 도시에 경쟁자가 느는 것이고 자기 수익이 주는 것을 뻔히 알면서 잘해보라 정착금마저 내주어야 하는데 그게 어쩐지 배가 아플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마스터들은 도제가 한 사람의 일꾼 노릇을 감당할 수 있는 직공이 되면 "이제 그만 하산하거라"하는 핑계로 내쫓았다.

직공은 길드 마크 박힌 외투 하나 받고 연장 챙겨서 떠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여기 저기 떠돌면서 일당을 받고 일했기 때문에 Journeyman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주된 썰은 오늘 일당 안받으면 언제 또 받을 수 있냐 싶어 하루 일한 삯을 그날 그날 받았기에 이렇게 불렸다는 거지만, 당시도 이미 하루 정도 걸리는 여행길을 journey of a day로 불렀기 때문에 이 마을 저 마을 흘러 흘러 다니는 떠돌이라 이렇게 불렀다는 썰도 있다.

이렇게 떠돌다 동종 업계 토박이 장인이 부족한 곳에 가면 대충 엉덩이 붙이고 거기서 살았다. 이렇게 터잡은 직공은 마스터로 인정받기 위한 시험을 치렀는데 그게 바로 "마스터피스"를 만들어 인정받는 것이었다. 유럽 민간 설화에는 마스터의 데릴 사위가 되어 사업장을 물려받으려는 직공이 이놈의 마스터피스를 만들지 못해 평생을 보내다 기다리다 지친 마스터의 딸이 그만 꼬부랑 할머니가 되서야 결혼했다더라 등등의 이야기가 넘친다.

아무튼 이렇게 하여 마스터피스라는 말은 "완성작"이나 뛰어난 "걸작"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생각해 보라, 시험 통과하려고 만드는 물건이니 자신이 가진 온갖 재주를 다 때려 넣지 않겠나. 반면에 일단 통과하면 아무래도 재료비 따지고 시간 따지고 적당히 만드는 게 맞지... (응?) 이 개념은 일본 애니메에서 언제나 초호기, 시험기, 개발품 등이 양산품을 압도하는 배경이 된다. 역시 장인의 나라.. (다시, 응?)

한편 조선의 외거 노비는 어지간 하면 산간으로 튀었다. 유럽의 봉건제와 달리 조선은 중앙집권제였기 때문에 구역 안따지고 쫓아다니며 잡았고, 도망자 입장에서는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산간에서 화전이나 일구는 쪽이 더 안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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