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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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미/종이부인/장지에 안료,돌가루/41x52cm /1996

<html><embed src=http://mukelink2.mukebox.com/link_player.aspx?sid=180627&code=0104E82C19347156C width=68 height=25 loop=1></html>Happy Heart / Andy Williams

권양은 첨에 날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 언니와 먼저 친구였는데 우리집에 첨 놀러 왔을 때 수더분하게 하고 다니는 언니랑은 달리 집에서도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을 입은 날 보고 왕재수 브르조아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은 그 옷의 디자이너와 같은 교회에 다녀서 선물 받은 거였고, 내 돈 주고는 못사는 옷이 생긴게 넘 기뻐서 집에서도 공주처럼 하고 있었던걸 우찌 알았으랴만... 여튼 그녀는 날 재수없다 생각했고, 나도 별 관심없이 인사만 하는 그런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집에 와 보니 그녀가 있었다. 이미 울언니랑 그녀는 어느 정도 취해 있었는데 조금 풀린 눈과 발음으로 현관에 선 날 보더니 '잠깐Jmnote bot (토론) 신발 벗지 말고 술 쫌 사온나~' 라며 진한 대구 사투리로 다짜고짜 말하는 것이었다. 뭐여.했지만 술이 고픈 그 맘을 이해 못할 것도 아녀서 사올테니 돈내놔. 그랬더니 '니는 브루조아 아이가아~ 돈 많은 니가 사온나!'라고 했다. 그 말에 발끈해서 냉큼 신발 벗고 들어온 후, 벽장에 꿍쳐뒀던 데킬라 한병을 꺼내서 그녀 앞에 '탁' 소리나게 두며 말했다. '야. 너 따라봐. 잘 따뤗' 예상 못한 나의 대찬 반응에 찔끔한 그녀는 얌전히 따르더니 '아이고 가시나 승질은. 사오믄 내가 돈 주면 될꺼 아이가. 근데...라임하고 소금 어뎄노. 그거 없음 데킬라는 파이다 아이가.. 헤헷' 그런 그녀를 보며 이미 스트레잇으로 홀짝 한잔을 비운 내가 말했다. '너 뜨리 잡 뛰는 브루조아 봤어? 봤어? 다시 따뤘!' 그렇게 우린 그날 밤 데킬라 큰병 하나를 비운 채 담날 둘 다 지끈거리는 머릴 싸 안고, 술국을 끓여 먹으며 친해졌다.

그녀는 턱턱 내놓고 말해서 거칠게 보이나 알고보면 다정한 성격의 소유자인데 여러가지로 일치기도 수준급이었다. 길거리서 소리 지르기부터 토하고 울기까지 그 뒷 처리는 항상 내 몫이었다만 맨날 니 잘났다, 내 잘났다 티격거려 가면서 다니는 동안 정이 들어서 어쩌다보니 베스트 프랜드가 되어 버렸다.

지난 몇년 권양은 남자도 없이 혼자 늙어간다고 날 무진장 불쌍히 여겼댔는데 그런 그녀도 쉬지않고 남자만 바뀌었을 뿐 나랑 별반 다른것은 없었으나 그녀는 나보다 자기가 낫다며 잘난 척을 했댔다. 그러다 드디어 내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더랬다. 할렐루야~ 우찌 만났냐고 묻는 그녀에게 '온..온라인...'하고 뻘쭘해 하면서 말하니 니가 나이가 몇인데 온라인 연애질이냐며 길 바닥에서 버럭 소릴 질렀댔는데 그 날 밥먹자, 술먹자 하더니 그때마다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안하던 행동을 하더니 '연애하면 원래 돈 많이 들고, 원거리 연애 할라믄 전화비 겁나게 나온데이. 내 이미 다.. 해본거 아이가'라 하며 웃었다.

기껏 시작했는데 일사천리였음 좋으련만 그러지 못해서 식욕마저 잃었던 어느날 선배의 생일 파티서 그녀를 만났다. 그날 권양은 유난히 실없는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응응 거리며 맞장구치던 날 빤히 보더니 갑자기 밥 먹으러 가잔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갔던 근처의 작은 식당 구석에서 샐러드를 먹고 난 후 메인을 기다리는데 권양이 말했다. '야야.. 잠깐 테이블에 엎디 보래이..' 이젠 얘가 뜬금없는 말을 할 땐 순순히 따라주는게 편하단걸 알기에 엎드렸더니 그녀 냉큼 내 머리위에 포크가 담긴 샐러드 그릇을 올려 놓았다. 뭐하는거냐고, 빨리 치우라는 내게 시끄럽다하더니 이야길 했다.

'니가 맨날 안그랬나..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아프다꼬. 맞제..? 울어삐라.. 여기 구석자리라 아무도 안본다' 그리곤 삐그덕 하고 의자 끄는 소리가 나더니 그녀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황당스런 상황에서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정말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내가 훌쩍 댈 때마다 머리에선 포크가 그릇에 부딪혀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코러스처럼 들렸댔다.

얼마나 그러고 울었을까. 갑자기 다다 거리며 달려 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 머리에서 그릇을 치웠다. 그리곤 '밥온다, 밥와. 묵자' 그러기에 고갤 들어보니 그녀의 눈과 코도 벌갰다. 으유 징한 가시나... 그렇게 벌개진 눈과 코를 한 두 여자는 디저트까지 싹싹 비워 버리고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지나야.. 니 이마에 아직도 시계 자죽 남았데이. 와 하필이면 그쪽으로 이마를 댔드노. 되게 웃기데이'라며 푸하하 웃었다. '누가 이렇게 했는데~~'하며 소릴 지르다가 나두 푸핫.하고 웃어 버렸다.

그런 그녀가 내 친구여서 참 좋다.



"황당스런 상황에서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정말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내가 훌쩍 댈 때마다 머리에선 포크가 그릇에 부딪혀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코러스처럼 들렸댔다."
- 이 대목 읽으며 많이 웃었는데요.
바뜨 잘 이해가 안 되기도 하네요.
왜 머리에 포크를 꽂은 샐러드 볼을 올려놔야 했던 건가요?
포크 또는 샐러드볼로 하여금 오야 씨를 관찰하게 한다,
즉 오야 씨를 드라마틱아이러니의 희생자로 만든다? 지는 굉장히 슬프지만, 상황은 암 것도 아니거나 절라 웃긴다... (껄적지근하고요)
그러나 그 아이러니를 보는, 즉 포크가 덜걱대는 소릴 듣는 사람은
결국 오야 씨 자신뿐이다.
그렇게 잘 배려된 채로, 오야는 스스로 그 슬픔을 극복하게 된다, (여기는 순조롭나?)
결국 극복 못할 순수한 슬픔은 없다, 특히 아이러니는 아주 힘이 세다...


모쪼록 그 친구분도 오야님도 무척 흥미로운 여인네들입네다.^^ -- Hicnunc 2004-9-15 10:33 am

음. 재미있는 분석이네요. 그런데 실상은 무지 간단해요. 두 팔을 이마에 대고 있던터라(학교 다닐 때 책상에서 엎드려 자던 포즈) 머리에 고 지지배가 그릇을 올려 놓았을 때 움직일 수 없었어요. 움직이면 그릇이 떨어질테니까. 그럼 그릇도 물어내야 하구.. 뭐 이랬죵. 여튼 울라면서 그러구 갔고, 눈물도 안나왔는데 그러구 있으니까. 그냥 눈물이 나왔어요. 걘 그때 아예 밖에 나가서 담배피다 왔다데요. (그런데 아이러니는 정말 힘이세요. 진짜에요... 소근소근) -- 오야붕 2004-9-15 11:15 am

오야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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