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풍물 운동

(노동자풍물운동에서 넘어옴)

1 개요[ | ]

노동자풍물운동 10년, 현황과 과제
  • 제 목:[문화]노동자풍물운동 10년, 현황과 과제 관련자료:없음 [87]
  • 보낸이:문태준 (taejun ) 1998-01-01 16:21 조회:20

전국노동단체연합 노동전선에 나온 글입니다.

노동자 풍물운동 10년, 현황과 과제

홍성민 풍물패 터울림

2 들어가면서[ | ]

올해는 87년 노동자대투쟁 10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그저 일상적인 사건의 주기적 개념으로 10년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총파업 투쟁을 경과하면서 우리는 10주년의 현재적 의미를, 노동자 민중의 힘을, 역사의 흐름 속에서 확인했다. 물론 그 의미가 하반기 투쟁으로 힘있게 이어지지 못한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지만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대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성과를 얻었던 계기였다.

노동자대투쟁 10주년을 맞이하여 제 부문영역에서 그동안의 성과와 한계를 정리하고, 현재적 계승을 위한 다양한 고민과 사업을 하였다. 문화운동영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노동자문화운동을 지속해 온 단위에서는 지난 10년을 평가하며 향후 도래할 지형의 변화 속에서 노동대중의 일상문화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제기 속에서, 단기적 사업과 중장기적 사업을 배치해 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글에서는 노동자문화운동의 영역으로 진행되고 있는 노동자 풍물패 사업을 중심으로 현재까지의 흐름과 발전적 대안 마련을 위한 제조건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3 풍물(굿)운동의 흐름과 현황[ | ]

3.1 풍물굿의 변혁적 특성[ | ]

풍물이 문화운동의 한 영역으로 되어 온 역사는 길게는 7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하는 탈춤 부흥운동의 영향을 일정하게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직접적인 역사를 보면, 농촌 뜬두레패 출신의 후예들을 중심으로 하는 민속촌농악대, 리틀엔젤스 출신들이 주축이 된 사물놀이패 흐름과 대학 농악떼 출신들이 실천운동의 관점을 가지고 진행했던 민족문화부흥운동- 풍물운동이 있었다 노동자풍물패의 모체는 80년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풍물운동으로 내용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계승한 적자이다.

풍물은 삶과 변혁의 무기로서 노동자문화 중 그 어느 매체보다도 자기 성격을 명확히 하는대표적 매체이다. 자세히는 언급할 수 없지만 풍물패의 치복(의상), 진풀이, 깃발, 풍물패 운영의 체계와 질서를 보면, 상당 부분 전투적 부대로서의 상징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예전에는 풍물이 연희집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두레라는 조직을 통해 그 자체가 생산과 방위(전투)단위으로서의 기능과 내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예전에 변방지방이었던 데서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풍물이 이런 기능과 내용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풍물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나 연희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어원적 의미를 보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풍물은 '바람을 일으키는 물건'이라 해석되고 연희의 한자 어원은 '창'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우리 민중은 놀이를 그저 풀고 마는 소비적 문화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산물을 지키고 생존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의미로 즐기고 창조해 냈던 것이다. 이러한 특성이 노동자 민중이 자신의 생존권을 사수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떨쳐 일어났던 87년 당시에 투쟁의 문화로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된 것이다.

3.2 노동자 풍물패의 역사적 흐름[ | ]

"동원된 느낌이었어요."

최근 2∼3년 간 노동자대회를 치루고 나서 풍물패들 대다수가 하는 평가의 주내용이다. 이는 노동자 풍물패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 상실이라는 현시기 노동자 풍물패가 겪고 있는 문제의식의 단면을 드러내는 한가지 예이다. 그럼 이러한 문제제기가 드러나기까지의 노동자 풍물패를 중심으로 한 풍물운동의 흐름과 현황을 살펴 보도록 하자.

노동자 풍물패는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함께 '1개 노조 1개 풍물패 건설'이 공식이라도 된 듯이 많은 수가 만들어지면서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 속에 자리잡아 성장하여 왔다. 87년부터 90년까지는 대부분의 풍물단체는 거의 하루에 2,3개씩의 풍물패를 조직하고 강습을 해야 할 정도였다. 이 시기 노동자 풍물패는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문선대의 선봉이었으며, 노동조합의 간부를 배출하는 통로였다.

87년부터 89년까지를 건설기라고 보면, 89년부터 91년까지는 안착과 성장기로 볼 수 있다. 문화학교 진행, 전국풍물패의 교류와 연대, 기수체계, 복색과 악기 갖추기 등, 이 시기에는 풍물패로서의 내용과 형식적 꼴을 갖추려는 노력이 진행되었다. 91년을 경과하면서 민주노조가 일정하게 성장하게 되면서 풍물패에게는 문화패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할 것과 내용을 성장시킬 것을 요구받게 된다.

93년 이후 투쟁이 일상적 활동으로 자리잡아 나가고 문선대적 활동이 주가 됨으로써 그동안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패원들의 다양한 성향에 따른 요구가 높아지게 된다. 그동안 관성적 문선대 활동의 병폐가 풍물패 내부에서 드러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또한 자본의 문화적 공세와 대중문화 속에 방치된 조합원들의 문화적 괴리 속에서, 풍물패는 서서히 조합원 대중으로부터 고립되고 스스로의 활동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 때 문선대와 문화패 분리 제기, 풍물패 일상활동 프로그램 개발의 제기, 문화적 역량의 강화와 대중적 전문성의 문제들이 고민되는 시기를 거치게 된다.

그러나 현실적 실현 가능성의 문제나 그동안의 활동에서 고착화되어 버린 문화도구주의적 인식이 쉽게 변화되지 못하면서, 현상적인 몇가지 사업들이 제안되는 데 그치고 만다.

최근에 풍물패에게 나타나고 있는 특성은 87년부터 맥을 이어오는 풍물패가 재조직되면서 취미적 동기를 가지고 결합하는 인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며, 지역을 근거로 새롭게 지역연합 등과 같은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사업적 효율성이나 자연스러운 조직화일 수도 있으나, 한편으론 지역의 문화담당자들이 없음으로 인해 스스로 활동을 모색해야 한다는 자구책의 일환일 수도 있다.

지난 10월 12일의 노동자대투쟁 10주년 기념 문화제와 11월 9일의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를 보면, 현재 문화패의 문예적 역량은 높은 수준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문화적 인식의 수준이나 문화사업의 주체로 묶어 세울 수 있는 인자들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 가능성 가운데에도 물론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대중적 확산이 되지 않고 있으며, 문선대와 문화패 분리를 통한 문화사업의 제자리 잡기가 관성과 현실적 문제로 인해 아직도 요원한 상태이다. 또 문화패를 지도하고 노동자문화의 내용적 성장의 중요한 주체인 문화단체들이 노동자 문화사업에서 서서히 다른 영역으로 자기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노동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일상문화가 미치는 영향과 문화사업의 중요성이 노동조합 운동에 정책적으로 반영되고 고민되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4 풍물굿운동의 과제와 전망[ | ]

올해 진행된 사업 중에 노동자대투쟁 10주년 기념 노동자문화제나 창조와 보급(노동자문예교육협회 발행)의 기획 좌담 '풍물운동 10년' 등을 통해 위의 문제의식들을 좀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문화제의 경우, 민주노총이 대선투쟁으로 역량을 집중하고 전반적 인식과 홍보 부족으로 문화패만의 잔치로 끝난 반쪽짜리 행사였다. 그러나 안정적으로 향상된 역량과 문화패로서의 욕구와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또한 노동자문화활동의 활성화를 위해서 문선대와 구별되는 문화패사업으로 문화제가 연례적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제기와 그러기 위한 조직적 틀을 문화패들을 중심으로 확립하고, 문화사업 담당부서와 인자의 확충 및 분발이 절실히 요구되는 계기였다.

기획좌담의 경우에는 교류와 연대가 부족했던 지방의 문화단체가 함께 자리하여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노동자문화활동의 발전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단체와 교사들의 전국적 교류틀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 중요한 자리였다.

노동자풍물패 및 노동자문화운동의 발전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몇가지 지점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현실운동 지형의 변화에 조응하는 정책과 실천의 모색이 필요하다. 내년부터 더욱 가속화되어 질 경제구조 조정에 따른 자본과 노동의 첨예한 대립, 대선 이후의 변화, 노동조합조직의 산별로의 전환 등이 노동자대중을 둘러싸고 어떤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이러한 변화들을 반영할 광범위한 문화적 틀과 실천이 시급히 모색되어져야 할 것이다.

둘째는 서구적 개념으로 분류하고 있는 장르나 매체의 개념에서 벗어나 풍물을 음악장르가 아니라 굿으로 인식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셋째, 노동자문화운동의 3주체(문화국, 문화패, 문화단체)의 위상 정립과 위상에 맞는 활동이 가능할 수 있는 체계와 내용이 시급히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국의 경우 민주노총 건설 이후 급속히 붕괴된 문화국 라인을 시급히 복원해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연맹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부터 문화국을 만들고 활동인자를 충원해야 할 것이다.

문화패의 경우 단사의 틀을 벗어나 산별연맹 체계로의 전환에 대비한 활동방식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며, 동원식의 문선활동에서 벗어나야 한다. 즉 길놀이나 북춤 등에서 벗어나 풍물굿이 가지고 있는 폭넓고 다양한 구조와 내용을 이해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노동자문화사업을 유지하고 있는 단체는 이제 급속히 축소되고 있으며, 그나마 남아있는 단체의 경우도 그간의 내용을 관성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함께 부를 노동가요가 최근 몇 년에는 창작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데 풍물단체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대부분 전문연행 집단으로 전환하거나, 그나마 지역은 상근자 1명으로 유지되는 단체들이 풍물패의 지도를 책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다시 노동대중의 정서를 읽어내야 하며, 단순히 강습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차원에서 벗어나 변화되는 지형에 맞는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폭넓은 공부를 할 때이다. 또한 노동문화단체의 전국적 네트워크의 형성이 시급하다.

재벌과 무능한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총체적 경제부도 사태로 총자본은 노동자 민중에게 책임과 고통을 전가시키고 있다. 그 어느때보다도 앞으로의 투쟁이 힘들어 질 것이다. 이 시기를 투쟁의 일선에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 투쟁해 왔던 문화패의 기질로 다시 한번 냉철한 가슴과 뜨거운 실천으로 넘어가야 할 것이다.(97.12.1)전선

5 같이 보기[ | ]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