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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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lGukHwa

제 목:Ж?국내 ROCK VOCALISTⅢ???전인권? 관련자료:없음 [956] 보낸이:성영훈 (neogury ) 1991-11-26 00:30 조회:137

? Ⅲ.전인권 ?

또 한 번 느끼게 되는군요.
유능한 가수들이 왜 자꾸만 대마초에 빠지게 되는지...
전인권씨는 국내 ROCK VOCALIST계보를 들�㎖마다 빠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지금은 비록 구속되어 있지만...

전인권씨는 데뷔 당시에도 그랬지만 현재까지도 ROCK VOCAL의 새로운 영역에 존재하는 인물입니다.
전인권씨에 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하지만, 제 기억으로 공식적으로 앨범을 내며 활동한 것은 "따로 또 같이"부터입니다. 하지만 그때 어떤 곡을 불렀는지, 또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관한 자료를 구하지 못했습니 다.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지식으로는 1970년대 중엽부터 활동했다는 것과, 따로 또 같이에 선 강인원씨와 함께 활동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것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제가 전인권씨의 디스코그래피를 만들기 위해 레코드점을 많이 뒤졌습 니다만, 아쉽게도 따로 또 같이 시절의 앨범은 없더군요.
제가 전인권씨의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건 1984년, 우리 노래 전시회 1집부터입니다. 이때는 들국화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기 전이었는데, "가요 계파"시리즈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당시 발라드와 트로트가 판을 치던 시절에 가히 혁명적인(?) 음악을 들려 주었습니다.
물론, 이 우리노래 전시회 1집은 아직도 명반으로 불릴만큼 가히 혁신적인 곡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세상"은 그때까지 듣지 못한 음악을 연출하였죠.
들국화의 곡이 혁신적이었던 것은 다른 요인도 있지만, 전인권씨의 예의 야수적인 보컬은 가장 큰 요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노래전시회 1집에도 "그것만이 내세상"은 전인권씨 노래로 올라 있습니다. 들국화가 아니고 요.) 여기서 잠깐 황인용씨는 전인권씨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보죠.
"그의 목소리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소리이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가을날 낙엽지는 거리가 생각나고, 차가운 바람이 느껴진다."
위의 말은 예전에 황인용씨가 "Young Pops"를 진행하실때의 평가였습니 다. 제 기억을 더듬어 본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요지 는 같은 것이었습니다.
전인권씨를 이야기하자면 "들국화"를 빼 놓을 수 없죠.
들국화에 관해서는 이미 "가요계파-동아기획편"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여기서 간략하게 다시 한 번 짚어 보기로 합니다.
들국화의 출범은 "우리노래 전시회 1집"에서 출발합니다. 당시 전인권씨는 따로 또 같이에서 나와 솔로 활동을 펴고 있었고요, 최성원씨는 우리노래 전시회를 제작하며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들국화의 시작은 전인권씨와 허성욱씨의 만남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당시 허성욱씨는 추계예대에 재학중인 학생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음악에의 뜻이 맞아 그룹을 만들기로 결정했고요, 멤버로는 최성원씨와, 세션을 하며 기타를 치던 조덕환씨(渡美)의 4명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1985년의 일이었습니다. 들국화의 앨범제작자로는 작곡가에서 음반제작자로의 변신을

꾀하던 김영씨였고요, 김영씨는 들국화의 성공을 바탕으로 "동아기획"을 일으킬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되는군요.
들국화의 앨범은 그 자켓부터 특이했습니다.
마치 Beatles의 Let it be 앨범을 본딴 듯 4명의 멤버들 얼굴이 네 귀퉁이 에 나왔는데요, 그때부터 전인권씨는 그 긴 머리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들국화의 데뷔앨범에선 "아! 대한민국"처럼 건전가요(?)가 히트했는데요, 바로 "우리의 소원"입니다. 그건 멤버들의 절묘한 화음이 바탕이 되어서 그랬겠습니다만...
들국화란 이름은,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멤버들이 차를 타고 가다가 그룹활동을 하려면 이름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처음에는 "코스모스"로 정했 다가 "기왕이면 우리 말" 해서 "들국화"로 정했다고 하더군요.
하여튼, 들국화는 1985년에 결성되어 국내에 rock음악과 live문화의 꽃을 피우며 활짝 피어 오르다가 1987년에 느닷없이 해체 하였습니다.
해체할때도 미국공연 후 조건부로 해체를 하였습니다. 1년동안 각자 솔로 활동을 하다가 다시 합친다는 것이었는데요, 그것이 또 시간이 흐른 후 1989년 경에 다시 합쳐서 고별공연을 하고 완전히 갈라섰지요.
그 동안에도 들국화의 멤버는 바뀌었습니다.
1집에 참여하였던 조덕환씨는 1집 후 미국으로 가버리고요, 1집부터 세션 맨으로 참여하였던 주찬권씨(드럼)와 2집에 참여하였던 최구희씨(기타; 그룹 "괴짜들" 출신)가 정식멤버로 참여하여 활동하였습니다.
들국화 해체 후 전인권씨는 허성욱씨와 함께 "추억 들국화"란 앨범을 내어 들국화 팬들의 마음을 달래 주었고요, 1988년에 솔로 1집을 발표합 니다. 이 앨범에서는 "사랑한 후에", "돛배를 찾아서", "돌고 돌고 돌고"
가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1집 발표 후에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전인권씨는 재산을 모두 쏟아 부어 "파랑새기획"이란 프로덕션을 만들면서 동아기획에서 독립합니다.
"파랑새기획"을 만든 후 첫작품이 1989년 10월에 나온 "지금까지 또 이제 부터 Ⅱ"(Ⅰ은 아직도 안나왔습니다.)입니다. 이 앨범에서는 "언제나 영화 처럼"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만, 제 개인적으로 권하고 싶은 곡은 "Last song"입니다. 들국화 고별공연때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이별의 아쉬 움을 잘 나타냈다고 느껴집니다.
솔로 활동 중에도 전인권씨는 그룹결성에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1집을 만들때 "파랑새"란 그룹을 조직하여 연주를 하였고요, 파랑새 해체(?) 후엔 또 rock group "가야"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만 앨범은 제작하지 못한 채 또 해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영화처럼"이란 영화에 출연한다고 했다가 영화가 제작중지 되어 버리며 소송에 휘말려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경제 사정이 얼마나 악화되었던지 자신이 쓰던 악기들을 처분한다는 광고를 했을 정도 였습니다.(연주인이 자신의 악기를 내놓을 때의 심정은 짐작이 가실 줄 압 니다.) 그리고선 한동안 조용하더니 이번에 갑자기 대마초사건에 휘말려서 구속되 었죠.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전인권씨의 매력을 꼽아볼까요?
우선 여러번 언급했습니다만, 야수적인 보컬입니다. 다듬어 지지 않은 듯 한 그 목소리가 오히려 더 매력적이죠.
두번째는 외모입니다. 잘 생겼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찌 그렇게 자기노래 에 맞게 생겼는지.... 노래만큼 독특한 외모의 분위기도 한몫을 하는 듯 합니다.
이 두가지 요인만으로도 전인권씨는 한국 rock역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 고 있습니다.
또 전인권씨의 발성법은 특이하기로 유명합니다. 발성연습을 하기 전에 달리기를 한다는군요. 한참 달려서 숨이 턱까지 차올때 발성을 시작한답니 다. 숨이 찰 때 목청껏 노래를 부르면 목소리에 힘이 붙는다고요. 그래서 그 특이한 목소리가 나오는 모양입니다.
전인권씨의 가창력은 어디까지일까요?
대체로 "돌고 돌고 돌고"에서 가장 고음을 냈던 것으로 기억 나는데요, 최고 3옥타브 B음(오선지밖 시음)까지 올라 갔습니다. 보통 국내 남자 가수들의 최고 높이인 듯 합니다.

전인권씨의 곡 중에서 몇 곡 추천해 봅니다.
들국화 1집 전체(워낙 명반이쟎아요.) 너는, 제발, 쉽게, 조용한 마음, 하나는 외로워(들국화2) 너의 작은 두 손엔(우리노래 전시회 Ⅱ;영화음악으로 쓰였음. 못들어 보 신 분들은 꼭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북소리, 어떤…(가을), 사노라면, 이유(추억 들국화) 사랑한 후에…, 돛배를 찾아서(무척 좋음), 헛사랑(전인권 1) Last Song, 새로운 달빛, 언제나 영화처럼, 웃고 살아요, Oh! My Love, 제발(지금까지 또 이제부터 Ⅱ)

그런데요, 이건 여담입니다만, 전인권씨의 부인이 그렇게 착하다고 하더군 요. 하긴, 웬만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텐데...
어쨌든, 전인권씨가 하루 속히 재기하여 그 사나운(?) 목소리를 다시 들려 줬으면...하는 마음입니다. 욕심같아서는 들국화가 재결성되었으면 좋겠 지만요.

마지막으로 전인권씨의 디스코 그래피입니다.
(제가 알아 본 모든 겁니다.)

우리노래 전시회-8人 옴니버스 (1984.) A.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이광조)/그것만이 내 세상(전인권)/비둘기에 게(시인과 촌장)/너무 아쉬워 하지 마(어떤 날) B.매일 그대와(강인원)/제발(최성원)/그댄 왠지 달라요(박주연)/이 세상 사랑이(양병집)/손모아 마음모아(건전가요)

들국화 (1985. 9.) A.행진/그것만이 내세상/세계로 가는 기차/더이상 내게/축복합니다.
B.사랑일 뿐이야./매일 그대와/오후만 있던 일요일/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우리의 소원

들국화 Live (1986.5.) A.Overture(고향의 봄/콰이강의 다리/오월의 노래)/쉽게/아침이 밝아올 때까지/행진/조용한 마음 B.He ain't heavy, He's my brother/나뭇잎사이로/(멤버소개)/축복합니 다./The best of time C.난 이제 내일부터는/Moonlight Flower(Piano Solo)/오후만 있던 일요 일/매일 그대와/더이상 내게/사랑일 뿐이야.
D.그것만이 내세상/행진(Reprise)/우리의 소원/Come Sail Away./앞으로 앞으로

들국화 Ⅱ (1986. 9.) 1.제발/하나는 외로워/너는/너랑 나랑/1960년 겨울/또다시 크리스마스 2.내가 찾는 아이/님을 찾으면/여기가/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쉽게/ 조용한 마음/우리의 소원

우리노래 전시회 Ⅱ (1987.) A.그런날에는(어떤 날)/코스모스(소리 둘)/무용수에게(강인원)/이 세상 사랑이(정희남)/북두칠성(박진영) B.너의 작은 두 손엔(들국화)/먼 곳에 있는 너에게(박주연)/나는 떠나가 야 하리(따로 또 같이)/기쁨 보리떡(시인과 촌장)

머리에 꽃을;전인권?허성욱 1979-1987 추억들국화 (1987.7.) ·시작곡/북소리/사랑한 후에/머리에 꽃을/여자 ‥이유/날이 갈수록/어떤…(가을)/사노라면

전인권 (1988.5.) 1.파랑새/사랑하고 싶어/돌고, 돌고, 돌고/사랑한 후에…/돛배를 찾아서 2.아침이 밝아올 때까지/가을비/헛사랑/아직도-/축복합니다

지금까지 또 이제부터 Ⅱ (1989.10.) A.언제나 영화처럼/웃고 살아요/Last Song/My First Song(Oh! My Love) /새로운 달빛 B.빨간 풍선/우리들의 사랑은/사랑을 줘/제발/Love

제 목:Ж 734번에 관한 손우석님의 보충입니다. 관련자료:없음 [957] 보낸이:성영훈 (neogury ) 1991-11-26 00:35 조회:43

이 글은 제 글에 관해 케록동의 손우석님이 보충하여 주신 글입니다.
저의 미비한 점을 채워 주신 손우석님께 감사드리며 추가자료로 올립니다.

손우석 (doldosa1) 들국화 보충입니다...

전인권씨가 본격적으로 가요계에 데뷔라면 따로또같이의 데뷔앨범이지요. 즉 창단멤버랄까요.
거기에서 '멤도는 얼굴'이란 노래를 불렀죠.
아마 여러분도 들으시면 아~ 이노래 라고 할겁니다.
그러나 창법은 전혀 다릅니다.
그 당시에 전인권씨는 성공할 수 있는 가수로 평가되지 못했습니다.
따로 또 같이 2집부터는 보이지 않죠..
그 이후는 음악적 공백기로 알고 있고요.
후에 목소리를 갈아서(갈고 닦은게 아니라 갈아서) 들국화란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그멤버는 '전인권','허성욱','조덕환'입니다.
한 6개월정도(정확하지 않음)의 연습을 마치고 무대에 선보였는데 그 무대가 롯데 크리스탈 볼륨이였습니다. 시기는 한 85년 12월쯤인가 겁니다.(이것도 정확하지 않음) 그 무대에서 몇곡을 불렀는데 he ain't heavy he is my brother와 carry on until tomorrow,아침이 밝아올때 까지 같은 곡일 겁니다. 그 무대에서는 들국화만의 무대는 아니었고 여러가수와 함께 나오는데 그중의 가장 돋보이는 존재였고 이 무대를 본 관객들의 입을 통해 들국화는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전 안가봐서 정확히 모릅니다만) 이 성공을 바탕으로 그후 얼마후에 파랑새 극장에서 최초의 들국화의 콘서트가 시작되는데 이때 레퍼토리는 styx,supertramp,위에 적은 곡들, 그것만이 내세상,사랑과 평화,holiday(scorpions),against the wind등 팝송위주 였습니다. 전 이 데뷔 공연을 직접관람했는데-그것도 공짜로- 조덕환이 삑사리가 참 많았습니다. 보컬은 전인권과 조덕환이 같이 했지요. 이때 축복합니다도 불렀었군요.
하여튼 이공연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들국화의 이름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공연마다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공연에 우정출연하던 최성원이 들국화의 성공에 안심이 되어서인지 가입을 하는데 가입시기는 앨범을 발표하기 얼마전인듯 합니다.
늦게 가입을 하죠.
앨범발표후는 잘 아시겠죠..
아 또 빼먹은것이 있는데...
조덕환씨는 사실 들국화에서 아주 중요한 존재이였습니다.
2집에 별볼일 없어진 것은 조덕환씨가 빠진데 있는지도 모르죠.
조덕환씨가 들국화를 탈퇴한 이유는 대마초 때문이였습니다.
조덕환씨가 낌으로 해서 들국화의 활동이 위축될까봐 빠졌던 것이죠.
마약으로 주목받던 인물이였거든요.
그리고 전인권씨도 들국화 데뷔당시에도 마약을 했으니 끊기는 힘들었겠죠.
아뭏튼 마약이 문제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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