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인터뷰2002

도사(道士) 혹은 투사로서의 락커

                               부도옹(不倒翁) 신중현

서... the Real Music 본... 자유로서의 락

       70년대의 노래들        대중과 대중적인 것        고문당한 락커        싸이키델릭(the Psychedelic)과 자유

결...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인으로서의 락커

프롤로그 - 리얼뮤직 문정동에 있는 작업실 의 무료 공연을 보러갔다. 신중현은 박수소리와 함께 광택이 나는 하얀 무대복을 입고 등장했다. 뛰융 뛰융 딩기닥닥... 뛰융 띠잉 딩기닥닥 딩기닥닥 기타줄이 몇 번 조율되고 난 뒤에 곧 연주는 시작되었다. <아름다운 강산>이었다. 쉰 듯한, 어딘가 막힌 듯한 노인의 목소리가 읊듯 가사를 외워 나갔다. “하늘은 파랗게 나무들도 파랗게, 실바람도 불어와 부풀은 내 마음” 몸과 얼굴에 비해 훨씬 커 보이는 손은 기타 현들을 빠르고 섬세하게 훑었다. 가슴이 부풀고, 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바로 눈 앞에서 죽지 않은 신화를 보는 감격과 설렘이었다.

연주하는 늙은 기타리스트의 얼굴은 무표정에서 고뇌로, 고뇌에서 환희로 변주되어 갔다. 깊이 눈을 감고 주름살을 만들어 고뇌를, 눈을 감은 채 입을 벌려 음에의 도취를 표현했다. 고뇌를 기본으로 한, 초월과 고집이 얼굴에서 나타나고 사라져 갔다. 그 이미지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 고집쟁이, 절대 비타협이면서도 ‘불기(不羈)’(1)하는 오뚝이였다. 단구(短軀)와 짧게 자른 백발 아래의 얼굴이 무엇을 닮은 것 같다고 한참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부도옹(不倒翁)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등소평(2)과 아주 닮은 것 같다. 등소평은 한 평생 혁명가였고 개혁가였고 절대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았었다. 또 한편으로 신중현이 기타 치는 모습은 어느 문파의 장로(長老)가 초식을 하는 모습 같다.무념ㆍ무상 속에서 지르는 소리와 나가는 품세는 쉬지 않고 수련한 수십 년의 세월을 느끼게 한다. ‘한국 락의 대부(代父)’라는 그는 실제로 80년대 이후에 도를 닦는 마음으로 음악을 하고 있다 한다. 66세에도 현역 록커이려면 도를 닦지 않고서 불가능할 듯하다.


1) ‘도덕이나 관습 따위에 얽매지 아니함, 재능이나 학식이 남달리 뛰어나 일반 상식으로는 다루지 못함 - 표준국어대사전’ 2) 중국 혁명의 전과정과 문화혁명의 과정 속에서 1979년 이후 중국의 개혁 개방을 지도한 현대 중국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단구(短軀)와 유연하고도 단호함으로 유명했는데 그의 별명이 부도옹이었다.


공연은 70년대의 명곡들, <아름다운 강산>ㆍ<빗 속의 여인>ㆍ을 거치고 ㆍ 같은 90년대의 곡들로 이어졌다. 90년대의 곡들은 훨씬 더 정신주의적이면서도 빨랐다. 가장 수준 높은 보칼리스트들이 불렀던 70년대의 곡들보다는 보다 본격적인 연주가 들어있는 90년대의 곡들이 더 귀에 깊게 들어왔다. 이런 음악들에서 신중현은 고유한 정신과 멋으로 이루어진 ‘한국적 락’을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공연은 싸이키델릭 조명과 피어오른 드라이아이스 안개 속에서 숨막힐 듯한 기타 솔로와 기타를 부수는 퍼포먼스로 끝났다. 원래적인, 또는 ‘좁은 의미의’ 락의 의미에 더 가깝게 말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나는 신중현과 마주 앉았다.

> 어떻게 무료공연을 하기로 하신 건가요? = 저 같은 경우는 나이도 많이 들고 남은 날이 많지 않거든요. 많은 분들이 아니라 해도 ‘리얼 뮤직’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이런 공연을 하게 된 겁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음악성’이 존재하지만 저는 평생 리얼뮤직을 주장해왔거든요. 우리 음악 문화의 한 페이지만에라도 이런 음악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죠. 새로운 라이브 공연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어요. 대중들과 밀착해서 내 음악성을 이해하게끔 하는 게... 이런 것도 괜찮다 싶어서요.

> 리얼뮤직이 뭔가요? 전혀 가식이 없고 다른 거 꾸미지 않고, 공연장에서 있는 그대로 실력대로 살아있는 음악의 음을 들려주는 게 리얼뮤직이죠.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이런 게 정말 값진 거라 생각하고요, 이런 값진 걸 대중들한테 나눠주고 싶은 거죠.

노대가는 단지 두 사람의 세션, 나이 지긋해 보이는 드러머 하나, 베이시스트 한 사람과 함께, 그리고 상태가 그리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앰프가 있는 좁디좁은 공연장에서 연주했다. 이날 관객은 많이 봐야 70명쯤이었다. 리얼뮤직? 공연을 보고 나서라 그런지 이 단어는 강하게 느껴진다. 통조림에 담기지 않은, 기계로 양식되지 않은 ‘진짜’, ‘음악’은 있다.

1 #[ | ]

중간생략 중간생략 / 완전버전은 퍼슨웹에 가셔야...

결 :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인으로서의 락커

‘저주받은 천재’라느니 ‘시대로부터 외면당한 음악가’라는 신중현에 대한 클리셰는 일면만 맞는 말인 듯하다. 긴 고난과 잊혀짐에도 불구하고 신중현은 90년대 이후 ‘한국 락의 대부’로 복권되었기 때문이다. 97년, 1급의 뮤지션들에 의해 한국 최초의 헌정 음반이 만들어지고 헌정 공연이 열렸다는 사실이 이를 충분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대단히 큰 명예를 가져다준 이러한 재평가도 끝까지 지고가야 할 고립과 고난을 없애지는 못한다. 락은 절대로 주류가 될 운명에는 있지 않기 때문에, 고립과 가난은 영원한 동반자이다. 지금 신중현이 보여주는 것은 영원자 동반자들에 대한 여전한 투쟁과 노력이면서도, 한편 초극이다. 투쟁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66세의 그가 70여명의 관객들 앞에서 2주마다 한 번 무료공연을 하는 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극은 무엇인가.

  • 선생님은 도를 추구한다 하셨는데, 그 도가 무언지 좀 말씀해주세요.

> 도가 뭔지 말한다면 도가 아니겠지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진 삶의 방법이나 경험해서 얻은 깨달음이 있겠죠. 그게 도일 건데, 제 나름대로 많은 시간에 걸쳐 얻은 진리와 방법과 깨달음’을 감히 도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도인만 도가 아니라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80년대 중반부터 노장(老莊)을 읽기 시작했다는 신중현은 ꡔ도덕경ꡕ에 나오는 첫 대목으로 답을 시작하였다. 그 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기타 주법에서는 이른바 3-3주법이라 했고, ꡔ김삿갓ꡕ의 단계에서부터 만들어진 정신주의의 음악인 것만으로 짐작이 된다. 그런데.

  • 선생님의 인생을 보면, 오뚝이처럼 쉼없이 방해하는 것들, 좌절과의 싸움인 듯합니다. 타협하지 않고 한 길을 오게끔 한 힘은 무엇입니까?

> 그게 도인데요. 제가 도라고 나름대로 부르는 것은 많은 시간에 경험하고 깨달은 것이 정리가 되기 시작한 시간이 되니까 감히 도가 어쩌고 그러는 건데요. 저는 제가 나름대로 깨달은 것을 음악과 건강에 결부시키고 있는 건데요. 도는 인간이 더 넓어지고 무한대로 나아가는 길이죠. 늙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이고요. 즉 젊은 세대가 할 수 있는 주법이 있는데, 그럴 것을 벗어나서 넓은 다른 방법을 보는 거죠. 그러면 한계를 벗어나서 광범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느끼는 거죠. 그러면 더 살 수 있고 희망도 볼 수 있는 거죠. 희망이 보인다면 사람들이 조급하지도 않을 거예요. 젊을 때는 항상 빨리 돈 벌고 성공해서 빨리 잘 살아야지, 이런 생각 때문에 급하고 여유가 없는데요. 그러다 보면 자기를 망각하고 망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이런 진리가 있는데 노인이 하는 걸 보고 한 번 생각해보라는 의미에서 제가 지껄이는 겁니다.

이 대목에서 ‘도’는 어떤 진리의 형식이자, 나이 든 사람이 택할 수 있는 삶의 방법이다. 특히 노년에 관한 신중현의 말은 귀에 깊이 울린다. 노년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또다른 출발일 수 있다는 저 깨달음. 그래서 이 때에도 삶의 ‘전략’이 필요하다. 심지어 희망이 있는데. 물론 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단계를 훨씬 넘는 전략 너머의 전략일 것이리라. 이렇게 되면 나이 먹는 것이 두렵지 않아질 테지만, 그 경지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배우려 해도 아직은 불가능하다.

ꡔ그리스인 조르바ꡕ에서 조르바는 ‘젊은 것들은 사람도 아니라’며 “사물을 제대로 보고 생각하려면 나남없이 나이 처먹어 분별이 좀 생기고 이빨도 좀 빠져야 합니다. 이빨 하나 없는 늙은이라면 <안 돼, 얘들아. 깨물면 못 써>하고 소리치긴 쉽습니다. 그러나 이빨 서른두 개가 말짱할 때는... 사람이란 젊을 동안은 아주 야수 같은가 봐요.”(그리스인 조르바, 35쪽)라 했다. 이와 흡사한 요지의 말을 신중현은 들려주었다. 지금의 자리에서 돌아 본 자기 인생의 교훈이자, 스승의 한 사람으로서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30대가 되고 난 뒤에, 내가 20대가 아니라는 사실에 깜짝 깜짝 놀라거나 혹은 스스로에 대해 혐오증을 내기도 한 나는, 다음과 같은 신중현의 말을 조로(早老)를 방지하기 위한 약(藥)으로 삼기로 했다.

> 나이 들었을 때 오히려 자기 위치가 중요하거든요. 젊었을 때만 인생이 아니예요. 사람이 인생의 길이 100년 이낸데, 제가 나이 들어서도 기타치는 거도 바로 그런 이유인데요. 노년기에 들어서서 자기 위치가 없으면 허전한 거예요. 젊었을 때는 상관이 없어요. 뭘 하든지 간. 그런 거를 저는 강조하고 싶어요. 인생이 뭐냐? 요새 노년에 와서 인생이 진짜구나 하고 느끼는 건요. 이제 와서 모든 걸 어느 정도 알 거 같아요. 세상을요. 음악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살아가는 방법도 그렇고.... 노년기에 들어서 이제 진짜 눈이 트이는 거예요. 그게 진짜 인생이 아닌가? 그렇다면 조급하게 생각할 게 하나도 없고, 20년이고 30년이고 진득하게 자기 하고 싶은 거를 하면 되거든요.

(끝)

2 # 촌평[ | ]


신중현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