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우디

2002 10 14 月 : 아 가우디[ | ]

아침을 먹었다. 어째 우리는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밥을 잘 챙겨먹는 거 같다. 서울에 있을때는 늦게일어나 출근하느라 아침을 잘 못먹는 일이 많았다. 런던에 있을때는 저녁도 걱정 안해서 마음이 편했는데 여기서는 저녁 걱정을 해야하긴 하구나.
투어버스를 끊었다. 더블린과 에딘버러에서 투어버스 타고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훗 우리는 저런거 안해라고 했었는데 그렇게 되었다. 말도 안통하고 그 도시들보다 움직이는 규모도 훨씬 크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사실 이런 것들을 운영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나저나 시티 투어 버스를 타고다니면 스페인어 설명이 주로 나오기 때문에 당연히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지만 계속 안토니 가우디라고 말하는 것은 알아들을 수 있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 덕에 먹고사는 것 같다. 바르셀로나에 오는 관광객들 대다수는 가우디를 보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오늘은 날이 너무 좋아 덥기까지 하다. 지금 시월인데 파리가 날아다닌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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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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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장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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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장 천장부

채석장의 옥상에 앉아 땡볕을 받으며 이렇게 글을 적는다. 여기의 원래 이름은 까사 밀라인데 건물이 하도 요란하고 벽의 질감이나 생긴 것 때문에 채석장La Pedrera라는 별명이 붙었다. 가우디는 정말 독특한 인간이다. 지붕의 구조는 고래 갈비뼈처럼 만들고 굴뚝인지 환기통인지는 기갑병 얼굴처럼 만들었다. 이 기갑병들의 생김새는 어릴적 가지고놀던 프라모델들의 메키닉과 느낌이 비슷하다. 그런가하면 테이트 현대 미술관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는 보치아니의 청동상과도 느낌이 비슷하다. 이 기갑병 얼굴은 성 가족 성당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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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기갑병과 깨진 유리병 기갑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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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장 측면부와 옥상에서 더워하는 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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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감때문에 채석장이라는 별명이 붙은거다.

우람과 함께 성 가족 성당이 보이는 곳에서 스페인의 고유한 볶음밥인 빠에야paella를 먹었다. 간만에 사람 먹는거 같은 점심을 먹는다. 그동안 아일랜드와 영국에서는 물가가 비싸 빵쪼가리나 먹고다녔다. 물론 여기도 싸진 않다. 한 만원쯤 했나? 그리고 입이 심심해서 쫀득거리는 불량식품을 이것저것 섞어서 샀는데 이게 꽤 비싸다. 스페인에서는 꿈틀이가 비싸니 주의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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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족 성당의 서쪽에 있는 수난의 면, 잘 보면 기갑병 얼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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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 있는 탄생의 면.

여기는 성 가족 성당La Sagrada Familia의 한 옥수수 위이다. 밖에서 보거나 사진으로 보면 잘 모르지만 이 옥수수들은 서로서로 이어져있다. 여기서 보니 당혹스럽기까지한 바르셀로나의 격자식 도시구획도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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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자 모양의 바르셀로나 시 전경.

생각보다 성 가족 성당은 별로 볼 것이 없는 공사판이다. 멀리서 보면 옥수수들이 장엄해보이지만 가까이 와보면 지하는 부실한 가우디 박물관이고 위는 공사중이라서 장엄미는 싹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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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판 성당. 이들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상업적 목적을 위해 계속 신화를 만들것이다.

이 황당한 건물은 19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계속 짓고있는데 여기를 걸어올라가는 나에게는 정말 여러가지 의문점들이 꼬리를 문다. 왜 인간은 이렇게 높이 올라가고 싶어하는가. 왜 가우디는 이런 기괴한 성당을 짓기시작했는가. 왜 교단은 이런 인간에게 작업을 맡기고 무려 40년동안 믿어줄 수 있었는가. 이 인간을 용인하고 작가로 대접했던 바르셀로나와 까딸루냐의 문화는 과연 무엇인가. 도대체 어떤 미의식이 응결되면 이런 괴물이 나올 수 있는가. 이해되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사람들이 하도 꼭대기 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어서 나는 걸어올라갔는데 우람은 굳이 기달려서 타고 갔다. 올라가봐야 만날 수가 있나. 이렇게 우리는 미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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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의 계단. 아주 좁다.

지중해의 바람이 옥수수 안의 나를 쓰다듬고 간다. 그나저나 옥수수 안에 사람들이 낙서 무지하게 많이 해놨다. 어디나처럼 누구는 누구를 좋아한다~ 내지는 누구누구가 왔다가다 따위다. 역시 느슨한 스페인!

올라오다가 목이 타길래 바닐라와 코코넛을 섞은듯한 음료수인 Choleok(1l/2E)을 사먹었다. 굳이 이런 것의 이름까지 적어놓은 것은 이것이 꽤 맛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거 중독성이 있는지 계속 먹고싶어진다. 1리터나 되는데 혼자서 거의 다 마셨다. 아웅~ 더워서 앞으로는 반바지 입고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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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본 구엘 공원

여긴 구엘 공원Parc Guel이다. 가우디가 진짜 위대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바로 이 구엘 공원같은 것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저택, 노동자들의 공장, 공원, 성당, 별장 심지어는 길거리 가로등까지 인간과 관계된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디자인했고 설계했다. 그는 결코 부르주아적 취향을 가진 인간이 아니었고 단지 인간의 삶이 주변과 어떻게 합일 될 수 있는가에 관심이 있는 그런 예술가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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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 하나도 이렇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얼굴은 이 구엘 공원에서 가장 첨예하게 나타난다. 가우디는 여기서 깨잔 타일을 이용해 뽀얀 이미지를 만들고 있으며 특유의 곡선을 살려 동화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고 으례 그랬듯 곡면과 유기체의 묘사로 친숙한 분위기를 만드는거다. 여기 있는 용과 도마뱀은 이 공원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그는 낭만적인 인간이었을게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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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찍한 도마뱀 그리고 용을 패고있는 거북

이 공원은 처음에는 몇몇 사람들의 공동 주거단지로 계획된 것이다. 즉 몇몇 사람들이 건물을 만들고 살면서 모두의 뒷뜰을 공유하는 그런 것 말이다. 즉 그다지 여긴 공적인 공간으로 계획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건물은 세채쯤 짓다 왠지 그만두었고 뒤에 건물 하나에서는 자기가 살면서 자기 뒷뜰로 삼았다. 그러다가 구엘의 아들이 시에 땅을 기증하는 바람에 시민들을 위한 공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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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쪽의 건물

하지만 이 공원은 철저하게 인간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되었고 그런 것을 볼 때마다 가우디라는 인간의 치열함에 숙연해진다. 일단 이 공원은 매우 중층적으로 구성되어있다. 입구로 들어오면 계단과 지하수가 나오는 도마뱀 등이 맞아주고 양 옆에는 건물들이 있다. 그 계단을 올라가면 타일 모자이크로 뒤덮인 천장을 여러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공간이 나오고 그 왼쪽에는 공터가 오른쪽에는 산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는 정원이 있다. 그 위쪽이자 뒤쪽에는 산책로가 있고 그 위쪽이자 뒤쪽에 또 산책로가 있고 이런 식으로 꽤 높게까지 산책로가 마련되어있다. 가우디는 가능한 이 곳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작업했으며 굳이 대칭성 따위를 강조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중층적인 구조를 만들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산책할 수 있는 공간과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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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 모자이크로 뒤덮인 천장을 여러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공간. 이런 공간을 뭐라고 하지? -_-a

그리고 그는 미학적인 면에서 거칠고 섬세한 것,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것, 인공적이고 자연적인 것이 구분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즉 그것은 단지 관점의 차이일 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말하고 있는것이다.

  1. 그는 산책로를 닦을 때 흙을 파내거나 묻거나 하지 않았다. 산책로 자체는 등고선과 평행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파인 지형에는 다리를 놓았다. 이것으로 그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선 위에 조금 더 진한 선을 긋는 것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1. 그가 사용한 타일 조각들은 가까이서 보면 미려하게 구성되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조금만 뒤쪽에서 바라보면 그 형태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매우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그는 '채석장'에서 깨진 병까지도 타일조각처럼 쓰고있음을 기억하라.) 그런가하면 마냥 따듯해보이는 색채 사용이지만 사실 그가 구성한 동물들이나 조형물들을 살펴보면 결코 따듯하지만은 않고 차가워보이기도 함을 느낄 수 있다.


  1. 그리고 여러 중층적 산책로 중 하나의 왼쪽에는 명백하게 그리스 신전을 의식한 듯한 기둥들이 있어 그 위의 툭 튀어나온 눈두덩같은 부분을 받치고있다. 하지만 그 기둥들과 천장은 모두 자연석을 쌓아 만든 것이라 곱지 않고 투박하며 여기저기 삐죽 삐죽 튀어나와있다. 그런데 그것을 조금만 뒤쪽에서 바라보면 부슬부슬한 흙같은 질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 공간에서 difusa라는 재즈 밴드가 공연을 하길래 나는 앉아서 가만히 들었다. 귀에 쏙쏙 박히게 울리는 그 소리는 나에게 공감각적인 쾌감을 안겨주었다. 잘 듣고 나는 그들의 CD를 한장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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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공간, 거기서 연주하던 재즈 밴드 difusa

즉 그는 거친 것으로도 얼마든지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음을 알고있었고 이는 인상파의 방법론과도 유사한 것이다. 그는 무질서처럼 보이는 것에 엄정한 질서가 있고 그것이 자연임을 명확히 알고있었던 것 같다.
건축이나 조경이 미술과 다른 것은 미학적 관점은 물론이고 거기에 기능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건축가가 되는 것은 훌륭한 예술가가 되는 것보다 어렵다. 그는 정말로 훌륭한 건축가다.
그나저나 구엘 공원의 유명한 벤치에서 한참 삐대고 있었더니 우람을 만났다. 이놈도 나를 기다리다 구엘공원으로 왔겠거니 싶어 이쪽으로 왔단다. 둘이 모두 노인관광을 즐기니 노인관광의 결정체인 벤치에서 결국 만나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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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관광의 핵심인 벤취

구엘 공원 이후 별로 할 일은 없었지만 혹시 몰라 내려가다가 구엘 별장Pinca Guel을 보았다. 여기도 들어갈 수 있나 해서 내려봤는데 여기는 문 여는 시간이 정해져있다. 왠만하면 문을 안열고 입장료도 10E가까이 하는 것이 마치 관광객들이 오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아마 개인 소유의 집인가보다. 여튼 여기는 정면 철문이 인상적이라 사진을 하나 찍었다. 도판으로 봤을때는 검었는데 녹이 슬었는지 벌겋다. 여튼 이 집에는 개를 두마리 키우는데 이놈이 아주 성깔있다. 하도 심하게 짖어대서 우리는 사진도 제대로 못찍고 도망와야 했을 정도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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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엘 별장의 멋진 철문

시내로 나와서 시디가게가 어디에 있나 하고 찾아보았다. 다행히 한쪽 골목에 몰려있다. 얼핏 보니 괜찮아보인다. 좀 뒤지고 싶었지만 문닫을 시간이 다 되어 일단 포기하고 내일의 숙제로 남겨두었다.
우리는 먹거리를 조금 사들고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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