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뜬금포 - 홀로세 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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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뜬금포 - 홀로세 대멸종
  • 저자: Jjw
  • 2015-11-23

북부흰코뿔소 놀라.jpg

샌디에이고 사파리 공원에 살았던 북부흰코뿔소 놀라. ( 출처: 샌디에이고유니온튜리뷴 )

2015년 11월 22일, 북부흰코뿔소 한 마리가 죽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세 마리 뿐이다. 북부흰코뿔소의 멸종은 확정적이다. 코뿔소 전체를 보아도 20 세기를 맞이할 때 약 50만 마리 정도였던 것이 지금은 3만 마리가 되지 않는다.

진화의 흐름 속에서 종은 새롭게 분화되어 나타나고 번성하다 결국 멸종한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나타난 종들은 모두 빠르던 늦던 이 흐름을 벗어나지 못한다. 최초의 공통조상에서 나에게 이어지는 계통도 위에는 이젠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조상들이 있다. 지질학적 단위로 보면 눈 깜짝할 사이인 몇 백만년 사이에 무수히 많은 종들이 멸종하는 대멸종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 중 유명한 것으로는 전체 생물종의 80% 이상이 멸종의 위기를 겪었던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이나 공룡이 멸종한 K-T 대멸종 등이 있다.

대멸종은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멸종의 경우 워낙에 오래되어 정확한 이유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K-T 대멸종의 경우 운석의 낙하와 그로 인한 급격한 환경변화가 원인이었다는 설명이 가장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멸종을 겪고도 생명은 결국 살아남았고, 멸종한 생물들의 생태적 지위를 빠르게 채웠다.

대멸종은 다른 한 편에서 살아남은 생물들에게 기회를 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페름기의 대표적인 육상 동물은 단공류의 반룡이었다. 이들이 멸종하자 공룡이 그 자리를 매웠다. 공룡이 멸종한 자리엔 다시 포유류가 그 뒤를 이었다. 이들은 멸종한 동물들의 자리를 매꾸며 생태적 지위에 따라 다양한 분화를 이루었다.

진화의 역사에 있어서도 생태적 지위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생태적 지위는 서식지에서의 지위나, 생존 경쟁에서의 지위, 먹이그물에서의 지위 등을 복합적으로 나타내는 말이지만,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기 위해서 먹이그물만을 예로 들어보자. 먹이그물 속에서 각각의 생물종은 생산자, 소비자, 최종소비자, 분해자 등의 지위를 갖는다. 아래의 그림은 태양에서 출발한 에너지가 먹이그물 안에서 어떤 영양 단계를 거치는 지를 간략히 보여준다.

 

먹이그물과 영양 단계. (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

위 그림에서 노란색은 에너지의 전달을 빨간색은 열의 전달을 의미한다. 먹이그물은 복잡한 영양 단계를 형성하며, 각각의 생물종은 이 속에서 적절한 생태적 지위를 갖는다. 이러한 영양 단계에서 한 종 또는 여러 종이 멸종한다면 영양 단계엔 빈 자리가 생기게 된다. 매는 직접 풀을 뜯어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에 풀을 먹는 1차 소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 애초에는 그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빈 자리가 생기면 머지않아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생물은 늘 먹이와 생식에서 희귀성 있는 자원을 놓고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남아 도는 자원을 오랫동안 방치하지 않는다. 공룡의 뒤를 이어 그 자리를 대신한 포유류 도 초식 동물에서부터 최상위 포식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었다. 포유류에 속한 생물종 각각은 자신이 선호하는 먹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 먹이 그물을 놓고 보면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다 먹고 살고 있다. 이제 다시 어떤 이유에서건 대멸종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살아남은 생물은 또 다시 생태적 지위를 빠짐 없이 채워나가며 진화할 것이다.

 

도도새. (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

최근, 특히 산업혁명 이후 인간에 의해 일어나는 생물의 멸종을 홀로세 멸종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인간의 남획에 의해 멸종된 도도새를 꼽는다. 단 세 마리가 남은 저 아름다운 북부흰코뿔소의 모습을 앞으로는 사진으로나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까지 썼듯이 멸종은 그것이 대멸종이라 하더라도 결국 극복되고 대체되어 왔다. 그러나, 인간에 의한 홀로세 멸종은 여러 모로 지금까지의 멸종과 다른 특성을 보인다.

홀로세 멸종은 자연적인 생태적 지위의 대체를 방해한다. 재배나 사육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에 맞추어 생물종 자체를 통제하려 한다. 사람들은 씨 없는 바나나를 좋아한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길러지는 바나나는 씨가 없다. 생물에게 씨가 없다는 건 자생할 수 없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더 이상 바나나를 찾지 않는다면 재배되는 바나나는 단 몇 년 안에 멸종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씨없이 재배되는 바나나는 오직 몇 종류 뿐이다. 그 때문에 질병에 취약하다. 실제 바나나에 질병이 대유행하자 모든 바나나 농장은 지금까지 기르던 것을 베어 멸종시키고 다른 품종을 재배할 수 밖에 없었다. 씨가 있는 경우라 할 지라도 벼건 밀이건 인간은 단종재배를 선호한다. 어느 순간 재배 식물이 질병에 걸리고 인간이 이를 통제할 수 없게 되면 그 재배 식물은 멸종할 것이다. 그 결과 인간 대다수가 기아에 허덕이게 되는 것은 피치못할 운명이다. 이 같은 일의 전형적인 사례로는 아일랜드 대기근이 있다.

반환경적인 개발은 서식지 자체를 파괴한다. 댐을 쌓고 보를 놓고 아파트를 짓고 건물을 만들면서 생물의 서식지는 잘게 쪼개어지고 교통이 불가능한 섬이 되어 버린다. 우리 나라에서 최상위 포식자인 호랑이과의 맹수는 이미 20세기 초에 절멸하였지만 하위 포식자인 여우, 늑대, 삵, 수달 과 같은 동물들 역시 모두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서식지 자체가 온갖 방해물로 둘러 쌓여 있기 때문에 이들 가운데 하나가 멸종되었을 때 생태계의 개채수를 조절할 대체 종이 그 서식지로 들어갈 방법도 없다. 이런 이유로 몇몇 살아남을 수 있는 종들만이 과도하게 번식하게 된다. 해마다 뉴스에서 반복되는 고라니나 맷돼지의 습격 소식은 사실 산에 이들말고는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도심지의 경우라면 온통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발라버린 서식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바퀴벌레, 개미, 모기, 파리 정도가 아닐까? 내가 사는 곳에 보이는 것이 왜 바퀴벌레와 곱등이 뿐이냐고? 그것들 말고는 살 수 없는 곳이라 그렇다. 인간은 위생을 위한다고 새집증후군까지 감수하면서 시멘트를 발라대지만, 맞이하는 결과는 역설적으로 해충의 증가이다.

인간의 전 세계적 이동과 함께 이루어진 외래생물의 급격한 증가 역시 생태계를 교란하여 파괴하는 데 일조한다. 베스는 닥치는 대로 토종어류를 먹어치우지만 베스를 잡아먹고 사는 생물은 거의 없다. 그나마 오염이 심화되는 강에서 베스만 횡횡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인간에 의한 멸종은 생태적 지위에 구멍을 뚫어 버리는데, 문제는 그것을 매꾸려면 지질학적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룡이 멸종해버린 급격한 대멸종이란 것도 지질학적 의미에선 매우 순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몇 백만년을 두고 일어난 사건이다. 인간은 지난 몇 백년 사이에 엄청난 수의 생물종을 절멸시켜 버렸고 생태적 지위는 여기 저기에 매꿔지지 않는 구멍들로 가득하다. 다시 한 번 지적하면 매는 직접 풀을 뜯어 먹고 살 수는 없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생물종 멸종을 방관한다면 다음 차례는 결국 우리 자신이 될 것이다. 우리 역시 생태적 지위 안에 놓인 존재이고, 생물들이 얽혀 있는 이 인드라망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멸종한다면 아마 지구의 역사에서 스스로 멸종을 일으킨 최초의 생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이런 글을 쓸 때 마다 하는 말이지만, 지구나 다른 생명은 걱정 할 것 없다. 태양이 적색거성으로 변해서 더 이상 지구에 생명이 살기 적합하지 않는 환경이 되는 6억년 후까지 어떤 대멸종이 오더라도 지구는 변함없이 태양을 돌 것이며, 살아남은 생물은 비워진 생태적 지위를 매꾸면서 또다시 생태계를 구성할 것이다.

지구는 인간따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 지구와 생태계가 꼭 필요할 뿐이다. 명심하자.

2 같이 보기[ | ]

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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