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노에

1 개요[ | ]

Itō Noe
伊藤 野枝 ( いとう のえ )
이토 노에

1895년 후쿠오카 출생으로 유명 해산물 도매상의 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태어날 무렵부터 가계가 기울어 고등소학교 졸업 후에는 우체국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 이후 숙부에게 지원받으며 도쿄에 상경하여 우에노 고등여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그녀는 작문에 유독 재능을 보였다. 여학교를 졸업한 1912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의 소개로 이웃 사람과 결혼을 하지만, 8일 만에 도쿄로 도망을 간다. 여학교시절부터 그녀와 친분을 쌓은 영어교사 쓰지 준과 동거를 시작해서 1912년 4월 말에 결혼하기에 이른다.

1912년 10월 『세이토』에 시「동쪽 물가(東の渚)」,소설「걸식의 명예(乞食の名誉)」,「출분(出奔)」을 비롯해 평론, 번역을 점차로 발표하고 왕성한 집필 활동을 했다. 1914년에는 「부인 해방의 비극」(에마․골드만),동작가의「결혼과 연애(結婚と恋愛)」,「연애와 도덕(恋愛と道徳)」(엘렌․케이) 등의 번역을 취합한 『부인 해방의 비극(婦人解放の悲劇)』(동운당)을 출판했다. 1915년부터 『세이토』의 편집, 발행 책임자를 히라쓰카 라이초로부터 계승받아 『세이토』최후까지 2년간 편집을 맡았다. 그동안 1914년에 장남 마코토, 1916년에 차남 류지를 출산했지만 1916년 4월 쓰지 준과 헤어지고 9월에 무정부주의자인 오스키 사카에와 동거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배우는 일본 여성 문학사』, 어문학사, p174

그와 함께 1918년 1월에『문명비평』을 창간하게 되는데, 창간호에는 「노동자 계급을 독자에게」가 게재되었다. 그밖에는 그녀의 작품으로는 불륜을 당당하고 결혼 제도를 부정하는 논문을 다수 썼으며, 임신 중절, 성매매, 정조 등 오늘날에도 문제시 되고 있는 과제에 대한 다수의 평론과 소설, 번역 작품을 발표하였다.

2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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