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이야기

재즈 이야기

1 # 재즈의 간략한 역사[ | ]

From: <mailto:abraxas@provin.kyonggi.kr> To: <mailto:yebadong@egroups.com> Sent: Wednesday, July 19, 2000 3:07 AM Subject: 재즈의 간략한 역사

"재즈는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이런 질문을 누가 했다면 과연 무었이라 대답할 수 있을까요? 첫번째의 재즈녹음은 1917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적어도 20 여년 전부터 그러한 음악은 존재했습니다. 고전음악, 행진곡, 영가, 그 시절의 유행가 노래, Rag Time, blues등에 의해 재즈는 이미 그 형태를 갖고 있었습니다.

최초의 Jazz연주는 특별한 제도교육을 받지않은 New Orleans marching band들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장례식, 연회등에 연주되었고 1890에 이르러는 그들의 참가가 모든 행사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간혹 그들은 악보도 읽지 못했지만 흥겨운 멜로디를 연주할 뿐 아니라 변주를 통해 관객들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최초의 유명한 Jazz연주가로 불리는 코넷연주가 Buddy Bolden은 1895년에 자신의 band를 만들어 활동했는데 혹자는 이 해를 Jazz 탄생의 상징적인 해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이후 20여년 간 Jazz는 아주 느린 형태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1906년 정신병으로 자살해버린 Bolden에 뒤를 이어 Freddie Keppard가 뉴올리안즈 재즈를 이었고 그 뒤는 King Oliver가 계승하였습니다. 비롯 몇 명의 연주가들이 Kansas City나 Chicago등 연주여행을 갔었지만 Jazz는 제1차 세계대전까지 지역음악으로 남았습니다.

1917년 1월 30일, 일단의 백인들로 구성된 "The Original Dixieland Jazz Band” (ODJB)는 Columbia레코드를 통해 "Darktown Strutters' Ball" 과 "Indiana"라는 당시로서는 급진적이라 일컬어지는 곡들을 연주했습니다.

동년 2월 26일에는 Victor레코드사를 통해 ODJB는 "Livery Stable Blues" "The original Dixieland One Step" 과 "Livery Stable Blues" 라는 곡을 취입했는데 짐승의 울음소리를 모방해넣은 후자의 곡은 Jazz 최초의 best seller를 기록하였습니다.

동시대에 많은 copy band들이 all-ensamble style의 비슷한 음악을 연주했지만 Solo연주는 없었습니다. ODJB는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의 그 해) 런던에서 대흥행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흑인들이 녹음을 하기 몇 해 전의 일들로 그 공연의 관람자들은 ODJB의 이 음악이 백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그 역으로 몇 년 후에는 오직 흑인만이 제대로 이런 음악을 연주한다는 착각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설명 모두 거짓이었음이 후일 판명되게 되었습니다.

1920년에 Mamie Smith는 최초의 Blues인 "Crazy Blues"를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ODJB보다 10년 앞서 최초로 짧은 솔로연주를 도입한 New Orleans Rhythm Kings은 1922 에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23년은 Jazz역사의 중요한 해로 인식되는데 그 이유는 Cornet연주가 Louis Armstrong 과 Clarinet연주가 Johnny Dodds가 소속된 King Oliver's Creole Jazz Band, Blues가수 Bessie Smith, Pianist-composer인 Jelly Roll Morton이 모두 데뷰음반을 낸 해이기 때문입니다. King Oliver Band가 ensamble 중심의 New Orleans음악을 완성시켰다면 루이 암스트롱은 재즈를 영구히 바꿔 버렸습니다.

1920년 초반의 시카고는 재즈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루이 암스트롱이 1924년에 뉴욕에 있는 Fletcher Henderson의 빅밴드를 결합했던 때 그는 뉴욕의 연주가들이 Staccato에 충실한 반면 Bluesy한 연주가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Henderson악단에서 루이는 폭발적이고, 극적이며, swing감 있는 연주를 보여 Jazz연주가들의 즉흥연주의 전형을 제시하였고 그에 의해서 집합적인 즉흥연주는 Solo연주로 바뀌어 졌으니. 이는 곧 Swing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Jazz의 시대로 불려지는 1920년대는 이제 짧은 Solo와 당김음이 사용된 리듬을 이용한 음악패턴이 가무밴드와 그 밖의 대중적인 밴드들에 의해 사용되면서 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Louis Armstrong의 “Hot Five” 와 “Hot Seven”에서 보여준 scat과 늘어진 노래는 (What a wonderful world등에서 보여지는) 다른 연주가들 뿐 아니라 빙 크로스비, 토니 베넷등 미국의 국민가수들에게 전수되고 결국 온 미국인의 즐겨 인용하는 노래방법이 되었습니다. 동시대에 Bix Beiderbecke (Armstrong보다 Cool한 연주패턴을 보인 백인 연주가) <여기서 Cool은 Swing의 반대개념>, pianist Jelly Roll Morton (solo연주와 그의 그룹 Red Hot Peppers), pianist James P. Johnson (stride piano의 왕), 작편곡가 Duke Ellington과 그 뒤를 잇는 Coleman Hawkins 등은 그 시절 Jazz史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는 대규모의 Jazz오케스트라가 주종을 이루는 반면 dixieland style의 소규모밴드에 의한 즉흥합주연주는 쇠퇴하고 있었습니다. 일반 청중들은 더 이상 근심걱정없는듯한 dixieland style대신 Ballard나 춤곡으로 적당한 음악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Benny Goodman은 1935년에 새로이 등장하여 대공항시대의 기쁨이 되어준 hard-swing orchestra를 선보였습니다. 여기서의 스윙은 진일보된 타악기비트와 대규모악단의 브라스 그리고 적당한 Solo가 곁들어졌습니다.

1935-1946년 까지의 기간은 Big Band시대라 불려지며 대중음악의 주류로 성장했습니다. 이 시대의 연주가로는 Glenn miller, Artie Shaw, Count Basie 와 Duke Ellington등이 있습니다.

이 기간동안에 Jazz는 몇가지의 갈래로 발전되었습니다. Art Tatum, Twddy Wilson같은 Solo Pianist들, Lester Young같은 Tenorsaxophoe연주자, Bunny Berigan, Roy Eldridge같은 Trumpeter 등이 독주영역을 넓혀갔고 빅밴드의 편곡은 더욱 섬세해졌으며, Lu Watters의 Yerba Buena Jazz Band등에 의해 Dixieland style은 새로운 관중을 획득했습니다. 이제 Jazz는 미국의 주류음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나 이 대중호응의 황금기는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Jazz의 계속적인 진화에 따라 Jazz연주는 불가피하게 청중들의 수준을 멀찍이 앞서가기 시작했다. 1940년대 초반에 들어서 Jazz연주가들은 그들 자신만의 연주개념에 몰두했습니다. Altosaxophone의 Charlie Parker, Trumpet의 Dizzy Gillespie는 Bebob 혹은 Bob이라 불리우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에 몰두했으며 그런 음악은 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음악연주에 있어서의 주제부(Theme)라고 불려지는 부분은 도입 후 어느 사이 사라지고 더욱 진보적인 즉흥조성연주로 파고들었습니다. (몇몇 비평가들에게 “도대체 멜로디는 어디있는거야?”란 질문을 남기고) 하모니와 리듬은 훨씬 더 복잡해지고 심각해졌습니다. 더 이상 그 음악은 Dancer를 위한 음악이 아니었습니다. 1942-1944년에 흥행세(entertainment tax)가 도입되면서 Dance hall들은 폐쇄되기 시작했고 이렇게 폐쇄된 댄스 홀에서 Jazz는 감상을 위한 연주음악으로 자리 매김을 하면서 대중음악계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한편 이러한 Jazz의 상업적인 쇠퇴에도 불구하고 Jazz의 예술적인 성장은 계속되었습니다. 한때 급진적인 음악이라 불렸던 Bob음악은 1950년대 Jazz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Cool Jazz (또는West coast Jazz)로 불리는 부드러운 톤과 편곡에 중점을 둔 음악은 50년대 중반에 그 최고의 대중성을 얻었으며, Bob의 뒤를 이어 Jazz의 soulful한 요소를 강조한 Hard bob은 Jazz팬들을 또다시 만족시켰습니다. 그러나 Jazz에서 Avant-garde (또는 Free Jazz)음악의 도래는 Jazz의 즉흥성을 진일보시켰으며 동시에 훨씬 만은 감상자들을 Jazz에서 멀리하게 만들었습니다.

Ornette Coleman과 그의 4중주가 1959년에 뉴욕의 Five Spot에서 공연을 하였을 때 이제 막 Thelonious Monk의 음악에 맛들이기 시작한 청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Ornette과 그의 4중주는 주제를 빠르게 합주한 후 전혀 코드가 없는 자유연주에 들어갔습니다. 같은 시기에 Jone Coltrane은 그의 Giant Step에서 수많은 chord를 반복적으로 연주하며 bob의 극한을 연주했습니다. 피아니스트인 Cecil Taylor는 타악기적인 비조성 음악으로 Jazz에의 현대음악도입을 시도했으며 Eric Dolphy의 넓은 화성간 이동은 완전히 비예측적이었습니다. Avant-garde jazz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960년대 중반은 에너지 충천된 연주가들에 의해 가득채워졌고 그 몇 년 내에 Art Ensemble of Chicago 와 Anthony Braxton등에 의해 jazz음악계는 더욱 자유로운 음악으로 발전했습니다. 1970년대에 이르러 많은 Avant-garde 예술가들은 더욱 많은 시간을 복잡한 작곡을 즉흥음악과 통합하는데 노력했습니다. 음악은 더 이상 자유롭지 않았고 연주가들은 소리가 어떻게 들리든 간에 그 자유를 자신이 맞다고 생각한 부분에 맞추어 자유를 완성시켰습니다. 이 음악이 1970년대 이후 다른 스타일에 비해 덜 중요시 되었다 하더라도 이 Free Jazz는 아직까지도 현재의 주류음악인 들에게 즉흥연주를 창조하는 방법으로 계속 이용되고 있습니다.

1970년대는 Fusion 시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많은 jazz 연주가들은 rock, r&b 그리고 pop적인 요소들을 그들의 연주에 이용하였습니다. 60년대 후반까지 jazz界 와 rock界는 서로 다르게 발전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electric keyboard의 도입과 더불어 많은 실험들이 시도되었습니다 bop, cool jazz, hard bop 그리고 그 자신의 스타일로의 avant-garde를 창시한 Miles Davis는 In A Silent Way 와 Bitches Brew를 통해서 Fusion음악의 시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연주그룹은 Jazz의 즉흥성과 연주력을 롹 리듬의 힘과 교묘히 교배시켰습니다. 그 중 눈에 띠는 시도는 Return To Forever, Weather Report 그리고 Mahavishnu orchestra였습니다. 1975년에 이르러 이 운동은 예술적으로 퇴보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계속되는 상업성있는 부드러운 음악에 대한 레코드사들의 요구에 의해서 였습니다. 그 상업성의 요구는 crossover 또는 instrumental pop 그리고 contemporary jazz라 불리는 상업음악의 탄생으로 연결되었습니다.

1920-75년에 이르는 Jazz의 역사는 5년에서 10년 주기로 새로운 형태에 대한 요구로 발전되었으며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지난 음악에 대한 객관적 평가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감에 의한 Bob음악, 50년대까지의 암흑기를 지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dixieland음악 등 80년대 전까지는 이러한 jazz원류음악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80년대를 대표하고 Miles Davis의 뒤를 잇는 Wynton Marsalis에 의해 bob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며 Fusion을 분리시키는 주류음악의 활성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Roy Hargrove, Christian McBride, Cyrus Chesnut등 신세대 Bob연주가 등을 발굴하는 등 Jazz의 전통을 되찾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이러한 “Young Lions”들에 의한 1990년대의 Jazz판도는 그들의 충실한 기본기에다 순수한 bob의 토대위에 펼치는 즉흥연주는 현학적이지 않은 그들의 독특한 소리의 혁신을 보여주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위에 언급한 모든 시대의 음악이 함께 존재합니다. dixieland, classic jazz, mainstream (주로 소그룹의 swing), bop, hard bop, cool, post-bop, avant-garde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fusion들이 그것입니다. 게다가 민족음악과 합쳐진 international music 과 유럽Jazz의 다양한 시도들 등 지난 20년 간은 새로운 형태의 Jazz가 나타나기보다는 그 동안 있어왔던 음악들의 교류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현 시점에서 Jazz의 미래가 어떻게 나아갈지는 명백해보이지는 않습니다. 어떤 냉소적인 비평가는 이제 음악은 갈 때까지 갔다고 평하기도 하지만 Recording 이 존재하는 한 Jazz는 계속 생존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Translated by Damian Lee Originally written by Scott Yanow / AMG

http://www.allmusic.com/cg/x.dll?p=amg&sql=J251

2 # 재즈 개론과 입문[ | ]

From: <mailto:abraxas@provin.kyonggi.kr> Sent: Tuesday, August 01, 2000 1:28 AM Subject: Jazz음악개론과 입문

재즈의 100년이 넘는 역사 안에는 무수히 많은 중요인물이 있으며 그 음악에 중독되기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일 수 있습니다. 비록 적은 수의 감상자들이 그 모든 시대와 각 조류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을지라도 오직 한 두 조류의 음악에 Jazz의 모든 것이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수필은 Jazz를 감상할 때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질문에 대해 친절한 소개의 역할을 해줄 것입니다.

재즈란 무엇일까요? 10 년간을 통하여 많은 저자들은 이 질문의 답변을 시도하여왔지만 그 시도들로 어떤 것은 Jazz이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라는 많은 제한으로 귀결 됐습니다.
본질적으로 Jazz는 즉흥성을 강조하고 Blues의 Feeling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밖에 모든 잠재적인 가치들(swing, 고도의 연주력, 아름다운 멜로디 등)은 선택적인 것입니다.

Jazz 연주자들은 dixieland , bebop, fusion, free jazz 등 그 양식이 무엇이던지 지속적으로 창조적이며 새로운 idea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점이야말로 생방송 청중을 위해 자신의 연주를 반복 재생산하는 pop music의 연주자들과 대조되는 점입니다.
Jazz에 있어 블루스의 Feeling은 Blueglass, New Age, 인도의 Raga와 같은 즉흥적인 요소가 있더라도 다른 스타일의 음악으로부터 jazz를 분리합니다.
재즈는 정력적인 빅밴드나 긴 멜로디를 연주하는 솔로 색소폰 연주자일 수 있으나, 발라드로 해석하거나 롹기타의 선율 또는 funky한 오르간 연주로 해석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종류의 음악에서 idea를 빌려올 수 있으나 그 연주자 스스로의 영감에 의해 발전 되는대로 연주해 나갈 때 그것은 비로서 Jazz가 됩니다.

재즈는 어떻게 시작 됐습니까? 애석하게도 이 질문의 답은 1917년 the Original Dixieland Jazz Band가 음반을 취입하기 20여년 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정확히 답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New Orleans brass bands에 의해 재즈가 시작됐다는 학설을 지지합니다.
그 이유는 1880년대에서 90년대에 행해진 행진곡과 대중음악의 연주에 New Orleans brass bands가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정식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몇 번의 취주 후에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변주를 창작하고 같이 그렇게 연주했던 것들이 그들의 순수한 즐거움이 되면서 시작됐을 것이었기 때문이고 Jazz史의 첫번째 이름인 코넷연주자 Buddy Bolden이 최초의 그의 밴드와 1895년에 시도했던 음악이 어떤 음악이었는지 들어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1920년대까지의 Jazz음악은 그 음악의 지역적인 이유로 매우 느렸으며 20년도 최초의 녹음이 있은 이후로 그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50여년의 기간동안 Jazz는 빠르게 진화해 ensemble중심의 New Orleans jazz 그리고 dixieland에서부터 swing감 있는 big band, 섬세한 bebop, 몇 몇의 연장선상의 음악들 (cool jazz, hard bob, soul jazz), 자유로운 창작의 avant garde jazz 그리고 롹의 가장 창조적인 시기의 요소들과 취합한 fusion으로 발전해왔습니다. 1970년대 중반 이후로 젊은 연주가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Jazz의 진화는 급격히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1925년부터 75년 까지 오래된 스타일의 연주는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어 나갔고 지난 20년 동안은 말 그대로 모든 가능한 음악연주가 시도됐으며 또한 jazz의 standard들도 재해석되어 연주되고 있습니다.

왜 재즈는 더욱 대중적이지 못했을까요? 재즈의 전성기는 swing시대였으며 10대를 위한 무도곡으로서 스윙은 그 인기의 절정에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40년대 중반 이후로 유흥세의 부과가 대부분의 night club으로 하여금 dance floor를 없애도록 하는 결과 초래했습니다.
게다가, 비밥 연주가들은 절대유흥을 위한 상승된 연주로 춤꾼들을 낙담시켰습니다.
그 결과는 R&B로 10대들을 향하게 했습니다. R&B에 이은 냇킹콜같은 류의 발라드 음악, 종국에 50년대의 롹큰롤, 60년대의 motown음악이 그 대중성을 이었습니다.
아이러닉하게도 avant garde를 제외한 대부분의 jazz음악은 춤추기 좋은 곡들입니다; 그러나 빠른 스텝이 필요하겠지요. 1990년대의 acid jazz의 유행은 오래된 Soul jazz를 dance club음악으로 재활시킨 것입니다만 불행이 너무도 명백한 funk리듬을 더하여 춤꾼들은 도데체 어디에 beat가 숨어있는지 알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재즈는 예술과 오락사이에서 그 자리매김을 해왔습니다만 그로 인한 장점이 있습니다. Jazz festival은 롹이나 클래식의 그것에 비해 훨씬 재미있습니다. 여러 명의 연주가 이어지는 Jazz festival는 축제적인 분위기에서 이뤄지는데 일반적으로 롹콘서트에 비해 비폭력적이며 클래식연주장에서 느낄 수 있는 잠재적인 지루함이 없고 지적인 만족도 느낄 수 있습니다.

재즈에 대한 공통의 질문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입니다. 재즈의 미래는 항상 예측할 수 없습니다.
50년대 말의 대부분의 jazz평론가들은 Jazz와 Classic은 머지않은 미래에 합쳐질 것으로 예측하고 fusion이나 free jazz의 도래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21세기의 Jazz음악은 기존의 jazz조류를 통합 시키려는데 그치지 않고 더욱 섬세해진 전자악기를 창조적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Jazz가 다시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데는 어렵겠지만 그 잠재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음악이 훌륭한 마케팅과 합쳐지면 (문론 그것은 단순한 형태의 pop음악을 기획광고하는 것보다는 어렵겠지만) 대단한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Joe Henderson 그리고 Joshua Redman의 예에서처럼 그들의 음악성을 단순화하지 않으면서도 유명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심자는 어떻게 재즈에 대하여 배워야 할까요? 우선 여섯명의 거인들을 살펴볼까요?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톤,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마일즈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
이 들의 음악을 통해 그 조류의 흐름을 이해하고 그들 앨범의 협조연주자들을 살펴듣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20세기 jazz를 장식한 제리 롤 모턴, 시드니 비쳇, 비스 비더벡, 펫츠 월러, 베시 스미스 , 베니 굿맨, 콜맨 호킨스, 레스터 영, 아트 테이텀, 카운트 베이시, 빌리 홀리데이, 엘라 핏제랄드, 버드 포웰, 띨로니오스 몽크, 제리 멀리건, 데이브 브루벡, 스탄 게츠, 리 몰간, 케논볼 에덜리, 쏘니 롤린즈, 호레이스 실버, 지미 스미스, 아트 브레키, 빌 에반스, 찰스 밍거스, 오넷 콜맨, 쎄실 테일러, 칙 코레아, 웨더 리포트, 윈톤 마샬리스, 키뜨 제릿, 그리고 팻 메띠니… 중요하고 다채로운 재즈의 음악가와 가수의 수는 끝이 없군요. 그리고 재즈에 대하여 배우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할 매우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지요.

Jazz감상의 시작에 몇 가지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r&b 또는 대중음악에 익숙하다면, 글로버 워싱턴 주니어나 데이빗 샌본으로부터 시작하세요. 그리고 첫째로 존 콜트레인과 칙 코레아를 들어보세요.
롹음악의 애호가라면 웨더 리포트, 존 수코필드, 장 룩 퐁티와 퓨젼시기의 마일즈 데이비스를 듣고 존 콜트레인과 오넷 콜맨에 도전해보세요.
클래식의 애호가라면 빌 애반스나 마일즈 데이비스/질 에반스의 콜롬비아발매 연주들을 듣고 모던 재즈 쿼탯을 시도해 보세요.
댄스뮤직이나 펑키하며, 멜로디가 좋은 음악들을 선호하면 리 몰간의 sidewinder, 대부분의 호레이스 실버의 앨범, 스탠리 터렌틴/60년대의 셜리 스콧의 앨범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입문인에게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에서 좋은 이득을 줄 것입니다.

재즈 세계에 들어갈 길은 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 열쇠는 다른 스타일을 향하여 편견 없는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데 있으며 대부분의 재즈음반들은 들을수록 더욱 많은 기쁨을 줄 것입니다! 음악을 찾아 나서는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15 Recommended Jazz Recordings to Start With:

Louis Armstrong, Plays W.C. Handy (Columbia - 1997 version) Benny Goodman, Sing, Sing, Sing (Bluebird) Billie Holiday, The Quintessential, Vol. 5 (Columbia) Count Basie, The Atomic Mr. Basie (Roulette) Duke Ellington, Uptown (Columbia) Charlie Parker, Yardbird Suite (Rhino) Dizzy Gillespie, At Newport (Verve) Dave Brubeck, Time Out (Columbia) Miles Davis, Kind of Blue (Columbia) John Coltrane, My Favorite Things (Atlantic) Stan Getz, Getz/Gilberto (Verve) Wes Montgomery, The Incredible Jazz Guitar (Original Jazz Classics) Lee Morgan, The Sidewinder (Blue Note) Weather Report, Heavy Weather (Columbia) Wynton Marsalis, Blue Interlude (Columbia)

Books:

American Musicians II. by Whitney Balliett (Oxford Univ. Press, 1997) The Encyclopedia of Jazz by Leonard Feather (Da Capo Press, 1960) Jazz Anecdotes by Bill Crow (Oxford Univ. Press, 1990) The Jazz Life by Nat Hentoff (Da Capo Press, 1961) The Jazz Scene by W. Royal Stokes (Oxford Univ. Press, 1991) Jazz - The Rough Guide by Ian Carr, Digby Fairweather & Brian Priestley (Penguin Group, 1995)

윗 글은 번역자의 생각과 다른 부분이 있으며 원문에 충실히 근거했음을 밝힙니다.

Translated by Damian Lee (mailto:abraxas@kg21.net) Written by Scott Yanow from AMG

3 # 초기 재즈[ | ]

제 목:[Jazz의 역사] 前期 관련자료:없음 [1065] 보낸이:박주섭 (apex ) 1993-03-13 00:00 조회:203

재즈라는 음악에 관하여...

박 주 섭

...재즈는 인생을 이야기합니다. 블루스는 역경에 처한 사 람들의 이야기입니다.잠시만 생각해 보아도 어려운 현실에 직면한 사람과 음악에 심취한 사람들만이 새로운 희망과 승 리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즈는 승리와 영광의 음악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사랑 하기를 원하고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환호를 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재즈는 이런 모든 것을 향한 수단인 것입니다....
Martin Luther King

킹 목사가 위와 같은 근사한 말을 했다는데 대해서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진다. 흔히들 사람들은 재즈라고 하는 음악에 대해서는 매우 냉담 한 반응을 보인다. 평소에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재 즈를 좋아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며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재즈는 차라리 소음이다. 재즈의 본고장이라는 미국에서 조차 음악으 로서의 재즈의 지위는 그리 높지 못하다. 그러나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열광적인 애호가를 가지고 있고 필자도 스스로를 재즈 애호가라고 자 부하고 싶다.
재즈라는 음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재즈가 어떻게 발생되고 어떻게 변천되었는가 하는 것은 반드시 필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재즈라는 음악을 즐기는데 있어서 작은 도움이 되리라고 필자는 굳게 믿는 바이다.

재즈의 역사는 한마디로 압박받는 흑인들의 감성이 자신들을 구속하 고 짓누르던 계층구조를 깨부수어 가며 얻어낸 -그러면서도 백인들의 세련화를 닮아 가려는 내부의 자기모순- 영혼의 울림의 역사이다. 그 들 검둥이의 인정받지 못한 좌절감이 재래의 혹은 기존에 대한 반항으 로 바뀌었고 그 축적된 한이 새로운 창조에의 의욕으로 극복되어 나아 갔던 것이다. 따라서 재즈는 어느 음악 장르보다도 자유의지,반항,좌 절,분노 등이 크게 담겨져 있다. 이러한 재즈의 특성은 진보파 테너 색소폰 연주자 아키 세프의 표현대로 '재즈는 인간 영혼이 거둔 승리 의 표상으로 진흙탕 속에서 피어난 백합과 같다'라고 요약 될 수 있을 것이다.

뉴올리안즈는 미국의 미시시피 강의 서쪽 연안에 있는 항구도시이 다. 이 지역은 스페인,프랑스등의 지배를 받다가 1800년대에 들어가서 야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여러 나라들이 번갈아 가며 이 지역을 지배 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프랑스인,영국인,스페인인,크리올인 등 다 양한 인종이 살고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일정한 성격없이 다양한 문 화가 혼재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혼혈문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이 도시만큼 음악과 시민생활이 밀착되어 있었던 도시는 유례가 없 었다. 브라스 밴드의 시가행진을 비롯하여 사람들은 어디서나 제각기 출신국의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했다. 그 당시 뉴올리안즈의 무도회에 서 연주되었던 것은 마주르카와 폴카, 왈츠의 종류였고, 흑인적인 비 트감을 교묘하게 가미한 래그타임 피아노도 쳤다. 시내에서는 브라스 밴드가 행진곡을 울렸으며, 굴뚝 청소부나 딸기 장수의 고함소리에 섞 여 세계 각국어로 불려지는 민요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외에 국내를 순회공연하는 음악 그룹을 통해 동부,중서부,남부,북부의 음악을 익힐 수 있었다. 요컨데, 훗날 재즈를 만들어 낸 뮤지션의 머리속에는 전 세계의 음악이 복합적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크리올이란 백인 (주로 프랑스인,스페인인)과 흑인의 혼혈을 가리키 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여 있으면, 아무 리 백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흑인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이 지역의 크리올들은 백인으로 간주되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1724 년에 제정된 흑인규칙에 의해 다음과 같은 노예해방규정이 정해졌다.
어린이는 모친의 신분에 따르고 백인 주인이 죽으면 흑인 첩은 해방된 다. 그 사이에 태어난 어린이는 모친의 신분에 따르기 때문에 자동적 으로 해방된다는 규정이었는데 이에 의해 크리올이라는 계급이 발생하 였다.
크리올 중에는 흑인 노예를 사용하여 농장경영을 하는 사람도 많았 고 자제를 프랑스에 유학을 보내고, 어린이들에게는 바이올린이나 피 아노를 배우게 해서 음악교육을 충분히 시키는 등 경제적으로도 풍족 한 사람들이었고 교육열도 극성스런 계급이었다. 크게 성공하지 못한 크리올도 중산계급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남북전쟁이 일어났고 노예해방령이 실시되었다. 이 노예 해방령은 노예의 지위를 끌어 올림과 동시에 크리올의 지위를 전략시 키고 말았다. 노예해방령에 불만을 품은 백인들은 `백인동맹'을 결성 하였는데 그 목적은 남부에 들어오는 북부인을 추방하는 것과 흑인에 대해 그 분수를 지키게 하는데 있었다. 그 불똥은 크리올에게 튀었다.
크리올의 상인들로부터는 물건도 사지 않았고 크리올이 하던 일을 백 인이 닥치는 대로 빼앗았다. 크리올에 의해 좌우되고 있던 시의 행정 기구도 전?되었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크리 올의 지위는 급격히 하락하였다. 백인사회로부터 내쫓긴 크리올은 과 거 노예들 속으로 창피를 무릅쓰고 일자리를 구하러 가야했다.
뉴올리안즈가 음악이 충만한 도시였다는 사실에서, 뮤지션을 지망하 는 것은 흑인들에게는 좋은 일이었음은 의심할 바가 없다. 남군 군악 대가 남긴 군악기를 구입하여 브라스 밴드를 조직하고 아르바이트로서 돈을 버는 수단을 착안한 것이다. 흔히들 "재즈는 미국에서 흑인과 유 럽음악의 만남으로부터 태어난 예술"이라고들 한다. 바로 크리올이 흑 인들에게 유럽음악을 전해주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하였던 것이다. 노 예의 자손과 크리올의 자손들이 대등하게 만나 Mix Band를 편성한 데 서 재즈라는 새로운 음악이 발생하였다.

뉴올리안즈의 한가운데에는 스토리빌(Storyville)이라고 하는 커다 란 유곽이 있었다. 재즈는 이 주변지구의 댄스홀이나 캬바레에서 연주 되고 있었다. 클래식 팬들 중에는 재즈가 창녀집 음악이라고 질책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유곽에서 그 방면의 반주를 맡은 것은 모짜르트 의 현악 4중주 곡이었다. 당시는 현악 4중주 정도가 안성맞춤의 무드 음악이었던 것이다.
1917년 4월, 미국이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뉴올리안즈는 군항 으로 탈바꿈하여 모든 병사가 이 항구에서 출정하였다. 죽음을 각오한 병사의 눈앞에 홍등가가 늘어선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고 생각한 해군 장관은 스토리빌의 폐쇄를 명령하여, 그 해 11월에는 많은 재즈맨들이 직장을 잃게 되었다. 이 당시 뮤지션들에게 있어서 재즈연주는 일종의 부업에 불과 했다. 모두들 본업(이발사,목공,페인트공 등)을 따로이 가지고 있었던 까닭에 그 들은 다시 하던 일에 열중하였다. 그러나 재 즈에 일생을 걸 생각을 품은 소수의 사람들은 시카고로 이동하게 되었 다.

1910-20년에 걸쳐 산업구조가 변화됨에 따라 북부의 공업도시로 많 은 인구가 이동하였다. '블랙벨트'라고 불리우던 시카고의 흑인 거주 구에도 5년간에 2배로 불어났고 그 결과 집세가 폭등하였다. 노임수입 만으로는 집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상호부조운동이 일어났는 데 이른바 '집세파티'(House -Rent Party)였다. 요리와 밀조주(당시에 는 금주법이 있었다.)가 풍부하게 준비되고, 손님은 입장료를 지불하 고 먹고 마시고 춤춘다. 이 때 사용되어진 악기는 피아노였는데 피아 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은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고 입장할 수 있었다.
흑인이 악전도, 주법도 배운 적이 없이 갑자기 유럽의 악기 앞에 앉아 서 만들어 낸 음악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 때 생겨난 음악이 바로 부 기 우기이다. 이 당시의 부기 피아노를 연주한 사람들은 이를 솜씨자 랑 정도로 생각을 했으므로 출연료를 받는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부기는 블루스만을 소재로 한 음악이었는데 이를 들어 본다면 음악적 인 무지를 수치로 여기지 않았던 용기가 얼마나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 어 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집세파티는 1920년대 말에 완전히 소 멸하고 말았는데 그 원인은 쥬크박스의 보급과 갱의 참견때문인 것으 로 알려져있다.
시카고의 젊은 백인 아마추어 뮤지션들은 흑인 재즈를 모방 연주하 기 시작했다. 이것이 시카고 스타일이다. 흑인 재즈를 늘 듣고 자연히 배워서 만들어 낸 스타일이기에 진짜 뉴올리안즈 재즈의 넘치는 강한 힘은 부족했고, 연주 자체도 매끄럽지 못했다. 그러나 모방 속에서도 특색이 있는 음악이었다.

뉴욕의 할렘가는 처음부터 흑인가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오히려 고급 백인 부유계급의 주택지로 개발되었다. 호화로운 주택가가 조성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통이 불편했던 이유로 입주자는 거의 없었다.
1901년 처음으로 흑인 가족 한 세대가 그 곳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흑인이 살면 백인이 이사를 가고 그 빈 집에 흑인이 들어 오고 다시 이를 본 백인이 이사를 가는 식으로 1901년부터 1930년 사이에 애당초 7만 5천명을 수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지역에 50만의 흑인이 몰려 들어 세계 최대의 흑인 지역을 이루게 되었다.뉴욕에서 일어난 최초의 재즈는 래그타임 피아노(ragtime piano)였다. 이 스타일은 격심한 연 습과 색다른 스타일의 집적을 통해 스트라이드 피아노(stride piano) 로 결집된다. 스트라이드 스타일이 일어나고, 얼마 후 할렘으로의 대 이동이 시작되었다. 인구의 과밀화는 집세 폭등을 불러 일으키고 '집 세파티'가 시작되었다. 시카고에서는 부기 우기가 주역이었지만, 뉴욕 에서는 스트라이드 피아노가 주역이었다. 그러나 시카고의 것은 아마 추어였고, 뉴욕의 뮤지션들은 완전한 프로였다. 할렘의 재즈는 적어도 다음의 세가지 점에서 역사에 크게 공헌했다.

(1)스트라이드 피아노가 나타났다.
(2)재즈를 오선지 위에 편곡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3)모든 재즈의 모태가 된 비 바프가 태어나 발전하였다.

캔사스시티 재즈는 뉴욕의 재즈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캔사스시티 는 금주법 시대에 공공연하게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할 수 있었던 유일 한 곳이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민주당의 보스였던 톰 펜더가스트라 는 사람의 놀랄 만한 부패정치 때문이었다. 그의 부와 권력은 막강하 였고 후년 그의 부하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바로 해리 S.트루 먼이었다. 시정이 부패할수록 재즈맨들은 바빠졌다. 래그타임과 블루 스의 전통에서 일어나 1930년을 중심으로 라스베가스적 대환락도시로 발전한 캔사스시티에서는 뉴욕에서 볼 수 없었던 빅 밴드 스타일이 태 어났다. 뉴욕에서 캔사스시티로 건너온 빅 밴드는 캔사스시티의 밴드 들의 상대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뉴욕이 참으로 재즈의 중심이 된 것 은 펜더가스트의 체포 전후에 캔사스시티 출신의 뮤지션들을 속속 받 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캔사스시티에서 활약한 밴드나 연주자가 뉴욕에 진출하지 않았더라면 모던 재즈는 결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 다.

여기까지가 재즈사의 전기(前期)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재즈사는 크 게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물론 도식적인 나눔에 불과하다.) 필자는 여기에서 이번 글을 마칠까 한다. 중기와 후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뮤지션들을 예로 들어야 하고 그러기에는 이 지면이 너무 좁은 탓도 있거니와 그 방대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하기에는 필자의 지식이 너무 짧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다음 기회 를 기대하면서 여기서 글을 맺겠다.

참고: 재즈사의 전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뮤지션의 명반

Louis Armstrong Louis Armstrong 1925-1927 (CBS) A Portrait Of Louis Armstrong 1928 (CBS) Jazz Classics (Decca) Complete Town Hall Concert (RCA) Satchmo At Symphony Hall (RCA) Satchmo Serenades (MCA) Louis Armstrong Play W.C.Handy (CBS) What A Wonderful World (abc)

Bix Beiderbecke Bix Beiderbecke 1927-1929 (CBS)

Fletcher Henderson A Study In Frustration The Fletcher Henderson Story (CBS)

4 # 또 다른 개론[ | ]

제 3 부 - JAZZ.그 질곡의 순환

"재즈"란 단어는 언제부터인지 별로 어색하다거나 거리감 없이 우 리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다. 어떤 노래를 듣고 나서 "재즈풍"이라고 평하기도 하고, "지금 재즈를 듣고 있다"라든가 "피아노로 재즈를 좀 쳐보았다"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즈의 실체에 대하여, 즉 기원, 역사, 음악적 특징 등에 주의 를 기울이는 이는 흔하지 않은 것 같다.하지만 요즈음 재즈에 대한 관 심이 높아지고 있다.다음 글은 다소 어렵기는 하지만 재즈의 총체적 이 해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여기 소개된 뮤지션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차 차 들어본다면 재즈가 절로 다가올 것이다.

재즈는 오늘날 그 예술성을 인정받아 서양 예술 음악사의 현대음 악편에 클래식 음악과 나란히 연구되고 있다. 또한 스트라빈스키, 힌데 미트 같은 이들은 재즈의 기법을 자신의 작품에 반영시킴으로써 클래식 세계에 재즈를 도입하였고, 재즈 음악가들 역시 클래식의 영향을 받음 으로써 ( 1950~1960년대에 유행한 쿨 재즈를 예로 들 수 있다.) 두 세 계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관계로 서양에서는 재즈를 국,중,고 교과서에서 진지하게 다루고 있으며, 특히 미국에서는 자기나 라의 민속음악이라고 칭하면서 그 진가를 높이 평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재즈가 음악대학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음 악사(音樂史)안에서 잠깐 소개되기는 하나 빡빡한 수업일정으로 인하여 다룰 기회가 거의 없다. 그외 일반인에게는 공식적으로 다루어지는 기 회가 거의 없어서 개인이 책을 보거나 레코드를 들으며 연구하는 방법 이 있을 뿐인 듯 하다. 따라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개인적으로 연구 한 이를 제외한 일반인들은 재즈의 실체에 대하여 파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재즈는 일상용어화 되어있는 단어이므로, 또 매스컴을 통해서 쉴 새 없이 들려지는 음악이므로, 모두 6회에 걸쳐 재즈의 기원 에서부터 오늘날까지의 음악적인 변천사에 대하여 연구해 보기로 하겠 다.

(Ⅰ) 재즈의 발생 및 초기 형식들

1. 재즈의 발생

재즈는 미국의 노예제도를 배경으로 하여 노예신분이었던 미국의 흑인 들에 의해서 시작된 음악이다. 17세기부터 성행한 노예무역은 주 로 서부 아프리카 지역인 세네갈, 기니아 해안, 니제르강 유역, 그리 고 콩고 등지를 중심으로 행하여 졌다. 노예 상인들은 평화스럽게 살고 있는 아프리카의 마을을 덮쳐 주민의 거의 1/3이상을 포로로 잡아 노예 선에 싣고 몇 달 동안의 항해를 거쳐 미국에 도착한 뒤 노예 시장에서 백인 주인에게 팔았다. 노예선 안에서의 참상은 이루 묘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하며, 그 당시의 어떤 보고서를 보면 노예를 실었던 선실의 폭은 120~150cm, 높이는 60~90cm 정도의 비좁은 공간에 흑인을 오른손 과 왼쪽 발을 같이 묶어 줄을 지어 빽빽히 앉히고 철봉을 그 사이에 쭉 질러 꽂아 놓았다고 한다. 흑인들은 바로 눕지도, 바로 앉을 수도 없는 자세로 몇 달 동안을 항해하여야 했는데, 너무나 비위생적인 처리 로 인하여 혼절했다 깨어났다 하는 상태에서 죽는 이도 많았다. 노예제 도는 법적으로 1863년에 폐지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19세기 말엽까지 도 근절되지 않았다고 하며, 현대에는 인종차별 문제도 번져 아직도 해 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재즈는 위와 같이 역경속에 있었던 미국의 흑인에게서 비롯된 음 악이므로 아프리카의 음악적 요소가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속에 흐 르는 감정과 가치관은 그들만의 특유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그러나 그들은 백인의 사회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백인의 영향 을 대단히 많이 받았으리라는 것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즉 재즈는 흑인적인 요소와 백인적인 요소의 결합으로 태어난 새로운 방향의 음악 이라고 하겠다.

2. 재즈의 초기 형식들

재즈가 전문 음악가들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연주되기 시작한 시기 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뉴 올리안즈(New Orleans)에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그 이전에는 노예들 사이에서 넓게 퍼져 불려지면 백인들이 배워 부르기도 하였으며, 음악적인 형태는 대개 단순한 가창곡이었다. 예를 들면 흑인 영가 (Negro Spiritual과 Gospelsong), 블루스 (Blues), 그 리고 노동요(Worksong)등이 있으며, 이들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음악형 식과 감정표현이 내포되어 있어서 좋은 곡들은 후에 재즈 음악가들에 의해서 다시 불리워져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도 하였다. 재즈 초기의 음악형식과 감정표현 방식은 재즈 음악의 기본을 이루고 있어, 시대의 변천에 따라 재즈의 스타일이 다양하게 변하여도 항상 밑바닥에 흐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재즈를 이해하기 위해서 위에 소개한 영가, 블루스, 노동요와 초기 재즈 기악곡 형태인 랙타임(Rag time)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1) 흑인 영가 (Negro Spiritual과 Gospelsong)

아프리카에서는 종교와 주민의 생활이 대단히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사회적인 행사는 거의 종교적인 행사와 관계를 맺고 치뤄지며, 여기에는 또한 음악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제의를 맡고 있는 주술사는 음악가이며, 주민들 역시 노래하고 춤추면서 진지하게 진행된다. 이와 같은 종교적, 음악적 전통을 갖고 미국에 도착한 흑인 들은 새로운 백인 주인의 종교에 따라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고 종파도 결정되게 된다. 그리하여 이들은 서양의 교회음악에 접하게 되어, 새로 운 형태의 찬송가라고 할 수 있는 영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Spiritual의 가사는 대부분 구약이나 신약 성서에서 자신들의 처 지와 비슷한 대목을 골라 종교를 자신들의 세속적인 생활과 연결시키는 내용인데, 신앙심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으리라고 희망을 품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예로써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Deep river, my home is over Jordan"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인을 자신들 의 처지와 연결시킨 내용이며, 이런 식으로 "Swing low, sweat chariot", "Nobody knows", "When the saints" 등등의 주옥같은 곡들을 들 수 있다. Spiritual의 음악적 특징은 대개 5음음계로 구성되어 있 으며, 끝까지 부르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Fine이라고 쓴 곳까지 부르는 다-카토 형식으로 되어있다.

영가의 한 종류인 Gospelsong은 Spiritual보다 훨씬 활기차고, 현 대의 댄스리듬이 섞이기도 하며, 즉흥성이 더욱 살려져 있는 것을 특징 으로 한다. Spiritual은 노예제도하에서부터 흑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불리웠는데, 1880년 경부터는 차차 백인들이 모아 부르기 시작하였다. 영가 가수로는 루이 암스트롱(Louis Amstrong),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 비숍 켈시(Bishop Kelsey), 골든 게이트 4중주단 (Golden Gate Quartet)등이 우리에게 친숙하다.

2) 블루스 (Blues)

블루스는 영가가 종교적이며 희망적인데 비해 세속적이며 비관적 이다. 흑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비애를 노래한 것으로 Blue란 색 깔이 암시하는 것처럼 우울한 노래이다. 그러나 블루스에는 재즈의 음 악적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블루스는 우선 특이한 음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블루노트' (Blue Note)라고 한다. 보통의 장조 서양 음계와 비교해볼 때 3음, 5음 그리고 7음이 반음씩 내려가 있다. 그러나 이 음계는 멜로디를 이끄는 데에만 사용되고, 화음으로 반주하는 데에는 서양의 장조 화음을 사용 한다. 따라서 블루 멜로디와 화음반주가 묘한 불협화음을 내는데, 이 음향이 재즈란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다.

블루스의 두번째 특징은 리듬에 있다. 싱코페이션과 삼련음표를 사용하여 독특한 느낌을 안겨 주는데, 약박에 악센트가 들어감으로 인 하여 쇼크를 받는 순간과 같은 매우 강한 심리적인 반응상태에서 출발 하며 인간은 그에 육체적으로 움직임으로써 보상하는 상태를 불러 일으 킨다. 즉 블루스의 리듬은 자동적으로 율동을 부른다. 이와 같은 블루 스의 리듬은 역시 흑인 특유의 감정에서 유발된 것이라고 하겠다.

블루스의 세번째 특징으로 블루스 노래는 각 행이 4마디씩으로 구 성되어있고 모두 3행이 모여 1절을 이룬다. 즉 도합 12마디이며, 화음 이 정해져 있다. 노래할 때는 12마디를 모두 빽빽히 노래하지 않고, 반 정도 만 노래하고 나머지 부분은 악기 반주로 채워지는데 대개 노래 음 성 표현을 그대로 모방하는 형식이라서 매우 재미있다.

블루스는 노예시대부터 널리 퍼져 있었으며, 1870년대부터는 지방 과 도시 블루스로 분류되어 발전된다. 블루스의 최성기는 1920~1930년 경 이라고 할 수 있고, 유명한 가수로는 마 레이니 (Ma Rainey), 베씨 스미스 (Bessie Smith), 루이 암스트롱 (Louis Amstrong), 빅 빌 브론 치 (Big Bill Broonzy)등이 있다.

블루스는 20~30년대에 피아노 곡으로 사랑을 받기도 하였는데, 멜 로디의 특징은 블루스와 같고 왼손 반주는 구르는 듯한 리듬형을 끊임 없이 반복하는 형태가 보편적이다. 이와 같은 블루스 피아노 곡을 가리 켜 '부기 우기 (Boogie Woogie)'라고 부른다.

3) 노동요 (Worksong)

아프리카인들은 일을 할 때 반드시 노래를 부르는 관습이 있다. 노래를 함께 리듬에 맞추어 함으로써 일의 능률을 올리기도 하고, 노래 가사에 뉴스를 전하기도 한다. 이런 전통은 미국의 흑인들에게로 이어 져서 도로를 닦을 때, 철로를 놓을 때, 노를 저을 때, 나무를 벨 때 등 등의 일을 하며 노동요를 불렀다. 노래 형식은 선창자가 노래하면 합창 으로 대답하는 형식이다.

4) 랙타임 (Rag time)

Rag이란 "이그러졌다"라는 뜻이며, time이란 악보의 한 마디를 것 이다. 즉 리듬이 엉망이라는 뜻이다. 래그타임은 쉽게 이야기 하여 완 전히 작곡된 피아노 음악을 말하는데, 재즈의 특징인 즉흥연주가 빠져 있는 형태이다. 19세기 후반에 유럽에서도 유행하였으며, 왼손으로는 정확한 박자를 짚고, 오른손은 싱코페이션이나 부점음표들이 등장하여 리듬이 매우 어긋나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스콧 조 플린 (Scott Joplin)과 젤리 롤 모턴 (Jelly Roll Morton)등이 있으며, 예로써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스팅의 주제가 "The Entertainer"를 들 수 있다.

이번 순서에서는 재즈의 발생 배경과 재즈가 본격적으로 발전되기 이전의 초기 형식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재즈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미국에서의 흑인의 위치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그들 특유의 음악적 표현과 즉흥연주 능력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비교 비평 할 수 있을 만한 안목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되려면 재즈의 역사, 이론과 함께 실지의 음악을 레코드나 녹음으로 많이 듣는 것이 필수 조건이라 하겠다.

(Ⅱ) 재즈의 변천사

1. 뉴 올리안즈 재즈 (New Orleans-Jazz)

1). 재즈의 정의 및 뉴 올리안즈 재즈의 발생 재즈의 발생지를 루이지애나주에 위치해 있는 도시 뉴 올리안즈로 보는 것은 재즈가 초기에 가장 활발히 연주되던 대표적인 곳이라고 여 겨지기 때문이다. 다시말하여 재즈란 어느 시기, 어느 곳에서 발생한 음악이라고 단정짓기 보다는 흑인 노예제도가 성행한 이래로 수십년 동 안 점차적으로 발전된 음악이다. 재즈란 이름을 갖게 된 시기나 그 어 원도 정확히 알 수가 없으나 흑인 영가, 블루스, 노동요 등은 미국적 민요에다 유럽의 민요나 오락음악, 군악대 음악의 기법을 첨가하여 전 문 음악가들이 연주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재즈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남북전쟁 (Civil War,1861-1865)이후에 군대에서 악기를 불하하여 악기가 시중에 많이 퍼지게 되었고, 프랑스인과 흑인노예의 혼혈인 크레올(Creole)이 대거 참가하여 많은 악단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크레올은 피부가 흑인보다 밝고, 교육을 받았으며, 프랑스어로 말을 하였다고 하는데, 경제나 사회적으로 흑인보다 우세하였으므로 노 예해방 이후(1865) 흑인들에게서 존경을 받았다. 그리하여 흑인의 단순 한 형태의 음악에 유럽적인 기법이 침투하게 되었으며, 악기편성은 군 악대편성에서 차차 소편성의 밴드중심으로 나아가긴 하였으나 여전히 취주악기가 그 주류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재즈의 특 징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크레올과 흑인들은 길거리나 공원, 결혼식, 장례식, 피크닉, 카니 발 등에서 연주를 하였으며, 1900년 경에는 댄스홀이나 술집에 고용되 어 연주하였다. 특히 뉴 올리안즈의 홍등가인 스토리빌 (Storyville)에 서는 랙타임 피아니스트와 소편성 밴드를 고용하여 손님을 접대하였으 므로 흑인 음악가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초기에 는 재즈란 이름으로 연주한 것이 아니나, 최초의 재즈밴드로 알려진 것 은 버디 볼든(Buddy Bolden- 트럼펫, 코르넷)의 밴드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곧 백인들이 모방하여 댄스음악으로 연주하는 악단이 성행 하기 시작하였는데(1910년 경부터) 이들 중에서 니크 라 로카(Nick La Rocca,트럼펫)가 이끄는 "오리지날 딕시랜드 밴드(Original Dixieland Band)"가 1917년 최초로 레코드 취입을 하여 재즈가 드디어 미국 전역 으로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2). 뉴 올리안즈 재즈의 음악적 특징 뉴 올리안즈 재즈는 1900년에서 1925년 사이가 전성기이고, 대표 적인 음악가로는 버디 볼든(Buddy Bolden, 트럼펫), 벙크 존슨(Bunk Johnson, 트럼펫), 죠 킹 올리버(Joe King Oliver, 트럼펫), 루이 암스 트롱(Louis Armstrong, 트럼펫), 키드 오리(Kid Ory, 트럼본), 젤리 롤 모튼(Jelly Roll Morton, 피아노), 그리고 백인 밴드로 "오리지날 딕시 랜드 재즈 밴드(Original Dixieland Jazz Band)"와 "뉴 올리안즈 리듬 킹즈(New Orleans Rhythm Kings)"등이 있다.

악기 편성은 백인의 군악대를 본땃기 때문에 멜로디 악기로 트럼 펫, 클라리넷, 트럼본 등의 관악기를 편성하고, 리듬악기로 드럼, 벤 조, 기타, 튜바, 그리고 피아노, 콘트라베이스가 추가되어 구성되었다. 연주 형태는 흑인 음악가들이 악보를 읽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으 므로 순전히 청력에 의해 연주하는 경향이 짙었다. 이들은 12마디의 블 루스나 32마디의 노래나 랙타임을 주제로하여 각 구성원이 제작기 동시 에 즉흥적으로 연주하였으며 이를 가르켜 "집단 즉흥 연주(Collective improvisation)"라고 일컫는다. 리듬 형태는 단순한 2박자(한 마디에 2 박이 들어가고 첫박에 악센트가 있다) 재즈가 성행하였다.

이 시기의 재즈 특징은 시대가 변하여도 영원한 재즈의 특징으로 전승되게 된 요소들이 많은데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블루음표 (Blue Notes) (2) 거칠은 음색 (dirty tones) (3) 억세고 폭발적인 억양법 (hot-Intonation) (4) 기본 박자를 무시한 리듬과 악센트 (off beat, swing) (5) 주어진 테마로 즉흥연주 (Improvisation)

2. 시카고 재즈 (Chicago-Jazz)

1). 시카고 재즈의 발생 및 발전 1917년 세계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뉴 올리안즈가 중요 해군기지 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스토리빌의 향락업소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따 라서 이곳에서 일하던 많은 음악가들이 해고를 당하여 이들 중에는 미 시시피강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 세인트 루이스(St. Louis), 캔자스 (Kansas), 시카고(Chicago) 등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꽤 되었다. 이 도 시들 중에서 시카고는 특히 1920년대부터 재즈가 활발히 꽃피기 시작한 도시로서, 루이 암스트롱, 죠 킹 올리버, 키드 오리, 젤리 롤 모튼 같 은 이들이 뉴 올리안즈에서 시카고로 이주하여 활동한 대표적인 음악가 들이다. 이들은 시카고에서 새로운 연주법을 구사하여 "시카고/ 뉴 올 리언즈 -재즈" 스타일을 구축하였다.

예를 들면 루이 암스트롱은 시카고에서 20년대에 "핫 파이브(Hot Five)"와 "핫 세븐(Hot Seven)"밴드를 조직하여 뉴 올리안즈 스타일로 연주하다가, 30년대에는 그 당시 시카고의 유행대로 자신의 트럼펫 솔 로 연주와 노래가 큰 역할을 맡고 그의 밴드는 뒤에서 반주만 하는 스 타일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그는 "스타"와 "쇼맨"으로서의 위치를 확보 하였다. 그러나 40년대에는 "올 스타즈(all Stars)"악단을 조직하여 다 시 뉴 올리안즈 스타일로 되돌아 갔다. 루이 암스트롱과 버금가는 유명 한 음악가는 피아니스트 젤리 롤 모튼 이다. 그는 크레올 출신으로 음 악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으므로, 테마를 작곡하고 또한 이를 편곡하여 그의 밴드를 연습시켰다. 그의 악단의 특징은 그러므로 즉흥연주의 폭 이 훨씬 적었으므로 재즈 동료들에게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고 한다.

시카고에서는 재즈의 세계에 백인이 진지하게 참여하기 시작한 것 이 또한 획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백인 고교생과 대학생들 사이에 재 즈는 신선한 음악으로 받아들여져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으며, 이들 가 운데 "어스틴 하이스쿨 갱(Austin High School Gang)"과 같은 모교 이 름을 본딴 유명한 밴드라든가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e, 트럼펫) 같은 훌륭한 연주가가 속출하였다. 이들은 과거의 딕시랜드와는 달리 진정한 재즈세계를 탐구하여 그 당시 백인의 취향인 "스위트 뮤직 (Sweet Music)"을 침투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이들 음악의 특징 은 테마작곡과 편곡을 역시 오선지에 철저하게 적는 방향으로 나아갔으 므로 흑인악단보다 즉흥연주가 적으며, 솔리스트의 활약이 전체적인 밴 드연주보다 대단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음악은 흑인의 것보다 약간 가 라앉은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2). 시카고 재즈의 음악적 특징 시카고 재즈의 전성기는 대략 1925년에서 1930년까지로 추정되며, 뉴 올리안즈 출신의 흑인 음악가들은 시카고에서 좀더 고상하고 세련되 고 노련하게 스타일을 바꾸어 나갔다. 이들은 또한 뉴 올리안즈 재즈 음반 제작을 이곳에서 실행하였다.(1923-1928)

시카고 재즈는 그 유래로 말미암아 뉴 올리안즈 스타일과 흡사한 점이 많으나 특징을 끄집어 내자면 다음과 같다. (1) 합주에 대응하는 솔로의 즉흥연주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집 단 즉흥연주는 쇠퇴되었다. (2) 멜로디 악기들이 제각기 횡적으로 즉흥연주를 하기보다는 화성적 으로 맞추게 되었다. (3) 벤죠와 튜바보다 기타와 콘트라베이스를 즐겨 연주하였다. (4) 악센트를 제2박, 제4박에 두어 스윙감을 더했다.(뉴 올리안즈 시 대의 2박자 재즈에서 4박자 재즈로 옮겨와 약동감이 더해지는데 이를 '스윙'이라고 한다. 4박자 재즈의 최초의 공로자는 루이 암 스트롱이다)

이번 순서에서는 재즈 음악가들에 의해서 재즈가 본격적으로 출발 하기 시작한 뉴 올리안즈 시대에서부터 시카고 시대까지 살펴보았다. 재즈는 시카고 시대 이후부터 전술한대로 흑,백인 재즈 음악가는 물론 백인 클래식 음악가들의 주의를 끌기 시작하여 스트라빈스키 (Strawinsky), 거쉬인(Gershwin), 밀하우드(Milhaud), 크레넥(Krenek), 힌데미트(Hindemith) 등의 작품 속에서 재즈 기법을 만날 수 있게 되었 다. 다시 말하여 재즈는 1920년대 이후부터 음반제작이 활발하여짐과 동시에 전인류의 음악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하 겠다.

3. 스윙 재즈 (Swing-Jazz)

1). 스윙 재즈의 발생 및 발전 스윙(Swing)이란 단어에는 “흔들리다, 흔들거리다” 라는 뜻이 있듯이, 스윙 재즈는 율동감이 강하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스윙 재즈의 음악적인 요소들은 시카고 시대부터 있었던 것들이지만, 스윙 시대에 들어와서 더욱 확대되고 발전되어 완성되었다.

스윙감을 주는 제일 큰 원인은 박자에서 온다고 보겠는데, 2박자에서 4박자 재즈로 발전된 점이다. 4박자는 보통 때 박자를 세는 식으로 "하나, 둘, 셋, 넷"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 그리고 둘 그리고 셋 그리고 넷 그리고"하면서 "그리고(and)"에 악센트를 탄력있게 줌으로써 강한 율동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런 박자를 "Off-beat"라고 부르며, 스윙 시대에 있어서 재즈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고 한다.

스윙 재즈가 나타난 시기는 1920년대 말 경이었다. 세계 공황이 1929년에 일어났으므로, 이 당시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때였기 때문에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해고를 당한 재즈 음악가들은 큰 밴드에(Big Band) 흡수되는 경향을 보이고, 밴드가 커짐에 따라 즉흥연주의 영역이 점점 줄어들어 즉흥연주보다는 바레이션 형태로 연주하게 되었다. 스윙 오케스트라에는 흔히 백인과 흑인이 함께 섞여서 연주하는 모습이 보였으며, 이들은 음악교육을 받은 자들로서 악보를 볼 수 있었으므로 미리 정확하게 편곡을 하여 연주하였다.

경제적인 이유 및 그 당시 유행하던 댄스음악 계통인 "스위트 뮤직(Sweet-Music)"으로 인하여 계속 빛을 못보던 스윙재즈는, 드디어 백인 클라리넷 주자인 베니 굿맨(Benny Goodman)이 로스엔젤레스의 팔로마 볼룸에서 성공을 거둔 것을 계기로 하여 (1935) 본격적인 스윙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어서 그가 1983년 1월에는 클래식만을 공연해 오던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연주회를 열어 성공을 거둠으로써 재즈가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을 증명한다.

2). 스윙 재즈의 음악적 특징

스윙 재즈는 율동감이 대단하며 큰 밴드(Big Band) 중심으로 화려하지만, 재즈 본래의 특색이 매우 제약받은 상태의 재즈이다. 즉 밴드 인원이 많았으므로 전체가 행하는 즉흥연주는 편곡으로 대체되어 미리 연습하여, 즉흥연주는 솔로주자나 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위법적으로 멜로디를 충실하여 즉흥연주를 하던 것이 화성적으로 맞추어 진행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결론적으로보아 스윙 재즈는 유럽적인 냄새가 짙은 재즈였다고 말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베니 굿맨(Benny Goodman,클라리넷),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피아노), 카운트 베씨(Count Basie,피아노), 엘라 핏츠제랄드(Ella Fitzgerald,가수)와 빌리 홀리데이(Billy Holyday,가수), 해리 제임스(Harry James,트럼펫)와 로이 엘드리지(Roy Eldridge,트럼펫), 콜맨 호킨스(Coleman Hawkins,색소폰)와 레스터 영(Lester Young,색소폰), 글렌 밀러(Glenn Miller,트롬본), 테디 윌슨(Teddy Wilson,피아노)과 아트 타툼(Art Tatum,피아노), 진 쿠르파(Gene Krupa,드럼)등이고 시기는 대략 1930년에서 1945년 사이로 본다.

4. 밥 (Bop, Bebop 시대)

1). 비밥 재즈의 발생 "밥"또는 "비밥"이란 단어의 어원은 밥(Bop) 재즈를 노래 부를 때 사람들이 "비비비비 밥밥밥" 또는 "비밥 비밥"하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즉 "라라라"와 같이 뜻없이 곡조에 맞추어 부르는 음절이었다. 비밥의 탄생은 흑인 음악가들이 스윙 재즈에서 재즈 특유의 특징이 엷어진 것에 불만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를 구축한 것으로서 종래의 그 어느 재즈보다도 아프리카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보겠다.

밥 재즈 시대를 연 음악가로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색소폰)를 대표자로 들 수 있으며, 밥 재즈는 초기부터 매우 특이하고 독창적인 성격이 강하여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즉 음색이 대단히 강하고 자극적으며, 화음에 있어서도 감화음이라든가 7도, 9도, 11도 화음을 사용하였고, 템포는 바른 편이며, 율동감이 별로 없다. 이와 같이 난해하고 충격적인 비밥 재즈는 예술성이 강하여 예술 음악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비밥 이전의 재즈를 비밥에 대칭된다는 의미에서 전통 재즈 혹은 고전 재즈(Traditional Jazz, Classical Jazz)라고 부른다.

비밥 재즈는 예술성은 강하지만 대중에게는 물론이고 재즈 음악가들 사이에도 외면하는 이가 많았다. 따라서 방송출연은 하기도 어려웠고, 레코드 취입은 뒤늦게 1945년에야 이루어졌다고 한다. 비밥이 이렇듯 인기가 없었으므로, 한편으로 전통 재즈인 뉴 올리안즈 재즈를 비롯하여 딕시랜드 등이 리바이벌 붐을 일으켰으며, 블루스, 스윙에서 파생된 부기우기 등이 그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어쨌든 비밥 재즈가 예술 재즈로 등장하게 됨으로써 1945년 경부터는 재즈의 세계도 민요 (지방 블루스<Land-Blues>, 도시 블루스<City-Blues>, 대도시의 흑인을 중심으로 하는 리듬과 블루스<Rhythm and Blues>, 뉴올리안즈 재즈), 춤과 오락 음악 (딕시랜드, 스윙), 예술음악 (비밥)등등으로 분류되게 되었고 각각 그 특징을 살려 계속 발전하게 된다.

2). 비밥 재즈의 음악적 특징 비밥 재즈는 전술한 바와 같이 매우 혁신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우선 즉흥성이 매우 강하므로 솔로들이 몇명만 모여 만들어진 캄보 밴드(Combo Band) 형태를 취하고 있다. (색소폰, 트럼펫,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 비밥 재즈에서 특이한 점은 피아노가 리듬악기로 등장하여 화음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드럼은 박자를 짚어주는 리듬악기로서가 아니고 독자적인 리듬형태를 보유하여 기교적인 면을 강조함으로써 멜로디 악기와 동등한 관계를 보여준다. 거칠은 음색, 현대적인 화음구성과 함께 8분음표 또는 16분음표로 계속되는 빠른 리듬은 광포하며 전율적이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앨토 색소폰), 존"디지"질레스피(John "Dizzy" Gillespie,트럼펫)와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트럼펫), 텔로니어스 몽크(Thelonius Monk,피아노)와 버드 포웰(Bud Powell,피아노), 마일드 잭슨(Milt Jackson,비브라폰), 오스카 페티포드(Oscar Pettiford,콘드라베이스)와 찰리 밍구스(Charlie Mingus,콘트라베이스), 찰리 크리스챤(Charlie Christian,기타), 케니 클락(Kenny Clarke,드럼)과 맥스 로치(Max Roach,드럼)등이며, 시기는 1940년에서 1955년까지로 본다.

이번 순서에는 재즈 발전사 중에서 중기시대에 해당하는 스윙과 밥 재즈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재즈는 스윙과 밥 시대를 지나면서 음악면에 있어서 재즈의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여 구축함으로써 클래식 음악과 어깨를 겨루는 음악의 한 장르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것은 재즈 음악가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재즈로 도전함으로써 이루어진 노력의 대가임을 느낄 수 있다.

5. 쿨 재즈 (Cool-Jazz) 1). 쿨 재즈의 발생 "쿨(Cool)"이란 단어에는 "시원하다"라는 뜻이 있듯이, 쿨이란 전 통재즈의 표징인 "핫(Hot)"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 전이 종결된 후 전쟁 중에 견디기 어려울 만큼 팽배했던 긴장감이 완화 되면서, 미국 사회에는 인종문제 등이 아직도 해결안된 불쾌한 현실로 부상되어 사람들은 허탈감과 울적함에 젖어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전후의 혼란한 시기를 거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진정하는 움직임을 보 여준다. 이 모든 허탈감, 울적함, 심기일전 등의 시대감정은 종래의 신 경질적이고 불안하며 강렬함에서 탈출하여 시원하고 미끈하며, 고상한 휴식을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950년 이후의 유행을 살펴보면 남 성과 여성의 짧은 머리, 드레시한 옷, 형광등의 출현으로 인한 파리한 색채를 대표적으로 손꼽을 수 있으므로 한 마디로 말하여 이 시대의 시 대감정을 표현하자면 바로 "쿨"인 것이다.

위와 같은 현상은 재즈계에도 여실히 나타난다. 전통재즈는 비브 라토를 수반한 강렬한 음향과 더불어 춤과 연결되는 율동적인 리듬이 필수적이었으며, 사람들은 춤을 추면서 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재즈를 즐기는 형태가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쿨"시대에 접어들면서 재즈는 정 반대되는 새로운 현상을 보여준다.

195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재즈 음악계에는 정식으로 음악수없을 받은 음악가들이 점점 많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들은 재즈에 클래식 음 악기법인 화성법, 나아가서 12음 기법등을 결합시키면서 재즈와 클래식 의 접합을 시도하였고, 그들은 또한 재즈를 클래식과 동등한 위치로 끌 어올려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자신들의 활동을 정식으로 인정하게 되기 를 원했다. 이들은 연미복을 입고 음악회장에서 정식으로 격식을 차려 연주를 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음향은 비브라토가 없이 부 드러우며, 자극이 없고, 서정미가 있는 현대적인 음향이었다. 이로써 사람들은 드디어 재즈를 춤과 술과 혼합하여 생각하지 않고, 재즈를 조 용히 앉아서 진지하게 감상하는 음악으로 인식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 쿨 재즈의 음악적 특징 쿨 재즈는 위에서 잠시 언급한 바있지만 클래식 음악의 형식에서 화성법, 대위법, 목조성(Polytonal), 무조성주의 등을 차용하여 음악적 으로 수준이 한결 높아짐과 동시에 음악회용 음악 즉 감상음악으로 대 두되게 되었다. 쿨 재즈의 음향적 특색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비브라토와 다이너믹이 절제되었으며 부드러운 음색이다. (2) 멜로디의 움직임이 이완되어있어 매끄럽고 스마트한 느낌을 준 다. (3) 서정성과 함께 멜랑콜리한 표현이 많다. 그러나 리듬은 핫-재즈 나 마찬가지로 강렬하다. (4) 엄격한 음악형식 때문에 (클래식에서 받아온) 즉흥적인 면이 감 소됨을 보여준다. (5) 캄보밴드 스타일이 지배적이다 (트럼펫, 색소폰, 피아노, 기타, 콘트라베이스, 드럼).

이와 같은 특징을 지닌 쿨재즈의 전성시기는 1950년 경부터 1960 년 사이로 보여지며,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트럼펫)를 기수로하여 리 코니츠(Lee Konitz,앨토-색소폰), 레니 트리스타노 (Lennie Tristano,피아노), 데이브 브루백(Dave Brubeck,피 아노) 그리고 모던 재즈 4중주단 (Modern Jazz Quartet)등을 들 수 있 다.

쿨한 감각이라든가 음악형식면에서 클래식을 접합시키는 방법은 같으나 음악적 표현이 종래의 비밥(Bebop)을 이어받아 좀 거치른 재즈 의 형태로 하드밥(Hard-Bop)이 있다. 하드 밥은 1950년 이후에 출연하 여 순수 쿨 재즈와 공존하였는데, 50년대 말 경에는 하드 밥과 쿨의 경 계선을 알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60년대를 넘어 가면서는 음악 형식에 있어서 클래식 형식 뿐 아니라 스페인과 남아메리카의 리듬, 아랍이나 인도의 음계와 리듬 등을 받아와 재즈는 음악적으로 더욱 다양하고 표 현영역이 넓혀지는 현상을 보여준다.

하드 밥은 백인에 의해서 미국 서부 해안에서 시작된 웨스트코스 트 재즈(West-Coast-Jazz)와 뉴욕의 젊은 흑인들에 의해서 시작된 이스 트코스트 재즈(East-Coast-Jazz)를 합쳐서 일컫는 말이다. 하드 밥은 비밥처럼 재즈에 있어서 흑인적인 요소를 더욱 강조함으로써 음향이 거 칠고 폭발적이며, 타악기를 강조하고, 표현력이 강하며 단순하다. 따라 서 활력이 넘치며 블루스와 흑인영가를 떠오르게 하는데, 여기에서는 블루스가 체념하는 형태가 아니라 폭발하는 형태이다. 이런 연주형태를 특히 "펑크(Funk)"라고 부르기도 한다. 혹자는 흑백문제가 계속 투쟁을 거듭하면서 흑인들은 끊임없이 도시에서 평등권을 얻기를 원했는데, 이 에 대한 신경질적인 기대감이 비밥으로 표현된 것이라면 하드 밥은 반 항하고 데모를 일으키는 상태가 표현된 것이라고도 한다. 하드 밥의 대 표적인 음악가로는 아트 블레키(Art Blakey, 드럼)와 그 일행, 캐논볼 아델리(Cannonball Adderley, 색소폰), 소니 롤린스(Sonny Rolins, 색 소폰), 맥스 로흐(Max Roach, 드럼),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 피 아노)등이 있다.

6. 프리 재즈 (Free-Jazz) 1). 프리 재즈의 발생 프리 재즈의 본격적인 출발은 1950년대의 말 경에 젊은 흑인 재즈 음악가들인 오넷 콜맨 (Ornette Coleman)과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에 의해서라고 보지만, 이런 움직임은 이미 10년 전인 1949년 에 쿨 피아니스트인 레니 트리스타노(Lennie Tristano)와 그의 6중주 일행에서 나타나므로 프리 재즈의 출현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트 리 재즈의 출현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트리스타노와 그의 일행은 여러 개의 독립된 멜로디선이 빚는 불협화음으로 복조성적인 음악을 캐 피틀(Capitol)레코드사에서 레코딩함으로써 처음으로 조성의 기틀을 벗 어난 혁신적인 음악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계속 악화되고 있는 흑백문제는 젊은 흑인 들을 더욱 자극시키고 있었는데, 이런 불만이 젊은 흑인 음악가들에 의 해서 격하고 공격적인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즉 매우 높은 음역이나 매 우 낮은 음역으로 악기소리를 냄으로써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음향을 내기도 하고, 음악에서 사용하는 음 뿐만 아니라 소음까지를 포 용하며, 서양 세계 밖에서 온 이국적인 악기를 사용하고, 즉흥적이며 도취적인 야성미를 지닌 아프리카 음악의 요소를 받아들인 여지껏 들어 볼수 없었던 새로운 연구기법과 음향이 나타난 것이다.

2). 프리 재즈의 음악적 특징 프리재즈는 한 마디로 말하여 모든 전통적인 규칙과 원칙이 파괴 된, 단어 그대로 매우 자유롭고 우연적인 음악이라고 하겠다. 연주가들 은 개별적인 표현욕구를 구속없이 주관적으로 즉흥연주를 함으로써 이 루어지므로 조성도, 박자도, 형식도 없다. 여기서 무조성이란 뜻은 서 양의 음열을 기초로 하는 12음기법이라든가 하는 무조성을 뜻하는 것이 라기보다는, 아무런 내부적인 규칙이 없는 것을 뜻하는데 흑인노예의 노동요와 같은 아프리카적인 무조성에 접근한다. 프리 재즈는 연주 중 에 연주자 각자가 차례로 듣고 연주하고 하는 새로운 연주방법을 도입 하였는데, 이 잇달아 나오는 내부적인 반응도를 보는 것이 프리 재즈의 묘미이다.

프리재즈의 전성기는 1960년대 이후라고 보며, 대표적인 음악가로 는 레니 트리스타노(Lennie Tristano, 피아노), 오넷 콜맨(Ornette Coleman, 색소폰),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색소폰), 에릭 돌피 (Eric Dolphy, 플룻, 바리톤색소폰), 돈 케리(Don Cherry, 트럼펫) 챨 리 밍구스(Charlie Mingus, 베이스), 아키 세프(Archic Shepp, 색소폰) 등이 있다. 프리 재즈는 유럽에서도 유행하였는데, 이들은 미국 재즈보 다 유럽 예술음악의 갈래인 전위음악과 가깝다.

7. 록 재즈 (Rock-Jazz) 1). 록 재즈의 발생 록 재즈는 가장 최근에 출현한 재즈로서(70년대) 프리 재즈와 함 께 현재까지도 연주되고 있는 형태이다. 록(Rock)이란 유럽에서 대중적 인 댄스 음악으로 출발한 것으로 블루스의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으며, 로큰 롤(Rock'n Roll)의 준말이다. 록은 1960년도 중반에 나타나 가사 의 예술적 표현에 보다 치중하여 즉흥 연주 등은 그리 강하게 다루지 않았다. 비틀즈(Beatles)를 위시한 많은 그룹들은 조곡형식(Suite)의 대편성 심포니 곡을 만들기도 하였고, 또 어떤 부류들은 종래의 록을 고수하여 하드 록(Hard Rock)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초기의 록 그룹들은 블루스를 기초로 하였으나, 재즈와 록이 완전히 융 합된 상태가 아니라 서로 엮어 놓은 상태에 불과하였고, 예술적인 면의 추구보다는 상업적인 냄새가 짙은 감을 준다.

재즈와 록이 참으로 융화되어(Fusion) 예술적인 형태를 띠면서 재 즈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는 것은 1960년대 말부터 이다. 체이스 (Chase), 블러드(Blood), 스웻 앤 티얼스 (Sweat & Tears) 등의 그룹의 활동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들의 음악을 스윙 록 (Swing Rock)이라고 부 르기도 한다. 1970년대 초에는 재즈의 대가인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가 록과 전자악기에 관심을 두어 <비취스 브루(Bitches Brew)>란 음반을 내놓음으로써 본격적인 록 재즈의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혁 신적인 점은 전자악기를 일반 재즈악기와 함께 섞거나, 전체를 전자악 기로 대체하고 연주하여 음향을 더욱 강하게 확대시킨 면과 예술적인 즉흥성을 강조한 점이다. (전기기타, 전기콘트라베이스, 전자피아노, 신디사이저 등을 사용)

2). 록 재즈의 음악적 특징 위에서 일컬은 바와 같이 록 재즈는 전자악기 연주로 인한 강한 음향을 특징으로 하며, 음악적인 기법을 프리 재즈에 기초를 두고 있 다. 그리하여 매우 지적이고 전문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나, 리듬에 있 어서는 모던 재즈(비밥, 쿨, 프리 재즈)에 비하여 단순한 형태를 보여 스윙(Swing)과 비슷하나 약간 더 강하고(예를 들면 동양에서 온 순환하 는 박자사용), 음향에 있어서는 전위적인 불협화음보다는 특정한 음계 를 바탕으로 한 섭법을 중심으로 연주하므로 전통적인 협화음쪽으로 흐 른다. 그리고 어법에 있어서 옛 두박자 재즈부터 프리 재즈까지의 요소 들을 도입하므로 연주자 모두가 각자 멋대로 즉흥연주를 하는 것보다 부드럽다고 하겠다.

록 재즈의 대표자로는 마일스 데이비스(트럼펫), 죤 멕로린(John McLaughlin, 전기기타)과 그의 오케스트라, 칙 코리아(Chick Corea), 허비 행콕(Herbie Hancock)와 죠 채위눌(Joe Zawinul), 웨더 리포트와 유나이티드 재즈 록 앙상블 (Weather Report & United Jazz Rock Ensemble)등이 있다.

록 재즈는 일렉트릭 재즈(Electric Jazz), 퓨젼 재즈(Fusion Jazz), 크로스오버 뮤직(Crossover Music)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독 창적인 명칭은 록 재즈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순서에서는 재즈 발전사 중에서 후기 시대에 해당하는 쿨, 프리, 록 재즈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재즈는 후세에도 계속 발전하여 나갈 것이므로 후기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나 중기 시대와 구 분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중기 시대의 스윙과 밥 재즈가 클 래식 음악과 어깨를 겨룰만큼 음악적으로 성장함을 보여 주었다면, 후 기 시대의 쿨, 프리, 록 재즈에서는 예술적인 발전을 더욱 거듭하여 현 시대 음악의 한 장르로서 클래식 음악사에 당당하게 편입됨을 보여주었 다. 즉 재즈는 더이상 좁은 의미의 오락음악이나 민속적인 음악으로서 가 아니라, 서양 예술음악의 한 갈래로서 인정받는 시대에 들어선 것이 다.

(Ⅲ) 20세기 클래식 음악과 재즈

음악 학자들은 70년대부터 음악사, 음악교육학책 등에 암스트롱과 바흐의 이름을 나란히 올리고 있으며, 교회에서는 재즈 스타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세계 도처에서 흔히 보여지는 광경이다. 재즈는 이렇듯 발생한 지 일백년이 되기도 전에 세계적으로 벌써 그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재즈가 초기의 단순한 가창형태에서부터 이렇듯 발전하게 된 데에는 정식 음악교육을 받은 재즈 음악가들이 스윙시대 이후 대거 참여하여(1930년대 이후) 재즈와 클래식의 접목을 시도하고, 또 이에 자극받아 재즈의 본질을 잃지 않고 살려 보려는 강한 노력들이 모여 이룩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즉 재즈의 발전상에는 클래식 음악의 영향이 음으로 양으로 큰 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에 반하여 20세기 클래식 음악에서도 역시 재즈의 발자취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클래식 계에서 재즈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재즈가 아직 단순한 영가나 블루스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1920년대 이전부터 드뷔시(C.Debussy, 1862-1918)와 스트라빈스키(I.Strainsky, 1882-1971)등의 작품에 나타난다. 드뷔시는 괴물의 케이크 워크(The Gollwog's Cakewalk, 1908)의 몇 작품에, 그리고 스트라빈스키는 어느 병사의 이야기(L' Histoire, 1918)중에서 악마의 춤에 그리고 11개의 악기를 위한 래그타임(Ragtime, 1918)및 피아노 래그 뮤직(Rag Music, 1919)에서 재즈적 착상을 도입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당시는 유럽에 블루스와 래그 타임이 크게 유행할 때였다고 하는데, 새로운 음향과 새로운 리듬을 찾아서 고심하던 현대 작곡자들에게 재즈의 신선하고 진기한 리듬과 끈끈한 호소력은 대단한 영감을 불러 일으켰을 듯 하다. 그후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초기가지 힌데미트(P.Hindemith, 1895-1963)가 피아노 조곡 래그타임(Ragtime, 1922)을 라벨(M.Ravel, 1875-1937)가 피아노 콘체르트 G장조(1931)에서 재즈의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히틀러가 1933년 1월에 정권을 잡게되자 유태인 박해 및 독재로 인하여 유럽의 많은 중요한 음악가들이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이때 미국에서는 대중 음악가 출신인 거쉬인(George Gershwin, 1898-1937)이 클래식을 습득하여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 1924), 피아노 콘체르토 F장조(1925), 오페라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1935) 등으로 크게 성공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작품은 재즈다운 싱싱한 선율과 적당한 스윙감 그리고 세련된 화성 등으로 재즈를 예술적 수준으로 높였다. 그의 통속적인듯 하면서도 예술적인 음악은 그가 미국 최초의 민족음악가란 칭호를 받게 했으며, 미국인들에게는 미국의 민속음악이 재즈라고 확신하게 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한 작곡가들은 재즈에 더욱 매료되어 그들 중에는 순수 재즈작품을 작곡하여 재즈악단에 주기까지 하였는데, 바르톡(Bela Bartok, 1881-1945)은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을 위한 랩소디 를 시게티와 베니굿맨에게 그리고 스트라빈스키는 에보니 콘체르토(Ebony Concerto, 1945)를 우디 허먼 악단(Woody Herman)에게 선사하였다. 그리고 그밖에 12음기법의 창조자인 쇤베르크(A.Schonberg, 1874-1951)는 그의 에세이에서 재즈의 예술성과 형태, 느낌에 대하여 극찬한 바 있으며(1924), 미요(Darius Milhaud, 1872-1955)도 그의 작품에 재즈의 형식을 도입한 좋은 작품들이 있으니, 이와 같은 예는 일일이 하나 하나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위에 서술한 바와 같이 재즈의 발달에 클래식 음악이 상당한 역할을 한 바와 마찬가지로, 재즈는 또한 20세기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재즈에 있어서 클래식 음악의 역할은 단지 재즈의 독창성을 발휘시키기 위한 자극을 주는 정도의 역할 밖에 되지 못하였다. 이에 비하여 클래식에 도입된 재즈는 그 형태상으로 보아 재즈의 본질인 즉흥성 등이 빠져있는 상태로, 재즈의 리듬이나 약간의 착상을 빌려와 작품에 이용하는 소극적인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 <레코드 음악> ‘89년 겨울호 - '90년 겨울호에서 발췌 - (편집부)

5 # 재즈 초보?[ | ]

제 목:자신이 재즈에는 초보라 생각하세요?? 관련자료:없음 [717] 보낸이:이효정 (hanbam ) 1992-08-26 23:16 조회:485

아마 많은분들이 그런생각을 가지고 계실겁니다..
왜일까요...???

사실저도 가끔 그런생각이 들때가 있지만..
그런 생각만큼..음악감상에 해로운 요소도 드문것 같아요..

음악은 느끼는 것인가 이해하는것인가라는..논쟁은..
잘아는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사람이든..
쉽게 결론지을만한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감각적으로 전해오는 것이지.. 이해로 얻을수있는것은 아닙니다..

음악에 대한 이해라는 것은 좋은 음악을 접하다보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여러가지 궁금증들을 해소하려 이리저리 알아보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지만..
먼저 정보를 많이 가지고..나서 그것을 접했을때..
자신의 감정이 별로 신통치 않다면..
그것만큼 허망한것도 드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명반이라는 예기를 자주 듯습니다..
초보든 아니든 누구나 귀에 솔깃한 소리임에 틀림 없습니다..
소위 명반이라고 주목받는 앨범을 ..그것도 잘 보이지 않던거라면..
주머니를 톡톡털어서라도 내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마는..
그런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겁니다..
그리고 나서 집에돌아왓을때..
역시...라는 탄성이 나온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를 우리는 너무니 많이 겪어 보았습니다..

전문적인 콜렉션이든.. 그냥 기분대로 모으는 평범한 동호인이든..누구나.. 관심있는 분야의 앨범들을 사서 모으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듣는 즐거움이든..소장의 즐거움이든..
하여간 개인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의미에서..
어떤 가치의 잣대를 사용하여선 안되겠습니다만..
비싼 돈을 들여가며..장만한 음반에서 듣는즐거움이 없다면..
참으로 난감한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어찌보면.. 그런우를 그래도 최소화하기위해서..
초보들은 더더욱 명반에 집착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하나 바찌기 쉬운 함정중에..
초보들에게 적합한.. 운운.. 친숙하고 쉬운.. 운운..
등등의 추천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오늘 하고 싶었던 예기인데..(스테레오음악이란 잡지를 읽다가) 음악을 예기할때.. 쉬운음악과 어려운 음악의 구분만큼 애매모호한것도 없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쉽게 가요나 팝은 쉬운 음악이고 재즈나 클래식은 어려운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아닐수 없습니다..

언어의 뉘앙스에서 비롯되는 혼란인데..
단적으로 음악을 즐기는데 어렵고 쉽고의 구분만큼은 절대 아무 필요가 없는 요소입니다.
재즈에 입문을 하는 사람은 쉬운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법칙도 없고.. 또.. 입문자들을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 진곡들도 물론 없습니다..

메인스트림계열의 곡들을 조금이라도 접해보신분들이라면 느끼겠지만..
남들이 쉽게 말해버리는 소위 쉬운 음악들중에 단골이 친숙한 스텐다드 넘버내지..발라드한 구성..운운하는곡들입니다만..
그곡들이 조금은 많이들어온 분위기여서..친숙한 느낌은 줄수있을지 몰라도.. 절대 개인적인 감동과는 무관한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런곡들을 주로듣다보면..
서서히 재즈에 친숙해진다는 통설도 사실은 전혀 근거희박한 억측입니다..
대부분..그런곡들만을 찾다가 금방식상해지고.. 아예..
재즈와는 멀어져 버리는 경우가 더 많으며..
아주 낯설은 재즈한곡에 매료되어 결국 재즈팬이 되어버리는 경우는 비일비재 합니다(제경우)..

잘만들어진곡은 결코 쉽게 만들어진 곡들이 아니고..
어렵게 만들어 졌다고 해서.. 받아들이기 까지 어려운것은 더더욱아닙니다..
마일즈데이비스의 카인드오브블루라는 앨범이 있는데..
대단히 혁명적인 앨범이었고..소위 재즈의 명반으로 꼽히는 그런앨범인데.. 그곡들은 적어도 쉬운곡들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많은사람들은 그앨범에서 재즈의 맛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앨범은 잘 만들어진 앨범으로서 입문용으로 많이 추천되고 있는것이지..결코 쉬운 스탠다드 넙버여서 추천되는 것이 아닌것입니다..

반면.. 쉽게 만들어진..프리재즈스타일의 앨범들은 ..
개인 뮤지션들의 창의성만을 너무 강조한나머지..
결국 미국대중음악에서 재즈의 기반을 흐려놓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정도였습니다..
대중을 너무 우습게 알았던거죠..

프리재즈스타일의 음악을 난해하다고 하지만..
사실 그표현보단 받아들이기 거북스런 음악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릴것입니다..
즉 언어사용의 혼란이죠..

또한가지..메인스트림보단 초보들은 퓨전쪽을 만만히 보는것가은데..
퓨전이 메인스트림보다 더 쉽게 다가올수 있다는 근거는 단지..아주 대중적인 곡들중에서 퓨전재즈에 속한곡들에서 비롯된것 같은데...
역시 개인적인 감동과는 절대 무관한 것이니 만치..
혼돈이 없었으면 합니다..
사실 음악성이 있다고 하는 퓨전재즈들은 메인스트림보다 더..비대중적이라고 보는게 맞을겁니다.
비대중적이란 말은 평범한사람이 듣기엔 좀 거북하다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만..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질 않는군요..

가장 쉽게 하는 오해중의 하나가 메인 스트림은 어렵다는 것인데..
사실 메인스티림의 근간은 격정적인 하드밥에 있다고 볼때..
하드밥만큼 대중적인 쟝르도 흔치 않습니다..
바로 서민의 삶과 밀착된 음악들이었죠..감각에 호소하는그런음악입니다..

결론적으로..
음악을 감각적으로듣든 이성적으로 듣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감각적인 음악감상을 즐기신다면..
초보를 위한 ...이라는 말에 현혹되시지 말라는 예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고 있는 명반을 멀리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것에만 집착할것없이.. 자신만의.. 취향을 살리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명반을 고를수 있게 되리라 봅니다..

몇가지 오해를 주의주고 싶어서 좀 떠들었습니다..

  • . 한밤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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