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박은옥 - 정동진 / 건너간다

정태춘, 박은옥 - 정동진 / 건너간다
  • (1998, 삶의 문화)
  • 정태춘의 포크 서사시 정동진이 실린 음반

1 오상훈[ | ]

제 목:[뽕] 정태춘 관련자료:없음 [429] 보낸이:최보영 (고요라침) 1998-10-12 15:43 조회: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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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감상] 정태춘, <정동진/건너간다> 올린이:본국검 (오상훈 ) 98/05/14 16:02 읽음:132 관련자료 없음

90년대를 홀로 짊어지고 가는 사람, 정태춘

정태춘, 그는 누구인가? 태춘이란이름에서 풍겨오는 촌티(?)와 함께 또한 태춘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직폭력배 서방파의 두목 김태춘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 람... 80년대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의 노래 '시인의 마을촛불'과 그의 아내 박은옥이 부른 '봉숭아'그리고 박은옥과 함께 부른 '사랑하는 이에게'를 기억하며 포크가수로서의 서정적이며 시골냄새나는 향토적인 음악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90년대의 사람들은 '아 대한민국'이라는 불법음반을 만들어 정부와 의 되지도 않을 것같은 싸움을 벌이는 돈키호테같은 그리고 '시와 양심수' 의 공연에서 매년마다 고정출연하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80년대와 90년대를 함께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정태춘은 쉽게 단정할수없 는, 알수 없는 사람이다. 정말로...

얼마전에 정태춘 박은옥의 새앨범 "정동진"이 나왔다. 이 음반을 사서 처음 들었을때 또 한번 느꼈다. 나의 좁은 지식과 감각으로 어떻게 그를 설명할 것인가? 이때까지 얼마되지않은 음반평을 썼었지만 정태춘에 관한 것은 솔직히 쓰 기가 그렇게 쉽게지 않을 것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업가수이면서도 또 한 민중가요계에서 큰형님격인 민중가수 정태춘을 내멋대로 빈정대는 투의 글발로 쓸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 '좋아 좋아'로 쓸수도 없고...남의 눈치 안보고 내멋대로 쓰기에는 나의 내공이 너무 낮고 특별히 꼬집을 만 한 부분도 발견할수가 없고... 그래도 난 내맘대로 쓸란다. 언제나 그렇지만 난 라커니까....

정태춘을 생각할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공산품 수출에 달아야하는 원산지 표시인 made in korea. 정태춘만큼 made in korea를 붙이고 자부심 있게 내놓을 만한 가수가 있을까? 우리말 가사를 옮조리지않고 허밍만으로도 이것은 made in korea라고 자신 있게 말할수 있는 국산이 아닌 토산품,문화재와 같다고 할까. 많은 가수들이 "무늬만 가요아니예요"라는 식의 수입된 음악양식으로 노 래를 부를때 그리고 우리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기위해 국악을 중간중간에 도입한 어정쩡한 가요를 만들때 정태춘은 된장국 냄새가 구수하게 풍기는 꽹가리에 장구반주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가요를 우리에게 선사했다. 내가 기타를 배우겠다고 한창 설치던 고등학생때 라디오 방송을 통해 들려나오는 그의 노래는 들국화와 함께 팝송의 빠다냄새의 느끼함을 가시게 하는 새콤 한 김치와도 같았다. 그의 노래들은 부르기도 쉬웠고 통기타반주가 딱딱 들 어맞아 기타연습의 교재와도 같았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에 한창 헤비메탈을 들었던 친구들과 형들의 집에 쌓인 lp음반속에 몇안되는 가요앨범중에는 정태춘과 박은옥의 음반은 필히 한장씩은 있었다는 것이다. 가요라면 수준낮은 음악이라고 쉽게 치부 해 버리던 그때 가장 우리적인 정태춘의 음반이 있었다는 것은...글쎄... 아마도 음악성 못지않게 뛰어난 가사의 매력이 아닐었을까. '시인의 마을'에서부터 풍기는 시적인 매력, '애고 도솔천아탁발승의 새벽노래'들은 정말 신선한 매력이 아닐수가 없었다. 사랑노래만 판을 치 는 가요판에 고행의 수도승과같은 감각보다는 정신을 이야기하는 그의 노래 말에는 학교수업에 박제가 되어가는 학생들에게는 그들이 탈출하고픈 교실 밖의 세상에 대한 풍경을 보여주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왜 그리 시골 이 가고 싶었는지... 그런 그가 90년대에 들어와서 전혀 예상할수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왔다. 대학에 들어와서 민중가요를 알고 민중가요가 녹음된 불법음반들을 들을때 그 불법음반중에는 정태춘 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때의 놀라움이 란...

처음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이란 테잎을 처음 들었을때는 정말 충격이 아닐수 없었다. 과연 내가 아는 정태춘이 맞을까? 정말 의외의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사람이 우리 편이었구나 역시 정태 춘이다하는 원군을 얻은 기쁨과 함께 ... 그러나 그 당시에는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은 즐겨부르지못했다. 민중가 요의 단순한 코드, 주법과는 틀리게 어려운 쓰리핑거의 '아 대한민국'은 내 실력으로 노래와 기타연주와는 연결이 잘 안되었으니 민중가요치고 정태춘 의 노래들은 좀 어려운 노래였었다. 당시로서는 민중가요중에 얼마 안되는 감상용 음악이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당시의 큰 집회때나 공연에서 듣는 정태춘의 노래들은 그렇게 친 근하고 쉽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좋아했던 가수임에도 한동안은 그 를 외면했었다.그때 당시에 나는 한참 단순할 때 였음으로... 그러나 시간이 흘러 민중가요중에서도 유행했던 노래들이 이제는 한물 간 것처럼 느껴지는 지금, 다시 듣는 '아 대한민국'과 그의 노래들은 질리지 않는 감동을 여전히 전해준다.

언젠가 말지에 기고된 '자유'공연에 대해 평을 쓴 이영미씨의 글을 본적이 있는데 록 위주로 꾸져진 자유의 공연의 어설픈 저항정신을 비판하며 우리 시대의 록의 저항성을 올바르게 구현하는 가수는 록가수가 아닌 포크가수인 김민기와 정태춘이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동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자유공연을 볼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자유공연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무대에 서는 밴드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의 미를 알고 공연에 오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의미는 있는 것일까? 그저 록음악이 좋아서 그곳에 갔던 것이고 의미보다는 음악에 더 치중하 였기에... 공연을 보고 나오면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항상 느껴야했다. 일부로 의미를 찾는 것도 음악공연에서는 안좋은 일이지만 일단 의미를 달 았으면 그의미에 맞게 치뤄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록과 포크의 장르적인 문제일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 다. 가사전달이 보다 용이한 포크와 가사보다는 음악적인 파괴력이 뛰어난 록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것일 테지만 아직까지 록은 여전히 아쉬운 것 이 많다. 중학생때부터 록음악을 듣고 컸지만 록음악은 우리 것이라기보다 는 남의 것이라는 느낌을 항상 짐처럼 지고 들어야하는 부담감도 별로 유 쾌하지만은 않다. 록의 저항정신을 말하는 록커들도 우리의 저항이 아닌 남의 저항을 말하는 것같은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마치 우리나라의 피터 지는 가두시위의 처절함보다는 피케팅을 하며 건물주위를 도는 미국식의 시위와 우드스탁처럼 낭만적인 저항이 연상되는 것 처럼....

그런 가운데 정태춘의 노래는 피터지는 가두시위의 처절함과 단식투쟁의 결연함이 베어있다. 김민기의 노래가 그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지식인의 고 뇌를 그렸다면 그리고 지금은 한발짝 물러난 상태라면 정태춘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아이가 성장을 하면서 세상을 알고 분노하고 처절하게 싸우는 그리고 좌절하는 성장과정을 보여주었고 지금은 좌절하고 있으면서도 희망 을 쉽게 버리지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김민기의 노래가 민중가요가 생산되지않고 있을 시기에 민중가요적인 정서를 가지고 저항가요에 목말라 있던 대중들에게 이슬비와 같았다면 정태 춘은 이미 민중가요가 정착되어있던 시대에 벼락을 치는듯한 충격을 주며 정태춘식 민중가요를 정착를 시킨 소낙비가 같다고 할까 다시말해 김민기는 시대가 그의 노래를 민중가요로 만들었다면 정태춘은 자신 스스로가 민중가 요를 부르는 가수로 변신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이제 '정동진'얘기를 하자. '92년 장마,종로에서'이후 근 5년만에 나온 이번 음반은 그동안 하고 싶었 던 말도 참 많았을텐데... '정동진'은 글세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정동진 을 처음 듣고 느낀 것은 아직도 정태춘은 90년대로 부터 탈출하지못했구나. .. 그것이 아직 옆에 있다는 동질감보다는 90년대의 좌절과 고뇌를 아직도 벗어던지지 못한 안스러움이랄까... 그냥 바보처럼 잊어버리고 멍청한 미소 로 살아버리지...라는 말을 하고 싶을 정도로 정태춘은 다른 사람은 이미 벗어던지고 도망쳐버린 90년대의 멍에를 힘겹게 우직하게 메고 가고 있 다. 정말 바보처럼....그가? 우리가? '정동진'은 동전의 양면처럼 각각의 두가지의 개성들이 공존하고 있다. 첫 곡 '정동진'에서처럼 박은옥의 맑은 목소리는 80년대의 그들의 모습처럼 서정적이고 맑은 하늘을 보여준다

가사 또한 한편의 서정시와도 같다. 그러나 '민통선의 흰나비'처럼 정태춘 이 부르는 노래들은 90년대의 정태춘을 보여주는 것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 리는 우울한 날을 보여준다. 이 노래들을 들으면 이제는 된장국보다는 쓰 디쓴 소주가 먼저 떠오른다.

80년대 정태춘의 노래들은 한편의 풍경화를 보여주었다. 조용한 산사의 아 침을, 시골의 초가집의 이웃들을 한폭의 캔버스에 옮겨 놓은 듯한...앨범 '정동진'에서도 그런 풍경들을 보여준다. 첫곡 '정동진'에서는 보여주는 소 낙비가 지낸간 정동진의 풍경이 '민통선의 흰나비'에서는 철책을 사이에 두고 있는 민통선의 풍경이 그리고 '건너간다'에서처럼 멍청하게 한강을 건 너는 버스의 풍경이...그러나 90년대의 정태춘은 풍경을 캔버스에 옮기는 것이 아닌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보여준다. 어쩔때는 보도카메라를 멘 기자 처럼 또 어쩔대는 영화속의 찰영감독처럼 현실속의 풍경을 보여준다. 아무에게서나 이런 느낌을 받을수는 없다. 이런 느낌은 정태춘이기에 가 능한 것이고 정태춘만이 가능한 것이다. 정태춘은 가수이기 이전에 시인이 며 화가라고 생각한다. 음유시인이란 말이 있지만 그말은 정태춘에게는 어 울릴 것같지가 않다. 어쩔때는 시사프로의 리포터처럼 또 어쩔때는 농촌 의 한가로운 풍경을 보여주는, 이시대의 썩은 곳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는 카메라의 렌즈처럼 그가 보여주는 장면들은 결코 가벼울수가 없다. 반면에 박은옥이 부른 노래는 '정동진'을 제외한 '들국화' '소리없이 흰눈 은 내리고'는 보도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옮기며 찰영한 활동사진이 아닌 배경을 고르고 골라 찍은 예술사진 한 장같다나 할까. 정태춘의 식의 동적 인 풍경이 아닌 정적인 풍경을 렌즈에 담은 것같다.

이 곡들의 주인이 '전대협진군가'의 윤민석씨이니 당연히 그럴수도... 그 러나 또하나의 의문이 이어진다. 진짜 '그 윤민석 맞어?' 알게모르게 윤민 석은 '전대협진군가전사의 맹세'라는 명작들에 의해 대중들에게 판이 박 혀버렸다. 그 윤민석이 이렇게 서정적이면서 감미로운 노래를 만들었다니 어찌 보면 사랑하는 이들의 이별을 그린 것 같은 '소리없이 흰 눈은 내리 고'는 감옥으로가는 호송버스안에서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만들었다니.. .호박은 검은줄을 그어도 호박일 수밖에 없는 진리가 숨어 있다...나는 이 노래가 정동진 다음으로 가장 뜰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랑 노래로만 알고 있다가 노래의 사연을 알게되면 반응이 어떨까...재미있다. 여기서 윤민석과 정태춘의 차이를 발견할수 있다. 아마 정태춘이 이 광경 을 그렸다면 은유가 아닌 직유로 보다 사실적인 풍경을 그렸을 것이다. 정태춘의 사실적인 표현은 '5.18'을 들어보면 확연히 볼수가 있다. 벌써 18년전의 광주를 오랜된 필름을 재편집하듯이 보여주는 '5.18'은 이제는 가벼워 질때도 된것같은 광주를 여전히 무거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기 존의 정태춘의 곡들의 단순한 악기편집이 아닌 가장 많은 악기들과 코러 스,구음,음향효과까지 보태어 노래의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헤비메탈이라는 록의 한 장르가 있다. 무거운 금속이라는 표현처럼 무거 운 사운드로 일관된 음악,많은 민중가수들이 록을 도입하고 그룹들이 탄생 했다. 그리고 음악적으로 헤비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지만 아 직까지는 그들의 사운드는 정태춘보다 결코 무겁지가 못하다. 내공의 차이 가 일까? 앨범'정동진'의 마지막 곡인 '수잔리의 강'을 들으면 정말 오랜만의 듣는 그들 부부의 하모니를 들을수 있다. 그렇게 잘 어울릴것 같지도 않은 두 목 소리가 만들어내는 하모니란, 아름다움, 찬란하고 천박한 눈만 속이는 아름 다움이 아니다. 인생을 아는 세상을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가난하지만 소박한 삶이 있고 노동이 있는 아름다움이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정희성 시인의 시'저문강에 삽을 씻고'가 생각나 는 것은 왜 일까?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우리네 아버지,어머니가 생각나 는 것은 또... 노래의 마지막에는 이 부부가 같이 합창을 하는 대목이 있 다. 실제로 목소리가 그렇게 잘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귀로 듣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듣는 그들의 노래는.... 이것만큼 완벽한 하머니는 없 을 것이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셋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뱀발: 끝맺음이 약간 부실하기에 시로 때웠습니다. 그리고 정태춘의 음반을 얘기하면서 음향에 대한 부분은 도저히 말할 엄두가 나지않아 음향에 대한 부분은 쓰지않았습니다.

lonesomecrow 가리스마★

2 장신고[ | ]

98년 무슨 잡지에다 썼던 글인거 같습니다. 하드에서 놀길래...--;

나는 난감하다. 지금은 20세기 말이다.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와 테크노의 물결이 넘치는 '98년에 중년부부의 새 음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이들은 우리들이 말하는 소위 '포크'가 수(한때는 '운동권 가수'라고도 하지 않았던가?)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포크의 음유시인'이라 는 호칭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럼 여기에서 더 이상의 진전은 있을 수 없는가? 세 기말이라는 이유로 한국이라는 지역이 포크라는 음악장르가 제외되어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는데...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정동진/건너간다]는 전작 ['92년 장마, 종로에서]가 나온 지 5년 만에 나온 새 음반이자 ([아! 대한민국]과 ['92년 장마, 종로에서]가 일반 레코드 점에 진열된 것 은 '96년이지만) 그들의 20주년 기념음반이기도 하다. 이들은 언제나 현재를 조망(perspective)하 여 그 이야기들을 노래 속에 담아왔다. 데뷔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자세에서 벗 어난 적이 없다. [정동진/건너간다]역시 그러한 자세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작과 똑같 은 음반은 아니다. 최성규의 세련된 리듬기타와 슬라이드기타위에 박은옥의 투명한 목소리와 차 분한 관악기의 울림이 실려 정동진에 서 있는 화자의 입을 통해 노래 '정동진(1)'은 시작된다. 이어 정태춘의 '민통선의 흰나비'는 민통선을 날아다니는 흰나비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을 이야 기한다. 세 번째 이야기 '들국화'는 박은옥이 이전에 들려주었던 '봉숭아'의 이미지를 회상하게 한다. 정태춘, 최성규, 이무하가 부르는 '가을은 어디'는 최성규의 편곡이 돋보이는 곡으로 정태 춘이 직접 연주하는 바이올린과 최성규의 클라리넷 소리가 어우러져 시니컬한 가사를 잘 감싸주 고 있다. (앨범전체를 통해 최성규는 이들 부부의 곡에 사운드적 변화의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편곡은 물론이거나 와 다양한 악기의 연주를 도입함으로 이들의 곡 을 더욱 세련되게 만들어 내었다.) 박은옥이 부른 '소리 없이 흰눈은 내리고'는 들국화와 함께 윤민석의 곡이다. 정태춘의 계속되는 삶의 이야기 '건너간다'는 가라앉은 첼로소리와 함께 시작 한다. 그가 바라본 세기말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말하는 곡이다. 이어지는 곡 5.18은 '건너간다' 와 함께 그의 변치 않는 삶에 대한 자세를 잘 보여준다. 그 뒤에는 박은옥의 '정동진(2)'가 조동 익의 새로운 편곡으로 실려 있다.

하루일과가 끝나는 노을지는 저녁의 귀가를 담고 있는 '수진리 의 강'은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함께 부른 마지막 곡이다. 한 곡 한 곡 교차하여 들리던 정태춘 과 박은옥의 목소리는 이 곡에서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 내고, 저녁(시간적)과 강(공간적)이라는 서로 다른 대상이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모여든다는 새로운 공통이미지를 가지게된다. 이러한 전 체적인 앨범의 구성과 이 곡 자체의 구성은 매우 흡사하다. 하나 하나의 곡이 가지는 특징적인 부분도 무시됨 없이, 이러한 이중적 구조(곡과 음반의 구성)의 공통점을 통해 [정동진/건너간다] 가 하나의 완전한 앨범으로 보여지게 한다.

이들은 90년대의 변화한 세상을 바라보며, 무대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한다. 이들은 오랜 친구처럼 편안 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 함께 노래 부르고 얘기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아름답다고 생각하 는 세상을 위해 부지런히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는 이들은 언제나 같은 자세로 음 악을 부르고 있다. 이 음반에는 이러한 이들의 소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자신들의 음악에 대 한 종합적 반성과 새로운 음악적 변화에 대한 시도가 담겨 있는 이 음반에서 표면적 분노는 찾 아 볼 수 없다. 그러나 삭제된 것, 가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98년 우리 삶의 한 부분이 이 음반을 통해 시간이 지나도 살아 숨쉴 것이다. 당신은 이 곡들을 듣고 충분한 미적 감흥을 얻을 수있을 것이다. 만일, 당신에게 유행의 최첨단에 서고자 하는 강박관념만 없다면...

-- 장신고 2003-12-17 1:23 am


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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