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단 진화 이론 설명서

1 개요

초간단 진화 이론 설명서
  • 저자: Jjw
  • 2014-10-09

생물학에서 진화는 생물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진화 이론은 여전히 여러 가지 이유로 가장 많은 공격을 받는 과학 이론 가운데 하나이다. 진화 이론을 공격하는 진영의 대표는 아무래도 기독교 근본주의일 것이다. 이 사람들은 성경이 문자 그대로 진실이라고 믿는다. 사실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종교가 어찌 믿건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을 가지고 과학을 공격하더라도 대게의 경우엔 그냥 여러분끼리 그렇게 '믿는' 거야 우리가 뭘 어쩌겠어요 하고 넘어간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주장을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이미 과학적으로 거짓으로 판명났거나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것을 부득부득 과학이라 우기는 경우도 있다. 종교의 가장 큰 적은 무신론이 아니라 사이비 종교이듯이 과학의 가장 큰 적은 사이비 과학 또는 과학적 사기이다.

뗏목지기님이 링크를 건 덕분에 알게된 글 하나[1]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글은 정확치 않은 유전학적 지식(사실 유전학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듯 하다), 진화 이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 거짓으로 판명난 유사 과학에 대한 옹호로 가득차 있다. 우선 이 글의 요지는 이렇다.

  • 1. 획득형질은 유전된다.
  • 2. 다윈이 제시한 자연선택은 진화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 3. 획득형질의 유전은 어떠한 '의지'가 진화에 개입될 여지를 남긴다. (이 글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라 생각한다.)

이상의 사항을 증명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고 있다.

  • 1. 플레밍 젠킨의 사고 실험 - 어떤 백인이 흑인들만 사는 섬에 난파되었다. 그 백인은 흑인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해서 그곳의 왕이 되었다. (다윈의 주장은 우월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하였으니 그 주장대로라면 세대가 흘러 이 섬은 모두 백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백인이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은 흑인 뿐이고 결국 1세대는 50%의 백인 2세대는 25%의 백인.. 이렇게 하여 몇 세대가 지나면 도로 모두 흑인이 될것이다. 그러니 다윈이 틀렸다.
  • 2. 진화이론은 중간단계 화석이 발견되지 않아 난항을 겪었다. (라고 말하지만 그 근거는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다.)
  • 3. 윌리엄 베이트슨이 진화 이론에 도입한 멘델의 유전법칙은 진화이론의 목숨은 연장시켜 주었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 (이 주장에 대한 명확한 근거역시 제시 되지 않고 있다.)
  • 4. 파울 캄머러의 산파두꺼비 실험은 과학적 사기로 판명되어 매장되었으나 최근 재평가를 받았으며(재평가의 근거라고 제시되는 논문은 그렇게 볼 수만은 없지만 여기선 넘어간다) 획득형질 역시 유전될 수 있다.

사실 생물학에 대해 깊이 있는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나 같은 덕후는 좀 외롭기 마련인데... 이 건 참 어디서부터 까야 될 지 난감한 수준이다. 이 주장을 비판하려면 최소한의 생물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단 진화이론과 관련된 생물학적 지식을 몇 가지 살펴보고 결론에서 저 주장을 비판하기로 한다.

초간단 기초 생물학(이라고 하지만 좀 길다...)

2 유전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공교육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누구나 DNA가 유전물질임을 안다. 하지만 실제 유전이 일어나는 과정은 그리 자세히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는 간단하나마 유성생식에서 일어나는 유전자 전달과 살아가면서 나타나는 유전자 발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잠시 생물 시간에 배웠던 것을 상기해 보자.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은 단수분열을 통해 생식세포를 만들고 이 생식세포는 배우자의 생식세포와 결합하여 새로운 개체로 발달한다. 통상적으로 생물을 이루는 생물을 체세포라고 하고 이들 체세포는 각각의 세포마다 모두 동일한 염색체 세트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경우 염색체의 수는 23쌍이다. 이렇게 쌍으로 이루어져 있는 체세포의 유전자 량을 보통 2n으로 표기한다. 그런데 단수분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생식세포는 체세포가 갖는 유전자량의 절반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보통 n이라고 표기한다. 인간의 경우 남성의 정자에 들어있는 23개의 염색체와 여성의 난자에 들어있는 23개의 염색체가 결합하여 새로운 23쌍의 염색체를 갖는 수정란이 생긴다. 이때 정자와 난자의 유전자량은 n, 이 둘이 결합한 수정란의 유전자량은 당연히 2n이 된다. 그런데 실제 유전 과정이 이렇게 간단할까? 천만에!

우선 생식세포가 만들어질 때에는 유전자 재조합이 일어난다. 아래의 그림과 같이 유전자를 뒤죽박죽 섞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의 산물인데 이렇게 뒤죽박죽 유전자를 섞는 쪽으로 진화한 녀석들이 적응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가 겪게될 환경 변화가 어떠한 것이든 다양한 유전자 조합을 가진 후손을 남겨 놓으면 그 중에는 환경 변화가 심하더라도 살아남는 녀석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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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전자 재조합이 일어난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는 과정에서도 몇 가지 특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진핵세포생물의 경우 세포안에는 미토콘드리아라고 불리는 세포소기관이 존재한다. 이것은 세포가 산소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세포소기관인데 세포핵과는 독립적인 별도의 DNA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자와 난자에 모두 미토콘드리아가 있지만 수정란이 되어 남는 것은 난자의 미토콘드리아 뿐이다. 수정란이 된 후 분열이 일어나기 전에 정자의 미토콘드리아는 모두 소멸된다. 따라서 미토콘드리아 DNA는 철저히 모계로만 유전되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고 어머니는 외할머니로부터 받은 것이고 외할머니는 또 외할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고... 그렇게 하여 현생인류의 최초 공통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나중에 돌연변이를 설명하면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DNA는 매우 안정적으로 똑같은 DNA를 복재해 내지만 대략 100만번에 한 번 꼴로 실수를 한다. 따라서 두 집단의 미토콘드리아 DNA의 차이를 조사하면 대충 언제쯤 서로 떨어지게 되었는지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이게 유전자인류학자들을 먹여살려주는 기초 요소이다. 최초의 인류 공통조상의 어머니를 학자들은 미토콘드리아 이브라고 부른다. 현생인류의 분화정도를 미토콘드리아 DNA를 살펴보면 인류는 대충 아프리카에서 발원하여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일부 종교가 주장하듯 유대인이 후손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알래스카를 넘어간 용감한 선조들이 시조이다.( 인류 미토콘드리아 DNA 하플로그룹 )

미토콘드리아 DNA 외에도 모계유전을 하는 경우는 많다. X형 샤르코 마리 투스 질환과 같은 성염색체 위에 존재하는 돌연변이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모 재벌 가문이 이 병의 유전인가가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여기선 주제와 관계없으니 패쓰. 남성의 경우 Y염색체를 통째로 아버지에게 물려받기 때문에(이 경우에도 유전자 재조합은 당연히 한다.) 부계유전이 일어난다.

멘델은 몇 세대를 계속해서 흰 꽃만 피우던 녀석(이런 걸 순종이라고 한다)과 몇 세대를 계속해서 보라색 꽃을 피우던 녀석을 교배시키면 그 후세(이걸 잡종이라고 한다)는 무조건 보라색 꽃이 나오더라는 걸 발견하였다. 이렇게 잡종에서 우세를 보이는 유전형질을 우성이라고 하고 나타나지 않는 것을 열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잡종 1세대 끼리 다시 교배를 시켰더니 보라색 꽃을 피우는 녀석들이 여전히 많았지만 개중에는 흰 꽃을 피우는 녀석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잡종 2세대에서는 다시 열성 인자가 등장한 것이다. 멘델은 하나의 유전형질 자리(이 경우엔 꽃의 색)를 놓고 다투는 우성과 열성의 유전인자가 있다는 것과 이들을 결합할 때 이 유전인자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여전히 존재하지만 발현되지 않을 뿐이란 것을 증명하였다. 이것을 멘델의 유전법칙이라고 한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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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멘델의 경우엔 비록 삶은 많이 꼬였지만 실험만큼은 억세게 운이 좋았는데 그가 관찰한 유전인자가 모두 독립적인 염색체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깔끔한 결과를 가져왔다. 만일 완두콩 껍질을 쭈글쭈글하게 만드는 유전인자와 흰꽃을 피우게 하는 유전인자가 하나의 염색체에 있었다면 그가 원하는 실험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 생물학은 훨신 더 복잡하고 다양한 유전형질의 발현을 다룬다. 어쨌든 이글에서 필요한 것은 여기까지니 "나머지 자세한 과정은 생략한다."

여기까지를 정리해보자. 유전은 유전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과정은 복잡하며 다양한 경로가 있다. 유성생식의 대표적인 단수분열 과정에서도 유전자 재조합을 반드시 거치며 따라서 한 개체가 갖는 유전자조합은 매우 다양한 변이를 거치며 후손에게 전달된다. (이게 형제라도 서로 얼굴이 다른 이유다.) 어떤 유전자는 몇 가지 이유로 모계 유전을 하거나 부계 유전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간단히, 생물은 보다 다양한 후손을 남기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

3 돌연변이 - 진화의 기원

앞서 유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서 생물은 다양한 후손을 남기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는 진화의 기본적인 동력인 돌연변이를 살펴보려고 한다. 돌연변이는 DNA의 복제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하여 후손의 유전형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DNA의 복제는 복잡한 생화학 반응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가끔, 그러니까 대충 100만번에 한 번 꼴로 실수가 일어난다. 이 정도는 매우 적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 번 일어난 변경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후손들은 모두 변경된 DNA를 가지고 살 수 밖에 없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DNA가 변형되니까 시간이 오래 지나면 결국 DNA의 변형은 점점 커지기 마련이다. 이것으로 끝인가?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우선 생물은 대개의 경우 자신의 서식처에 훌륭하게 적응하여 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돌연변이는 이러한 적응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오히려 불리하고 몇 대가 지나지 않아 소멸되기 마련이다. 한편, 한 개체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DNA는 무수히 반복하여 복제된다. 이 과정에서도 실수는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복잡한 구조의 생물들은 대부분 DNA 복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 지 검사하는 별도의 과정을 거친다. 마치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데이터 복사에서 패킷 단위로 원본과 사본을 비교하고 다음으로 진행되듯이 DNA 복제도 일정 단위로 이상유무를 검토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한 평생 수십억번의 복제를 거치면서도 그닥 걱정없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완벽하지는 않아서 각종 질환이 발생한다. 암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참고로 유전등에 의한 희귀난치성질환의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 http://helpline.nih.go.kr/cdchelp/disease.gst?method=listView )


잠깐 용어 설명

여기서 잠깐 멈추고 용어 설명을 해야겠다. 나는 지금까지 글에서 DNA, 유전자, 유전형질, 염색체 등을 아무 설명없이 사용해왔다. 유전학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게 뭐가 뭔지 모르겠다 싶어서 이 참에 잠깐 정리를 하고 지나간다. 먼저 아래의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은 하나의 염색체를 이루는 DNA를 보여주고 있다. DNA, 즉 디옥시리보스핵산은 디옥시리보스라고 불리는 단당류 분자 한켠에 네 종류의 염기가 매달려 긴 사슬을 이룬 것이다. 네 종류의 염기는 잘 알려진 것처럼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이다.

차근 차근 풀어보자. 디옥시리보스는 5탄당이다. 하나의 디옥시리보스 분자에 탄소원자가 5개 있다는 소리다. 분자구조는 아래의 그림과 같다.

 

이렇게 생긴 단당류의 분자 한쪽에 염기가 달라붙고 다른 한 쪽엔 인산이 달라붙는다. 인산은 세개까지 연달아 달라붙을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은 아데노이신삼인산이다. 잘 보면 디옥시리보스의 한쪽에 뭔가 커다란 덩어리가 달리고 다른 한 쪽에 인산이 쪼르르 세개가 매달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흔히 약자로 ATP라고 불리는 이녀석은 세포 속에서 일종의 건전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뒤에 달려 있는 인산은 쉽게 분해되는 데 이게 분해되면서 에너지가 발생한다. 세포가 하는 온갖일은 모두 APT가 제공하는 에너지에 의존한다.

다시 디옥시리보스 구조를 보면 오각형의 고리 모양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이 고리 가운데 한 쪽이 풀려서 다른 디옥시리보스 구조들과 쭉 연결되면... 그렇다 기다란 사슬이 만들어진다. 이 사슬 한 쌍이 서로 마주 보고 염기가 사다리처럼 연결된 것이 DNA이다. 염기들은 수소결합을 이용하여 아래의 그림처럼 사다리를 만든다.

 

이 사다리가 꽈배기처럼 꼬이기 때문에 결국 이중나선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꼬인 이중나선은 매우 길게, 그러니까 염색체 하나에서 끊김없이 이어져 있다.평소에는 사슬처럼 풀어져 있어도 큰 문제가 없지만 세포 분열을 하려면 아무래도 정렬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DNA사슬을 뭉쳐 놓을 필요가 생기는데, 진짜 실패처럼 생긴 단백질이 DNA 실을 감는다. DNA가 무척 길기 때문에 실패도 많이 필요하다. 이렇게 아주 많은 실패에 감긴 DNA 덩어리... 이게 염색체이다. 지난 번에 언급했듯이 인간의 염색체는 모두 23쌍으로 어느 세포나 똑같이 그러니까 그게 피부 세포건 간 세포건 모두 23쌍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그게 어떻게 어떤 것은 피부가 되고 어떤 것은 간이 되는 지는 나중에 다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기나긴 DNA 사다리는 정보를 보관하고 있다. 맨앞의 그림을 다시 보면 하나의 유전자는 DNA의 일정 구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과 유전자 역시 엑손이라는 구간과 인트로라는 구간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엑손은 처음과 끝을 나타내는 지시자 역할을 하고 인트로는 실제 단백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정보가 담긴 구간이다. 사실 유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를 복제하는 일과 단백질을 만들 정보를 제공하는 일 딱 두가지이다. DNA가 유전자를 품고 있는 방식은 마치 하드디스크가 파일을 저장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한참 정보를 읽고 있던 CPU가 EOF를 만나면 아 파일 끝났구나 하고 판단하듯이 한참 정보를 복제하던 효소는 엑손을 만나면 손털고 DNA의 지퍼를 잠근다. (뭔가 어려운 걸 설명하기 위해 어려운 예를 들었다는 느낌이지만 넘어가자.)

여기까지 초간단 정리하면; DNA는 4종류의 염기가 매달린 기나긴 탄소 사슬이다. 이 염기가 적당한 길이로 나뉘어 유전자를 이룬다. 유전자는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엑손 구간과 정보를 담은 인트로 구간으로 나뉜다. 따라서 하나의 DNA 사슬은 여러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한 세포엔 DNA 사슬이 여러개가 있고 필요하다면 뭉쳐놓을 수 있는데 이게 염색체이다.

유전형질은 유전자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전적 특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유전형질의 발현에는 많은 유전자가 여러 단계에 걸쳐 개입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유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 유전형질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마치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수 많은 공정을 거치고 그 공정마다 필요한 자재와 작업절차가 있듯이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인간의 피부색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비교적 단순한 유전형질도 여러 유전자의 공조에 의한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DNA 안에 있는 유전자들이 수 없이 복제되다 보면 원본과 다른 '실수'가 생긴다. 이게 돌연변이다. 돌연변이의 발생은 순전히 확률에 의한 것이고 어디에 어떻게 생길 지 알 수도 없다. 치명적인 실수는 개체가 발생하는 도중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기 마련이기 때문에 대부분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돌연변이가 생겨나고 그 중에는 간혹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거나,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도 생겨난다. 이게 나치독일뿐만아니라 한때 서구를 풍미했던 우생학에 의한 인간 개조가 성공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아무리 우월한 유전자만 모아서 완벽한 후대를 만들어봐야 소용없다. 돌연변이는 또 생긴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하드디스크의 EOF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실수가 발생했지만 멀쩡히 살아남았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영장류의 염색체는 24쌍인데 유독 인간만 23쌍이다. 한 때 이 것은 진화를 부정하는 증거로 악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보다 면밀한 조사 결과 인간의 2번 염색체가 사실은 두 개의 염색체가 붙어버린 녀석이란 걸 발견했다.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염색체도 처음 시작 부분과 가운데 부분의 구조가 다르다. 그런데 인간의 2번 염색체는 아래의 그림과 같이 끝에 있어야 할 녀석이 가운데 하나 더 있다. 가능한 설명은 하나뿐. 두 염색체가 붙어버린 것이다.

 

인간은 이 외에도 생물학적으로 볼 때 생존에 매우 불리한 돌연변이를 겪었는데 몸의 대부분에서 털은 그저 장식품이라거나, 훌륭한 도구이자 무기인 송곳니 역시 장식품 수준이되었다거나... 그럼에도 잘만 살아남아서 지구를 매우고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유전자의 변이가 생존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이란 것이다. 털없는 생물이 빙하기의 겨울을 견디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인간은 불을 피우는 재주로 환경의 변화를 극복하였다.

한편, 돌연변이 자체가 생존에 크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정상적인 생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복잡한 구조를 가지는 생물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이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항체가 형성되서 다음 번에 똑같은 녀석이 들어오면 한방에 진압해버린다. 그런데 인플루엔자는 빠른 돌연변이 때문에 계속 모양이 바뀌고, 면역체계는 매번 새로운 녀석들과 싸움을 벌일 수 밖에 없다.

또하나 기억해 두어야 할 점은 DNA 사슬의 많은 부분이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슈도진(pseudogene)이라는 것이다. 이 구간은 마치 쓰고 지우기를 하도 많이해서 복구가 불가능한 하드디스크 같은 상태로 남아있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는 개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돌연변이는 그저 확률적으로 일어나며 어떠한 의지를 갖는다거나 계획이 존재한다거나 할 수 없다. 그게 생물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은 사후 결과로서만 나타난다. 밑에 두 사진은 같은 종류의 나방이다. 밝은 색과 검은 색은 그저 완두콩의 꽃 색처럼 어쩌다 엊게된 돌연변이일 뿐이다. 그러나 공업화가 진행된 19세기 런던 교외에서 밝은 색의 나방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는데 매연이 뒤덮인 건물과 나무 위에 앉은 밝은 색 나방은 '저 여기있어요'하고 네온사인을 켜둔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했고 새들은 이 맛있는 광고판을 가만두지 않았다.

 

 

진화 이론을 비판하는 쪽에서 주장하는 것 중엔 무작위적인 돌연변이가 어떻게 이렇게 복잡한 구조를 탄생시킬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있다. 물론이다. 진화는 스스로를 설계하는 아주 정교한 유전자에 의해 이루어져 왔고 고철 야적장에 태풍이 몰아친다고 보잉747이 저절로 조립될리는 만무하다. 이 경우엔 다윈의 설명을 들어볼만 하다. 지금 개들은 하운트니 테리어니 하는 아주 다양한 품종으로 세분화되었지만 이들은 모두 하나의 종으로서 서로 교배 가능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성질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도태시킴으로써 품종을 개량(이게 개량인지는 의문이 있지만... )해왔다. 이러한 "인위적 선택"의 기준은 물론 사람이 원하는 어떤 것이다. 자연은 자체로서 어떤 원하는 것이 없을 지 몰라도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사막의 식물에게 네가 일년에 1리터의 물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가능한 녀석은 후손을 남길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후손을 남기지 못할 것이다. 매 세대는 계속해서 돌연변이가 생겨나고 다양한 후손을 남기겠지만 선택의 기준이 엄격한 이상 계속해서 후손을 남길 수 있는 방법도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조상이 아주 다른 경우라도 이러한 조건에서라면 살아남은 것들은 생김새마저 비슷해져 버릴 수 밖에 없다. ( [[수렴 진화] 참조 ) 이것이 "자연선택"이다. 뒤에 플레밍 젠킨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은 매우 다른 개념이다. 플레밍 젠킨은 이를 혼동하여 다른 모든 개체에 비해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한 개체와 같은 존재할 수 없는 가정을 정당화한다. 사회진화론은 진화이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번 글의 초간단 요약: 모든 생물은 돌연변이를 피할 수 없다. 돌연변이에 의한 유전형질 변화는 발생된 이후에 시험대에 오른다.

4 진화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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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스터에서는 피카츄가 진화하면 라이츄가 된다고 하지만, 이건 진화가 아니라 변태라고 해야 맞다.

결론부터; 진화는 세대가 바뀌면서 얻어지는 생물의 다양성이다.

앞의 글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생물은 후손을 남기는 과정에서 돌연변이를 피할 수 없다. 이렇게 발생한 돌연변이는 환경이라는 엄격한 시험대에 올라 후손을 남길 수 있을 지 시험받게 된다. 대부분의 돌연변이가 이 시험에 탈락하여 후손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개중엔 시험을 통과하는 것들이 생긴다. 이렇게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크게 보아 환경 조건에 적응하는데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거나 아니면 오히려 이로운 것이다.

이렇게 하여 살아남게 된 유전형질은 한 집단 내에서 같은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대립형질과 자리 싸움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떤 상황 변화가 생기면 두 집단은 서로 다른 집단으로 분리된다. 예를 들어 보자 (1)편에서 언급한 완두콩의 흰꽃 자주색 꽃은 꽃의 색이라는 "유전형질의 자리"를 놓고 우성/열성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이 경우엔 별다른 변화가 없는 한 완두콩의 꽃은 대부분 자주색이겠지만 늘 흰꽃도 섞여 나오게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완두콩이라고는 나지 않는 나라로 이사를 가면서 완두콩 씨앗을 가져간다고 하자. 이 때 가져간 씨앗이 하필 흰꽃이라면 이 녀석의 유전인자는 열성조합이어서 그 후손은 늘 흰꽃 밖에 피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원래 있던 곳에선 완두콩은 두 가지 색깔의 꽃을 피웠지만 이사간 곳에서는 오직 흰꽃을 피는 완두콩 집단이 생긴다. 인간의 경우에도 이렇게 이주에 의해 고유한 유전형질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근대 이후 혼혈이 일어나기 전 아메리카 원주민은 모두 RH(+)였고 A형과 O형 혈액형은 있어도 B형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알래스카로 넘어간 선주민 집단에서 유전자 병목 현상이 일어나 특정 혈액형만이 남은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집단이었던 생물이 그 내부에서 대립형질들이 나뉘고, 거기에 환경 조건이 개입하여 조건에 맞는 후손을 남기게 한다면 오랜 세월이 흘러 이들은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는 여러 집단으로 나뉘게 된다.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관찰한 것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관찰한 핀치들. 서식지의 먹이 환경에 따라 부리 모양이 달라졌다.

이런 일이 누적되면 낙타와 라마, 또는 침팬지와 인간처럼 서로 전혀 다른 종으로 분화한다. 물론 한 세대간의 유전자 차이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이고, 그것이 백만년 가량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전체 유전자를 놓고 보면 그 차이는 여전히 미미하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는 97% 일치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결국 진화란 하나의 종이 서로 다른 여러 종으로 분화를 거듭하며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그 결과 지구 생태계는 샐 수 없이 많은 다양한 종류의 생물로 가득차게 되었다. 이러한 다양성의 증가에는 최초의 생물이 있었으리라고 생각되는 때로부터 30억년 이상이 걸렸다.

5 진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요즘과 같은 기후 변화의 시대에도 환경이 바뀌는 것은 매우 천천히 진행된다. 한국에서는 대충 3월이면 봄이 오고 10월이면 가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환경이 변하지도 않는데 대립형질이 다른 서로 다른 집단이 동질성을 점점 잃어간다면 그 종은 오히려 멸종해 버릴 지도 모른다. 복잡한 구조를 갖는 생물 종들은 이러한 사태를 막는 여러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가장 손쉽고 확실한 방법은 되도록 혈연관계가 먼 집단과 짝을 맺는 것이다. 식물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자가 수분을 피하고 동물의 경우 되도록 근친 교배를 회피하는 쪽으로 진화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한 집단의 유전자는 혈연관계가 먼 다른 집단으로 이동하고, 그 결과 한 생물종 전체의 동질성을 계속하여 유지할 수 있다. 이를 유전자 이동이라고 하는데, 유전자 이동은 종분화를 방지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같은 생물종의 여러 집단은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동질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지구의 오랜 세월 속에서 특별한 변화는 있기 마련이다. 유성이 충돌한다거나 화산이 터진다거나 새로운 천적이 나타난다거나 어쩌다보니 섬에 고립된다거나... 이러한 일이 생기면 종의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전자 이동은 어려움을 겪게 되고 흩어진 각 집단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고생물학의 연구 결과는 이렇게 생물 종이 오랜 기간동안 하나의 종으로 유지되다가 특별한 계기를 만나 빠른 시간 (이라고 해도 최소 몇 십만 ~ 몇 백만년)에 다른 종들로 분화되었다는 이론을 지지한다. 이를 단속평행설이라고 한다.

한편, 앞서 돌연변이에서도 설명했듯이 환경 조건의 압력과는 무관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엔 순전히 무작위적으로 대립형질이 결정된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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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물 집단이 있다. 이 집단은 환경이나 다른 조건의 영향을 받지 않고 우열관계도 보이지 않는 대립형질을 갖고 있다. 첫 세대는 딱 절반씩 대립형질을 갖고 있다. 다음 세대에 이 형질이 전해지는 것은 무작위 표본 추출과 동일하다. 그런데, 동전 던지기를 직접 해 보면 열 번을 던졌다고 그 중에 딱 다섯번이 앞이란 법은 없다. 수학적 확률과는 상관없이 실재로는 4번이 될 수도 있고 6번이 될 수도 있다. 이 집단의 경우 첫 후손 가운데 열넷이 파란색 형질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다음 후손들은 파란색 형질을 가질 확률이 확 올라간다. 부모 세대의 확률이 1/2 였다면 첫 후손은 7/10이나 된다. 이런 식으로 몇 세대가 흘러가면 어느 순간에 결국 파란색만이 남을 수도 있다. 동전을 던질 기회가 충분히 많다면 적당히 50%의 확률로 앞면이 나오듯이 생물종의 개체수가 충분히 많다면 대립형질의 비율도 큰 변화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개체수가 작다면 단 한 두 차례의 무작위 표출이 기울어져도 결과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를 유전자 부동이라고 한다. 기무라 모토는 이를 바탕으로 중립 진화 이론을 발표하였다. 중립진화이론은 특히 미생물학의 연구 결과에 잘 부합한다.

진화가 이루어지는 과정 가운데 특이한 것으로는 수평적 유전자 이동이 있다. 이것은 한 생물종의 유전자가 진화 계통이 전혀 다른 다른 생물종으로 전파되는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 이동은 특히 단세포 생물에서 자주 일어나지만 다세포 생물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그 때문에 진화 계통도는 더이상 "생명의 나무"와 같은 도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수평적 유전자 이동을 고려하면 진화 계통도는 "생명의 그물"이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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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돌연변이로 생겨난 대립형질이 환경 "변화"의 압박을 받던가 그렇지 않으면 무작위 표본 추출과 같은 효과에 의해서 한 집단의 대표적 특징으로 고착(유전형질의 자리를 놓고 경쟁할 대립형질이 완전히 사라져 하나의 형질만이 그 집단을 대표하는 것을 뜻하는 집단유전학 용어다)되고 이러한 변화가 누적되어 결국 진화를 이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우리는 지구상에 있는 생물종들 가운데 과반이 여전히 단세포 생물이다. 이 단세포 생물들도 사람과 똑같이 30억년 이상의 진화 압력을 받아 변화해 왔지만 여전히 단세포 생물로서 존재한다. 진화란 결국 변화의 결과 다양성이 증가하는 것을 뜻할 뿐이며 딱히 어떤 발전이나 목적이 있지는 않다.

6 진화의 과정과 종류

6.1 자연선택

진화란 결국 종분화의 과정이다. 종분화는 한 집단이던 생물종이 서로 더 이상 동일하다고 볼 수 없는 집단들로 분리되는 것이다. 종분화가 완료된 두 집단은 말과 당나귀처럼 교배가 이루어지더라도 후손이 생식능력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지만, 개, 늑대, 코요태의 경우처럼 멀쩡히 교배한 후손 역시 생식능력이 있지만 생김새와 생활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경우도 있다. 이러한 종 분리는 지리적 격리에 이한 이소적 종분화가 대표적이긴 하지만, 한 집단 전체가 이동하면서 겪게 되는 이동적 종분화, 같은 장소에 살더라도 생활이 달라져서 일어나는 근소적 종분화 등 다양하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는 서식지의 환경 조건이라는 압박 속에서 이루어지며 결국 환경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된다.

환경조건이 주는 압박은 천차 만별이다. 모든 식물에겐 햇빛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진화 계통이 서로 다른 수 많은 식물들이 결국 나무라는 비슷 비슷한 구조를 갖게 된다. 아까시나무는 콩과 식물이고, 능수버들은 버드나무과 식물이지만 결국엔 둘다 깊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높이 뻗는 쪽으로 진화했다. 물론 세상에 큰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에겐 나름의 변화 속에서 환경의 압박을 견뎌낸 진화의 '역사'가 있고 그 결과 서로 다른 길로 들어서서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녀석은 토끼가 되고 어떤 녀석은 호랑이가 되었지만 딱히 호랑이가 토끼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호랑이는 토끼를 잡아먹고 토끼는 풀이나 뜯어먹지만, 토끼는 약간의 풀 숲으로도 많은 후손을 남길 수 있는데 비해 호랑이는 광할한 서식지가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다. 이들은 각자가 받는 진화 압력에 따라 1차 소비자와 최종 소비자라는 생태적 지위를 찾은 것 뿐이다. 그렇다고 진화 압력이 덜해 지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이지만 다시 한 번 반복해두면 유전자의 변화가 먼저 일어나고 그 다양한 변화 중에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쪽이 선택된다는 것이 자연선택의 핵심적인 개념이다.

6.2 성선택

양성생식을 하는 생물은 자연선택 못지 않게 성선택 역시 중요하다. 대부분의 동물은 수컷이 구애를 하고 암컷이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진화되었는데, 아무래도 후손을 낳고 기르는 일의 대부분을 암컷이 감당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수컷은 어떻게든 암컷의 눈에 들기 위해 진화하였다. 그 결과는 공작새 수컷의 화려한 꽁지깃과 같이 극적인 경우도 있다. 생존에 엄청난 불리를 무릅쓰고 암컷의 눈에 띄는 게 우선순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 경우엔 이성의 눈에 띄어야 한다는 조건이 진화 압력으로 작용한다.

6.3 공진화

공진화는 생물 간의 상호 작용이 진화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곤충과 꽃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속씨식물들 가운데 많은 종이 곤충에 의한 수분을 이용한다. 속씨식물의 꽃은 곤충을 유인하는 쪽으로 진화되었다. 꿀을 분비한다거나 곤충의 암컷과 비슷한 모양을 갖는다거나 꽃가루를 가져가기 위해선 반드시 수분을 먼저 하도록 구조가 바뀐다거나 하는 것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이것 말고도 천적 관계도 공진화에 속하는데 도롱뇽의 한 종류인 캘리포니아영원과 이것을 먹고 사는 비단누룩뱀의 관계를 예를 들 수 있다. 캘리포니아영원은 몸에 맹독을 지니고 있다. 이 독은 진화의 역사 어느 한 가운데서 돌연변이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엔 돌연변이가 확실히 생존에 도움을 주어서 맹독을 지닌 이 도롱뇽은 다른 녀석들에 비해 살아남기가 수월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비단누룩뱀도 돌연변이를 일으켰는데 이 경우엔 도롱뇽의 독에 면역이 생긴 것이다.

물론 도롱뇽이라고 다 독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고 독이 없는 도롱뇽이라고 다 잡아먹혀 죽는 것도 아니다. 뱀 역시 마찬가지다. 어디까지나 미국 서부 해안이라는 격리된 지역에서 어쩌다보니 독을 가진 도롱뇽 돌연변이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 독에 면역을 가진 뱀이 생긴 순간 그 지역의 생태계에서 그 뱀은 다른 뱀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유리한 게임을 치르게 된다. 이와 같이 생물이 서로에게 끝없이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선 생물은 생태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 없는 진화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를 붉은 여왕 가설이라고 하는데 거울나라의 앨리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편)에서 붉은 여왕이 한 유명한 말 때문이다. "여기서 제자리에 있으려 죽도록 뛰어야 하지" 앞서 제시한 토끼와 호랑이의 경우에도 토끼는 보다 빨리 천적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잽싸게 도망갈 수 있는 쪽이 더 많이 살아남아 자손을 남기고 호랑이의 경우엔 거꾸로 기척을 숨기고 코앞에서 냅다 사냥감을 덥칠 수 있는 쪽이 더 많은 자손을 남기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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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초간단 요약: 호랑이와 토끼는 각자의 생태적 지위에 적합하게 진화를 했을 뿐이다.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7 획득형질이 유전될 수 없는 이유

결론부터; 간단하다. 획득형질은 유전자 변이를 일으킬 수 없기 때문에 유전되지 않는다.

더 할말은 없지만 좀더 자세히 설명해보자.

  • 1) 유전자의 변이를 일으키는 것은 DNA 복제 과정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이다.
  • 2) 돌연변이는 오로지 확률적 사건이며 방사능 피폭과 같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 있지 않는한 외부의 환경때문에 생기지는 않는다.
  • 3) 획득형질은 유전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범위 내에서만 개체차를 보인다. 아무리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고 사람의 근육 두께가 코끼리만큼 될 수는 없다는 소리다.
  • 4) 획득형질의 차이는 개체가 살아가며 나타나는 유전자 발현( https://ko.wikipedia.org/wiki/유전자_발현 )의 차이일뿐 유전자 자체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 후성유전학 ---

애초에 이 글이 비판하고자 했던 "산파 두꺼비 사건"이란 글에서는 후성유전학을 거론하며 마치 획득형질이 유전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후성유전이란 DNA의 변화 없이 발달 과정이나 살아가면서 나타나는 유전자 발현의 조절을 뜻한다. 즉, 이미 가지고 있는 DNA을 풀 세트 -- 이걸 게놈이라고 한다. -- 는 변하지 않지만 이 중에서 무엇을 사용할 지는 그때 그때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유전자를 사용할 지는 외부 자극에 의해 결정된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굵어지는 이유이다.

후성 유전자 발현의 극적인 예는 어류나 파충류에서 일어나는 단성생식일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경우에 익숙한 나머지 성염색체라고 하면 X와 Y만을 생각하지만, 파충류의 경우 성염색체는 Z와 W로 이루어져 있다. ZZ는 숫놈이 되고 ZW는 암놈이 된다. 평소라면 암컷과 수컷이 양성생식을 하는 것이 다양한 후손을 남기는데 유리하지만, 수컷이 하나도 없는 비상상황이 생긴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Flickr - bslmmrs - Komodo dragon.jpg

코모도왕도마뱀은 단성생식이 가능하다

어떻게든 자손은 남겨야 하겠고 수컷은 없다면 어찌할 것인가? 2006년 잉글랜드 채스터 동물원에 살던 코모도왕도마뱀 암컷 플로라가 혼자서 알을 낳아 부화시켰다.[2] 코모도왕도마뱀은 보통 한 번에 20개 가량의 알을 낳는다. 그런데 플로라는 25개의 알을 낳아 그 가운데 11개가 부화단계에 들어갔고 최종적으로 4마리의 수컷 새끼를 낳았다. 단성생식을 한 것이다. 그러면 왜 모두 수컷일까? 파충류 암컷의 성염색체는 Z와 W이다. 그런데 단성생식 과정에서는 난자의 감수분열이 중복하여 일어난다. 즉, Z만을 갖는 난자는 ZZ가 되고 W만을 갖는 난자는 WW가 된다. ZZ 결합은 정상적인 숫놈이 될 수 있지만 WW 결합은 제대로 유전자 조합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발달이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ZZ 성염색체조합을 갖는 숫컷만이 태어난다. 이러한 파충류의 후성 유전자 발현은 멸종될 지 모른다는 매우 위급한 상황때문에 DNA에 비상벨이 켜진 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어류에서 수컷이 없는 상황이 되면 암컷이 수컷처럼 행동하는 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결국 후성 유전자 발현은 개체가 살아가면서 없던 유전자가 갑툭튀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지만 얌전히 자고 있던 유전자가 비상벨에 맞춰 출동하는 것이다.

8 약은 유사품에 주의하고 과학은 유사과학을 주의하자

이제 서두에서 살펴봤던 저 주장의 근거를 하나씩 살펴보자.

8.1 플레밍 젠킨

플레밍 젠킨(1833–1885)은 에딘버러 대학교의 공과 석좌 교수였다. 하지만 그와 다윈의 시대엔 DNA는 고사하고 유전자가 무엇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현대의 진화 이론을 플레밍 젠킨의 주장으로 논박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애덤 스미스의 이론으로 현대 거시경제학을 비판하는 것과 같다. 오늘날 진화 이론이 Darwinism 이라고 불린다고 다윈의 주장을 100% 다 수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란 점을 기억하자. 과학은 틀렸다 싶으면 아무리 위대한 이론도 가차없이 내던진다. 하지만 다윈이 주장한 진화의 핵심적 개념, 즉 자연 선택에 의한 종분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플레밍 젠킨의 주장은 다윈이 원래 했던 주장만으로도 논박이 가능하다. 다윈이 설명하지 못하였던 건 단 한가지 "어째서 부모의 유전적 특징이 자식으로 이어질 수 있나"라는 것이었다. 당연하지 유전자를 몰랐다니까... 어쨌거나 그의 주장을 다시 살펴보자.

  • (1) 어떤 백인이 흑인들만 사는 섬에 난파되었다. 그 백인은 흑인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해서 그곳의 왕이 되었다.
  • (2) (다윈의 주장은 우월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하였으니 그 주장대로라면 세대가 흘러 이 섬은 모두 백인이 되어야 한다.)
  • (3) 하지만, 백인이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은 흑인 뿐이고 결국 1세대는 50%의 백인 2세대는 25%의 백인.. 이렇게 하여 몇 세대가 지나면 도로 모두 흑인이 될것이다.
  • (4) 그러니 다윈이 틀렸다.

생물은 모두 저마다의 고유한 진화 역사를 갖는다. 진화는 우리의 시간 단위로 보면 매우 느리고 점진적인 변화이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떨어진 모든 것에 우월한 개채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이 예시가 갖는 인종차별적 요소를 잠시 눈감고 넘어가더라도, 플래밍 젠킨은 무엇이 "우월한 특징"인지 설명하지 않고 두리뭉실 넘어가고 있다. 진화학은 유전형질에는 따로 우월한 특징 같은 것이 없다고 본다. 단지 적응에 유리한 특징만이 있을 뿐이다. 흑인이 사는 섬이라고 하였으니 외부와 고립된 열대우림 또는 사바나 지역의 어느 한 지점이라고 가정하자. 그곳에서 적응에 유리한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 쏟아지는 강렬한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야한다. 당연히 검은색 피부가 유리하다. 주변에 사나운 맹수들이 우글거리면 되도록 순발력있고 빠른 달리기를 할 수 있는 근육이 유리할 것이다. 근육엔 백근과 적근이 있는데 백근은 순발력에 적근은 지구력에 더 많이 영향을 미친다. 흑인은 백인보다 약 9~10% 정도 백근량이 더 많다. 단거리 세계 신기록을 달성한 사람들 가운데 흑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이다. 그러니까 발달한 총기와 운송도구, 사회적 분업과 같은 '계급장'을 때고 그냥 정글에 던져 놓았을 때 살아남아 타잔이 될 가능성은 백인보다 흑인이 월등히 높다. 진화학에선 이를 환경 적응도가 높다고 말한다. 젠킨이 말하는 우월함이 적응도를 말하는 것이라면 백인은 결코 열대우림에서 우월할 수 없다. 그들이 우월할 수 있는 환경은 아무래도 고위도지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차는 늘 존재하고 이 백인이 슈퍼맨 급이라서 다 초월해서 우월하다고 전제하고 있으니까 그런가보다 하자. 그 다음은 우월한 것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를 적자생존이라고 한다. 이 적자생존의 논리는 스스로를 Social Darwinism 즉 사회진화론이라고 부른 사회학자들이 주장하여 제국주의 열강들이 전세계를 식민지로 만드는데 써먹었지만 실은 다윈이 주장한 자연선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금까지의 긴 설명을 읽었다면 알 수 있겠지만 자연선택은 사후에 이루어지는 일종의 필터이다. 생물은 되도록 다양한 후손을 남기려 하지만 자연환경은 그 중에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것들만 남긴다. 일종의 채인 셈이다. 그런데 적자생존론은 적자(適者) 즉 우월한 녀석이 살아남는다는 사전적 선택이론이다. 이미 어떤 것이 우월하다는 전제가 있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다. 자연은 이런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강하니까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녀석이 강한 거다." 그리고 "살아남는 비결은 환경 조건에 적응하는 것이다." 저 백인은 난파되었으니 빈 손일테고 흑인들이 어떻게 고립된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반드시 배워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후손에게 유전자가 전달되는 것은 유전자 재조합과 유전자 부동 등 복잡한 과정이 얽힌 문제다. 딱 50% 전달.. 이런 것은 있을 수 없다. 친자확인을 위한 DNA 검사는 어떻게든 전달될 수 밖에 없는 지표 유전자를 골라 쓴다.[3] 인간의 유전자는 대부분의 경우에 거의 동일하고 하나의 유전형질 자리를 놓고 다투는 대립형질은 굉장히 많다. 혈액형의 경우도 ABO식이 널리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 외에도 RH식, MNSs, Lewis Duffy, Kidd 등 500여 가지 항원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ABO와 RH가 유명세를 타는 것은 수혈을 할 때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저 백인과 어느 흑인 여성이 결혼하여 후손을 낳았을 때 어떤 유전형질이 어떻게 전해질 것인지는 속단할 수 없다. 일반적인 경우에 인간은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기 마련이고 집단내에서 통혼을 하다보면 그 집단의 고유한 특징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피그미족의 작은 키나, 알레스카 이누이트의 특징적인 생김새 같은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접한 다른 집단과는 늘 유전자가 섞일 수 밖에 없다. 오래전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의 경우 유럽쪽에 살았던 유대인은 유럽인들과, 팔레스타인에 남아 살았던 유대인은 아랍인들과 유전적으로 더 유사하다. 결국 "인간은 유적존재"이기 때문에 한 명의 개인이 어떤 집단에 유입된 것은 진화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사례가 많다 위구르 출신이었다던 덕수 장씨의 후손이나 항왜로서 임진왜란 때 귀화한 김충선의 후손들은 지금은 그저 평범한 한국사람들이다. 이것은 오히려 다윈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하는데 진화에서 자연이 필터링하는 선택지점은 언제나 "이 환경에 적응하여 살 수 있는가"하는 점일 뿐이기 때문이다.

플레밍 젠킨의 주장은 생물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전제를 사용하여 잘못된 방식으로 문제를 구성하였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가지 더 덧붙이면 저 열화(劣化) 논리가 한 때 유색인종과의 혼인을 금지한 백인들의 주요 논리였다는 것이다.

8.2 중간단계 화석

"창조과학" (이런 모순 형용이 어디 있나 싶지만, 창조경제도 있는 마당에 넘어가자)을 주장하는 측의 단골 메뉴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이들이 없다고 주장하던 중간단계 화석은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다. 물고기의 특징과 양서류의 특징을 동시에 갖는 화석 역시 발견되었고[4] 새와 파충류의 특징을 동시에 갖는 화석 역시 발견되었고... 고생물학은 비유하자면 오랜 세월로 인해 데이터가 마구 파괴되어 버린 하드디스크를 복구하는 작업이다. 도대체 어디에 어떤 파일이 숨겨져있는 지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하지만, 지금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나치게 종교적 신념에 경도된 사람들은 늘 다른 변명거리를 찾기 마련이지만 제발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법을 부정하는 바보짓은 그만두자. 다만 발견하지 못하면 못한대로 지금의 증거들을 사용하여 최선의 설명을 찾는 것. 이게 과학이다.

8.3 멘델의 유전법칙

앞서도 설명했듯이 멘델의 가장 큰 업적은 발현된 형질과는 독립적인 유전형질이 존재하며 유전형질의 발현에는 우/열 관계와 같이 유전형질의 자리를 놓고 싸우는 유전자들이 관여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지금 비판하고 있는 글의 주장과는 다르게 멘델의 유전법칙은 원래 진화론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먼저 열광하였다. "봐라, 콩심은데 콩나지 팥나겠냐?" 그러나, 멘델의 유전법칙이 갖는 함의는 얼마지나지 않아 오히려 진화 이론을 더욱 공고하게 해주었는데, 수 많은 후속연구 결과 대립형질이 매우 많다는 것, 어떤 집단은 다른 집단과 달리 그 대립 형질 가운데 일부를 가지지 않도록 고착되었다는 것. 이 과정에서 환경의 영향이 개입한다는 것과 같은 사실이 속속 밝혀졌기 때문이다. 훗날 염색체와 DNA가 발견되고 그리피스의 형질변환 실험에서 DNA가 유전물질임이 확실해짐에 따라 진화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이론에서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는 주장은 더이상 과학으로 취급받지 않게 되었다. 이걸 적당히 누가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완전하지 않았다고 두리뭉실 넘어가는 것은 현대 생물학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늘 그렇듯이 획기적인 주장에는 획기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두리뭉실로는 안된다.

8.4 후성유전학

후성생물학은 앞서 설명했듯이 이미 있는 DNA의 유전자 가운데 하나가 특정한 환경 조건이 일으키는 자극 (이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아직 분자생물학 수준에서 자세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른다고 막 갖다 붙이면 안된다.)에 의해 유전자 발현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피부색의 변화나 모양의 변화 같은 것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올해 해남에서 발생한 풀무치 대집단을 보자. 풀무치는 단독생활을 할 때는 녹색이지만 집단으로 대량 번식하면 붉은 색을 띄고 행동 양식도 변한다. 이 풀무치들의 후손들도 단독 생활로 되돌아가면 다시 녹색 풀무치가 된다. 어떤 자극이 이 풀무치들이 집단 번식하게 만들었는가는 보다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그렇다고 이 풀무치들의 DNA가 변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란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해남에서 집단 번식한 풀무치.jpg

해남에서 집단 번식한 풀무치

해당 주장에서 제시하는 사기로 판명되었지만 최근 후성유전학에서 재조명을 받았다는 산파두꺼비의 예도 이와 같은 후성 유전자 발현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들이 이걸 획득형질의 유전이라고 주장했다라고 하는 건 견강부회이다. 나는 이 글을 쓴 사람이 최소한 유전학에 매우 무지하다고 확신한다.

한 때 시골 동네마다 돌며 기능이 의심스러운 건강보조식품을 만병통치약쯤으로 팔아치우던 약장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그래도 "몸에 좋은 것"이라는 핑계를 댈지 모르지만 제때에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이들 말만 믿고 진료를 받지 못한다면 정말 끔찍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유사품에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유사 과학적인 주장[5] 역시 같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잘못된 과학적 이해는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큰 지장을 초래한다. 간만에 이렇게 긴 글을 쓰는 이유다.

9 같이 보기

10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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