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생애

1 생애[ | ]

  • 경력
    • 2006년 굿네이버스 친선대사
    • 2008년 경기국제보트쇼·코리아매치컵 세계요트대회 홍보대사
  • 연예매니지먼트 연혁
  1. 배병수[1]
  2. 박진희[2]
  3. 대박기획(대표이사 김정수)
  4. 스타즈(대표이사 김성훈)
  5. 플로라베이직(대표이사 이민자)
  6. 드림엔터박스(대표이사 서상욱)

1.1 유년기 및 청소년기[ | ]

최진실은 1968년 12월 24일 아버지 최국현과 어머니 정옥숙 사이에서 태어났고 동생이 있다. 1968년 12월 24일 새벽 2시 55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성신병원에서 태어났고 혈액형은 B형이며 칼귀가 특징이다. '진실'이라는 이름 때문에 친구들이 자주 놀려대 이름을 지어준 할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으나 성인이 된 후에는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게 되었다. 1945년생인 어머니는 기독교인이었고 최진실 또한 교회를 다녔는데, 신앙심은 최진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섯 살 때까지 서울특별시 은평구 구파발에 살다가 운수업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고양시 삼송리로 이사를 했고 초등학교는 삼송초등학교에 다녔다. 삼송리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살다가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중동 근로자로 떠나면서 은평구 불광동으로 이사를 했고 초등학교도 서울불광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동생은 배우 최진영이다. 배우 최재성과는 6촌 관계이다. 최재성의 아버지이자 최진실과 5촌 관계인 최상현은 연극 배우 출신의 KBS 드라마 연출가였다.[3] 1936년생인 최국현은 KBS 탤런트 공채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으나 경찰 공무원이었던 최진실의 할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배우의 꿈을 접었다.[4] 최진실은 정조의 의무 위반 행위, 폭력 행위, 아동 인권 침해 행위 등의 행태를 근거로 최국현이라는 인물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손위 이복형제가 있고[4], 정옥숙은 최국현에게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결혼 후에 알았다[5]. 1985년에 최국현이 가출을 한 후 최진실의 부모는 별거를 하였고 13년 후인 1998년에 정옥숙은 이혼을 하였다.[6]

최진실은 거울을 보며 연기하는 것을 즐겼고, 장기자랑을 할 기회가 있으면 노래를 부르는 대신에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기했으며, 배우 강수연을 동경했다.[7][8][4] 최진실은 동명여자중학교 출신이고 강수연은 동명여자고등학교 출신인데, 동명여자중학교와 동명여자고등학교는 한 울타리 안에 있다. 최진실이 동명여자중학교 2학년일 때, 강수연은 동명여자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강수연은 1969년부터 배우로서 활동하였다.

TV 드라마를 보고 나면 혼자서 울고 웃고 하면서 1인 5역 흉내를 내기도 하고, 초등학교 5학년 때는 가족들이 자는 동안 벽에 걸린 거울을 떼어 내려놓고 TV 드라마 흉내를 내다가 거울이 가족들 이마를 덮쳐 난리를 피운 적도 있었다.[9]

최진실과 최진영은 서로에게 좋은 연기 파트너였다. 둘은 KBS 탤런트 공채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으나 6개월 과정의 연수비 38만 원을 마련하지 못해 연기자로서의 커리어를 바로 이어가지는 못했다. 이들은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면서 일생동안 정신적으로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5]

학창시절에 예체능에 소질을 보였고[10], 특히 미술에 재능을 보여 미술대학 진학을 꿈꾸기도 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포기했다. 수제비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많았고, 집으로 놀러온 친구들에게 수제비를 만들어 주는 일이 많아서 친구들 사이에서 최진실은 ‘최수제비’라고 불리기도 하였다.[11] 최진실은 연예인이 된 후에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만들어 주는 일을 즐겼다.[12][8]

일요일마다 도화지와 크레용을 들고 친구들과 함께 동네가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그림 그리러 가는 것이 최진실에게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연기와 그림 모두에 흥미가 있었지만 배우가 되는 건 엄두를 내지 못했고 각종 미술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미술교사의 권유가 있어 화가의 꿈을 키웠다.

중학교 때 각종 미술대회에 나가 상을 타오자 미술교사는 최진실에게 미술대학에 가라고 권유하였고, 미술교사로부터 미술에 대한 딸의 재능을 전해들은 정옥숙은 어려운 경제적 상황 속에서도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미술학원에 다닐 수 있게 뒷바라지 해주었다. 하지만 화가의 꿈을 키워가면서도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데 꼭 미술을 해야 하는 건가'라는 갈등을 느꼈다.

1970년 택시 운전사였던 아버지가 결핵성 늑막염에 걸려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소유하고 있던 택시도 팔면서 집안이 기울기 시작하였고 건강을 회복한 아버지가 중동 노동자로 나가 있는 동안에는 경제적으로 안정기를 겪다가 중동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산이 급격히 기울면서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등 본격적으로 생활 전선에 나서게 되며 최진실도 화가의 꿈을 접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신앙심, 맹목적인(버릇과 같은) '학교가기', 친구와 교사의 도움 덕분이었다. 생물 교사 이경훈은 자신의 봉급에서 최진실의 등록금을 내주기도 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예계 진출을 결심하였고, 연예계 진출 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국세청 통계상 1992년에 연예인 중 최고 소득자로 기록되었고, 같은 해 제29회 '저축의 날'에 '대통령 표창장'을 받았다. 연예인이 된 후 최진실은 자신이 경제적으로 궁핍한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는 않았는데, 이것은 오히려 '최진실 신드롬'에 기여하였다.[13][14][15][16][17][18][19][20][21][22]

최진실은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배우가 되었고 어떻게 연예계 생활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대중들을 위해 자신의 성장기와 생활에 관하여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도 숨김없이 털어놓았는데, 이에 대해 '부끄러움을 몰라서'가 아니라 '조금도 지나온 일을 미화시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설명했다.

1.2 청년기 이후[ | ]

1.2.1 활동 개요[ | ]

  • 고등학교 졸업 후, 동생인 배우 최진영의 지원으로 광고계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최진영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모델로 활동하고 있었다. 최진실이 연예계 진출에 대한 뜻을 나타냈을 때, 최진영은 처음에 그것에 대해 반대의 뜻을 표했으나 나중에는 최진실의 뜻을 존중하여 최진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되었다.[23]
  • 1988년 - 4월에 최진영이 계약을 맺고 있던 모델 에이전시를 통해 광고 모델로서 연예계에 데뷔하였다.[24] 이후 한국화장품의 신제품 '센시티브' 광고에 보조 출연자로 섭외되었다. 이 CF는 한국화장품 전속 모델이었던 배우 김희애가 메인 모델이었는데, 최진실은 촬영 과정에서 김희애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메인 모델로 격상되었다. 이 CF가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되면서 광고계에서는 최진실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었고, 이 CF의 감독이었던 박경삼의 추천으로 삼성전자 전속 모델이 되었다. 박경삼은 최진실에 대해 "나는 직업적으로 최진실을 보는 순간 그가 배우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연출가에게만 있는 직감이 아닐까……"라고 말했다.[25][26] 삼성전자 VCR 광고에서 최진실이 선보인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대사가 크게 유행하면서 최진실은 대중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대사의 목소리는 성우 권희덕이 맡았다.[27][28][29] 11월부터 1년간 삼성전자와 전속 모델 계약을 맺었고 전속 계약금은 2천만 원이었다. 그 계약이 만료되고 나서 다시 1년간 삼성전자와 전속 모델 재계약을 맺었고 전속 계약금은 4천만 원이었다. 이렇게 광고 모델 계약금이 2배 상승한 것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삼성전자 전속 모델이 된 후 최진실은 VCR 광고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을 계기로 냉장고, 카메라, 진공 청소기, 전자레인지, 포터블 미디어 플레이어 등 삼성전자에서 나오는 모든 가전제품의 CF를 촬영했다. 최진실을 광고 모델로 기용한 후 삼성전자는 경쟁업체를 제치고 가전제품 판매 1위를 차지하였다.[30][31][32]
  • 1989년 - 2월에 MBC의 특채 배우로 발탁되어, 이미 방영 중이던 MBC 《조선왕조 오백년 - 한중록》(1988년)에 중간 합류하면서 텔레비전 드라마에 데뷔하게 되었다. CF로 얼굴이 알려지자 방송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할 기회도 얻게 되었는데, 어느 날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1981년)의 <미주알 고주알> 코너에 출연하려고 출연자 대기실에서 녹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 때 《한중록》의 조연출가의 눈에 띄어 신인 배우를 찾고 있던 《한중록》의 연출가 이병훈을 만나게 되었으며 이병훈으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아 연기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33][34]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출연할 때 방송사에서 매니저 배병수도 처음 만났고 배병수의 도움으로 영화 《남부군》(1990년)을 준비하던 감독 정지영도 만나게 되었다.[35][36] 4월에 MBC 베스트셀러극장시진읍》에 출연하여 벙어리 역을 맡았는데, 《시진읍》은 지역감정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서 최진실의 TV 드라마 첫 주연작이었다.[37][38] 활동 영역을 광고계에서 방송계, 영화계 등으로 넓히면서 촬영 스케줄이 겹치지 않게 활동 시간표를 짜는 일이 큰 일이 되었고, 이런 상황 속에서 배병수와 계약을 맺었다.[31][39]
  • 1990년 - 1월에 뮤지컬 드라마 MBC 《각시방에 사랑 열렸네》에 출연하였다.[40][39] 5월에 청소년 드라마 MBC 《두 권의 일기》에 출연하여 고등학생 역을 맡았는데, 이 드라마에서 최진실과 배우 고두심은 딸과 어머니로서 만났다. 영화 《남부군》으로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영화 《꼭지딴》에 출연하여 기자 혜지 역을 맡았고, 이 캐릭터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전사라는 평가가 있다.[41][42][43]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출연하여 배우 박중훈과 호흡을 맞췄고 이 영화를 통해 영화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영화사적으로 새로운 영화 문법을 제시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서울에서 관객 20만 명 이상이 들어 흥행에 성공하였다.[44][45][46][47] 연예인들은 통상 방송사에 딸린 분장실을 이용하던 관행을 깨고 최초로 개인 분장사를 대동하고 MBC를 출입하여 방송사에 파란을 일으켰다.[48][49]
  • 1991년 - 영화 《있잖아요 비밀이예요 2》는 1980년대 교복 자율화 세대를 다룬 하이틴 영화인데, 최진실과 최진영이 친구로 함께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다.[50]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에서 입양아 수잔 브링크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을 영화화해서 화제가 되었고, 대한민국 사회에 국외 입양 문제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수잔 브링크는 스웨덴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끝에 종교학자가 되는 인물이다.[51][52] 11월에 휴먼 다큐멘터리 MBC 《인간시대 - 최진실의 진실》에 출연하였다. 연예인이 《인간시대》에 출연한 것은 배우 안성기에 이어 두 번째였다. 최진실은 'CF를 통해 운 좋게 인기를 얻은 벼락 스타'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인간시대》는 최진실의 실체는 무엇이고 그의 애환은 무엇인가를 응시하고자 하였고, 최진실은 처음에는 왜 자신을 《인간시대》에서 다루고자 하는지 궁금해 했으나 곧 대본도 연기 주문도 없는 《인간시대》를 매우 편하게 여겼고, 제작진에 '본 대로 느낀 대로' 자신을 말해 달라고 주문했다.[53][54][55] 11월에는 영화 《숲속의 방》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 자신이 맡은 배역의 캐릭터를 연구하기 위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학생운동가이기도 했던 다섯 살 연상의 막내 이모 정현숙과 함께 이모 모교 대학 캠퍼스를 둘러보고 얘기를 나누며 이모로부터 조언을 구하였다.[56][57] 이는 MBC 《인간시대 - 최진실의 진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12월에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최진실은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으로 '여우 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인기 스타상'을 수상했으며, 최진영은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로 '신인 남우상'을 받아 이들은 최초의 남매 수상자가 되었다.
  • 1992년 - 1월에 영화 《숲속의 방》이 개봉되었는데, 이 영화에서 학생 운동과 현실 타협 사이에서 방황하며 삶의 진실을 찾아 헤매는 대학생 소양 역을 맡았다.[58][59] 1월에는 MBC 《약속》에 출연하여 교사 정인 역을 맡았고, 이 드라마는 최고 41.5%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3월에 MBC 라디오0시의 데이트》의 진행자가 되었다.[60] 6월에 MBC 《질투》에 출연하여 배우 최수종과 호흡을 맞췄고 이 드라마를 통해 청춘스타로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10월에 연예인으로서 처음으로 KBO 리그 한국시리즈에서 시구를 하였다.[61] 10월에는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실시한 '광고 모델 선호도'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최진실은 52%를 기록하여 1위를 차지하였고, 13%를 기록한 유인촌은 남자 광고 모델 중 1위를 차지하였다.[62] 10월에는 저축유공자로서 노태우 대통령이 마련한 청와대 오찬에 초청도 받았다.[63] 12월에 주간 방송정보지 'TV 저널'이 제정한 제1회 '올해의 스타상'을 수상하였다.[64]
  • 1993년 - 영화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서 영어 번역가이자 추리소설 작가 지망생 유라 역을 맡았다. 10월에 토크 쇼 MBC 《김한길과 사람들》에 대중문화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로서 초대되어 개인적 차원의 이야기를 뛰어넘어 대중문화에 대한 현대인들의 취향까지를 논하는 자리를 가졌다.[65] 11월에 토크 쇼 KBS심야에의 초대》에 출연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가수 변진섭과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밝혔다.[66][67] 연예인의 경우 이성교제 사실을 공개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어서 이는 다소 파격적인 행보였다. 작품 출연과 관련한 계약을 할 때 이성교제 문제나 결혼 문제가 계약서에 언급될 만큼 연예계 내부도 다소 경직된 분위기였다.[68] 연말에 5년 동안 자신의 매니저로서 계약을 맺었던 배병수와 계약 해지하였다.[69]
  • 1994년 - 2월에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심리학자이자 여성운동가 강민주 역을 맡았고, 출연료를 영화 제작비로 재투자하였는데, 배우가 출연료를 영화 제작비로 재투자한 경우는 배우 문성근에 이어 두 번째였다.[70][71] 2월에는 SBS와 배우로서 최고 출연료를 받기로 계약했는데, 60분짜리 100회 출연에 1회당 300만 원을 받기로 했고 이는 그 전에 MBC에서 받던 액수보다 4배 이상 높은 금액이었다. 2월에는 최진실과 최진실의 6촌 오빠 최재성이 4월에 SBS에서 방영 예정인 드라마에서 연인으로 물망에 오르기도 하였다.[72][73] 4월에 SBS 《사랑의 향기》에 출연하면서 만화가 영진 역을 맡았고 배우 이병헌과 연인으로 호흡을 맞췄다.[74][75][76][77] 8월에 금융실명제 홍보 모델로서 금융실명제 정착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돼 김영삼 대통령이 마련한 청와대 오찬에 초청을 받았다.[78][79][80] 11월에 서울특별시청은 1394년에 서울을 수도로 정한 후 6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해서 400년 뒤인 2394년에 개봉하기로 하고 남산 '한옥마을'에 타임캡슐을 묻었는데, 서울 시민 최진실의 인터뷰도 이 타임캡슐에 담겼다.[81][82] 12월에 영화 《마누라 죽이기》에 출연하여 영화제작자 차소영 역을 맡았다. 12월에는 대한민국 연예계 '전문 매니저' 1세대였던, 전(前) 매니저 배병수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83][84][85][28] 연말에 MBC 《신(新)인간시대》에서 신년 특집으로 '앞서가는 한국인 50인'이라는 제목으로 분야 별 스타를 조명하게 되었는데, 여론조사를 통해 선정한 이 '앞서가는 한국인 50인'에서 최진실은 여자 연기자 부문 1위를, 안성기는 남자 연기자 부문 1위를 차지했다.[53]
  • 1995년 - 1월에 제1회 '한국 모델 페스티벌'에서 CF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86] 5월에 '배병수 살해사건'의 증인으로 법정에 섰는데, 그 과정에서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거짓 소문에 시달렸다.[87] 6월에 KBS 《체험 삶의 현장》에 출연하였는데, 갯벌에서 조개 잡는 일을 하여 일당을 벌었다.[88] 5월에 SBS아스팔트 사나이》에서 자동차 디자이너 오화련 역을, 9월에 SBS 《째즈》에서 르포 작가 채송화 역을, 10월에 MBC 《아파트》에서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소유자 차나리 역을 맡았다.[89]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첫 회 방송을 보름쯤 앞두고 《아파트》 출연을 포기하였다가 제작진의 설득으로 다시 출연을 결정하였는데, 이 드라마는 라이벌적 포지션에 있던 배우 채시라와 공동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90] 10월에는 PC 통신 연예인 합성 누드 사진 최초 피해자로 언급되었다.[91] 11월에 영화 《마누라 죽이기》로 대종상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변진섭과 결별했다. 13년 후 변진섭은 《사랑이 올까요》라는 곡으로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년) OST에 참여하였는데,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이 곡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92][93] 중앙대학교 예술전문대학원 공연예술학부 영화학과 지도자 코스에 진학했다. 영화 공부, 영어 공부에 몰두했다.
  • 1996년 - 2월에 KBS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하였는데, 제작진의 도움으로 어린 시절 친구였던 안원형과 만났다. 안원형과는 같은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최진실이 출연한 방송은 2002년 5월 12일 4백 회 특집에서 '감동적인 만남 BEST5'에 들기도 하였다.[94][95] 3월에 신한국당 광고 모델이 되었는데, 연예인이 정당의 광고 모델이 된 것은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신한국당은 1995년 12월에 창당한 정당으로서 군사정권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민주자유당이라는 당명을 버리고 만든 당이었다. 신한국당은 "기존 정당에 대한 딱딱한 대(對)국민 이미지를 해소하고 국민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서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최진실 씨를 신문 광고 모델로 선정했다. 2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유권자에게 인기있는 최진실 씨의 모델 기용은 정당 홍보의 새로운 방식으로 신한국당 이미지 고양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개혁 시대에 국민들에게 친근한 모습을 보이고 과거 권위주의 시대 정치에서 탈피하기 위해 이같은 광고를 결정했다. 최진실 씨의 인기에 누가 되지 않도록 우리 당도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고 최진실은 "연예인 광고 모델로서 신한국당과 인연을 맺은 것일 뿐이며 신한국당에 입당할 생각은 없다"라고 말했다.[96][97] 10월에 SBS 《째즈》(1995년) 등이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싱가포르아시아지역 중화권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홍콩 스타 TV <중국어 채널>을 통해 방영되었고, 해당 드라마들은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최진실은 이를 계기로 삼아 국외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2000년 7월 최진실은 국외 활동의 의미에 대해 민간 외교관의 역할이라는 철학을 피력한 바 있다.[98][76]
  • 1997년 - 1월에 최진실은 PC통신 이용자 3백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신의 야망을 성취한 연예인'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였는데, 정치인 1위는 김영삼, 경제인 1위는 정주영, 스포츠인 1위는 박찬호였다.[99] 3월에 최진실을 두고 SBS와 MBC 간에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100] 최진실은 우여곡절 끝에 MBC에 안착했다. 10월에 MBC 《그대 그리고 나》에서 사적으로는 가정을 잘 꾸려가면서 공적으로는 직업적인 성취를 이루고 싶은 여성 윤수경 역을 맡았다. 이 드라마는 최고 66.9%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101] 10월에는 삼성경제연구소가 '한국 영화 스타의 스타 파워 분석' 보고서를 냈는데, 최진실은 배우 최민수와 함께 관객동원력이 가장 뛰어난 영화 배우로 꼽혔다.[102] 12월에 MBC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영화 《편지》에서 국문학과 대학원생 정인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1998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한국영화 최다 관객상'을 받았다. 경강역은 이 영화의 촬영지로 사용되면서 명소가 되었고, 황동규의 시 《즐거운 편지》는 이 영화에 삽입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영화는 태국에서 《The Letter》(2004년)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다. 연예계 데뷔 이후 배우로서 영화계, 방송계, 광고계 등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일약 국민배우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12월에는 코미디언 이경규와 함께 제15대 대통령 당선인 김대중을 인터뷰 하러 자택을 방문하기도 했다.[103][104]
  • 1998년 - 3월에 한국통신에서 최진실을 모델로 한 경제 위기 극복 캠페인용 공중전화 카드가 나왔다.[105][106] 6월에 MBC 《추억》에서 광고회사 직원 서인영 역을 맡았다. 7월에 일본에서 가장 선호하는 한국 배우로 뽑힌 상황에서 일본어를 공부하며 일본 진출 뜻을 피력했다. 8월에 한국 갤럽 여론조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이래 배우 부문에서 최고 인기 연예인으로 뽑혔다.[107] 8월에는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유명 연예인, 체육인, 문학인 등과 함께 국가 홍보 CF에 출연했다.[108] 12월에 최진실은 KBS행복 채널》에 출연하였는데, 이는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 야구 선수 조성민이 최진실의 팬이라는 사실을 안 제작진이, 우상과 팬으로서 만남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109] 12월 30일에 자신의 집 엘리베이터 안에서 괴한에 의해 납치될 뻔한 사건을 겪었다.[110][111][112] 최진실은 1994년 5월에도 납치될 뻔한 사건을 겪었고 연예인이 된 후 스토킹도 자주 겪었었다.[113]
  • 1999년 - 대한민국 연예인 최초로 일본 광고계에 진출하였는데, (주)전일본식품사와 1년 전속 모델 계약을 맺었다.[114] KBS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코너 중 하나인 《출발 드림팀》에서 최진실, 배우 김희선, 코미디언 이영자, 모델 이소라, 배우 엄정화 등이 1기 여성 드림팀을 결성하여 일반인 팀과 운동경기를 벌였다. 이 여성 드림팀은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었고, 《출발 드림팀》은 전국에 운동 열풍을 일으켰다.[115] 영화 《마요네즈》에서 대필작가 아정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제5회 케랄라 국제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 케랄라 국제 영화제뉴델리 국제 영화제와 함께 인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영화제이고, 한국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것은 이것이 여섯 번째였다.[116][117][118] MBC 《별은 내 가슴에》(1997년)가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수출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이 드라마는 '최초의 한류 드라마'로 평가받았다.[119][120] 11월에 최진영은 1집 앨범 《Final Fantasy》를 발매하면서 가수로 데뷔하였는데, 최진실은 최진영의 가수 활동을 측면에서 지원하였고 최진영은 이듬해인 2000년에 SBS 가요대전에서 부문에서 수상하고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에서 신인가수상을 탔다.[121] 12월에 MBC는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인물로 조망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는데, 역사 또는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치거나 새로운 물꼬를 트기 위해 노력했던 최진실을 포함한 60명의 인물들을 소개하였다.[122] 12월에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1981년)에서 서울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연예계 각 분야 '20세기 최고의 스타' 여론조사를 하였는데, 최진실은 '텔레비전 배우 분야' 20세기 최고의 스타로 선정되었다.[123]
  • 2001년 - 4월에 유가공업체 남양유업으로부터 광고 모델로서 섭외되었으나 모델료와 관련하여 소비자 항의가 거센 상황을 겪으면서 광고 계약을 거절하였다. 소비자들은 남양유업에 '고액 광고 모델료를 지급하는 대신 분유 가격을 인하하라'고 요구했었다. 최진실은 "100원도 절약하며 사는 주부들 처지에선 당연히 화날 만한 사안이었다. 이 때문에 남양유업도 아주 곤란한 처지에 빠졌을 것이다. 주부들을 이해하기에 나 스스로 물러나기로 했다"라고 광고 계약 거절 이유를 설명했다. 이 일과 관련하여 인터넷에 '안티 최진실' 웹사이트가 개설되고 '안티 남양' 웹사이트도 개설되는 등 후유증을 겪었다. 이 일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대중의 힘도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되었고, 이 일이 언론의 오보에서 시작되었기에 언론의 옐로 저널리즘이 지적되기도 하였다.[147][148][149][150][151][152][153][154] 7월에 광고 모델로서 삼성전자와 계약을 맺었다.[155][156][157] 8월에 아들을 출산하였다.
  • 2002년 - 1월에 최진영과 함께 토크 쇼 KBS 《서세원 쇼》에 출연하였는데, 《서세원 쇼》는 최진실의 출연에 힘입어 28.0%의 시청률을 기록하였고 이는 3주간 평균 시청률 18.6%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였다.[158] 4월에 MBC 《그대를 알고부터》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활동을 재개하였다. 이 드라마에서 중국 교포 이옥화 역을 맡았는데, 연변 사투리를 구사해야 해서 친구인 코미디언 정선희의 도움을 받았다. 이옥화는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한민국 무역 회사에서 근무하는 커리어 우먼으로, 중국은 대한민국보다 성평등이 더 잘 이루어지는 사회였고 그런 사회에서 성장한 이옥화는 대한민국에서 생활하면서 성 차별적 사회분위기에 반란을 일으키는 캐릭터였다. 이 드라마는 TV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여러 번 호흡을 맞췄던 배우 김혜자와 함께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다. 최진실과 김혜자는 MBC 《당신의 축배》(1989년), MBC 《그대 그리고 나》(1997년), 영화 《마요네즈》(1999년) 등에서 딸과 어머니로, MBC 《장미와 콩나물》(1999년)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로 함께 출연했는데, 《그대를 알고부터》에서는 남남인 관계이지만 최진실이 김혜자의 집에 기거하는 설정이었다.[159][160][161] 6월에 유아복업체 <아비또>의 기획홍보 이사직을 맡았고 상품 기획을 총괄하였다. <아비또>가 최진실과 공동 투자하여 내놓은 브랜드 '미아오'는 고양이 울음소리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최진실이 직접 작명한 것이었다.[162] 6월에는 인터넷상에서 유포되는 명예훼손 피해도 겪었다.[163][164][165][166][167][168]7월에 《그대를 알고부터》 야외 촬영 중 탈진하여 병원에 입원했고 최준희의 잉태를 인지했다.[169][170] 9월에도 과로로 탈진하여 병원에 입원했다.[171][172][173] 10월에 임신 6개월이었고 《그대를 알고부터》 마지막회가 방송되었다.[174][175][176] 11월에 8년간 여러 언론사에 '섭섭한 게 있다'는 모호한 표현이 담긴 편지만을 보내던 배병수 살해범 전용철이 교도소 내 인터뷰를 통해 기자들에게 실명을 거론하며 그 섭섭함의 실체를 이야기했고 그 실명은 익명 처리된 채 해당 내용이 기사화되었으며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전용철은 이 문제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는데, 달라진 사실관계는 없었다.[177][178][179][180][181][182][183][184][146][185][186][187] 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했다. 이 여론 조작의 내용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최진실은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기존 입장을 견지하며 이 여론 조작을 제압했다.[188][189][190][191][192][193][194][195][196][197][198][199]
  • 2003년 - 3월에 딸을 출산하였다.[200][201][202][203][204][205][183][184] 영화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206] 10월 23일에 조성민은 또 최진실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했다. 이 여론 조작의 내용 또한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것이었다. 12월 15일 오후 9시에 최진실은 배우 활동 재개와 관련하여 기자회견을 열었다.[207] 이 기자회견에서 최진실은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표현함으로써 기존 입장을 견지하며 이 여론 조작을 제압했다.[208][209][210][211][212][213]
  • 2004년 - 3월에 MBC 《장미의 전쟁》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활동을 재개하였다.[214][215] 이 드라마에서 산부인과 의사 오미연 역을 맡았다. 이 드라마는 한국 트렌디 드라마의 효시인 MBC 《질투》(1992년)에 주인공들로 출연하여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최진실과 최수종이 12년 후 다시 호흡을 맞추는 것이면서 두 드라마 사이에 내용의 연계성이 있도록 일부러 연출을 하여 많은 관심을 받았다.[216][217][218] 3월에는 또 아파트 광고 모델로서 신한과 계약을 맺었다.[219][220][205][221][222][223][224][225][226][227][228] 6월에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개설했다.[229] 8월 1일에 조성민은 또 최진실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했다. 이 여론 조작의 내용 또한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최진실은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기존 입장을 견지하며 이 여론 조작을 제압했다.[212][213] 9월에 이혼 결정권을 행사했다.[28][230][231][232][233][234]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거짓 소문에 시달렸다.[235][5][8][236] 햇수로 3년 동안 자식들의 발달단계를 고려한 언행과 유책배우자라는 모함을 처리하는 언행을 동시에 수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출구전략으로 삼았다. 즉 자식들의 존엄성수호하는 일, 여론 조작을 제압하는 일, 자식들의 생부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 비혼자로 복귀하는 일 등을 동시에 추구해 나갔다.[237][238][239][240]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은 입증된 바 없다.[241] 이 모든 과정을 대중이 직접 목격하게 함으로써 시시비비를 투명하게 규명하였다. 최진실은 헤게모니를 쥐고 배우로서, 친권자로서, 피해자로서 정도의 길을 걸었다. 이를 통해 완벽한 수비에 성공했고, 자신을 붕괴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혐오(hate speech) 세력들의 여론 조작을 제압했다.[242][146][243][244][245][246][247][248]
  • 2005년 - 5월에 미국 화장품업체 3LAB과 광고 모델로서 계약을 맺었고 미국에서 광고 촬영을 하였다. 3LAB은 아시아 시장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한류 스타'의 원조급인 최진실과 계약을 맺었다.[249][250][251][252] 8월에 KBS 《장밋빛 인생》에 출연하여 위암 말기 진단을 받은 전업주부 맹순이 역을 맡았고, 이 드라마는 최고 47%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253][254][8][255][256] 11월에 《장미빛 인생》의 성공으로 최진실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연예 기획사들의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졌고 이에 제시하는 계약금이 10억 원대에 이르렀다.[257] 12월에 한국갤럽에서 전국의 만 20세 이상 성인 남녀 15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5년을 빛낸 배우(TV)'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최진실은 18.2%를 기록하여 1위를 차지하였고, 4.2%를 기록한 정지훈은 남자 배우 중 1위를 차지하였다.[258][259] 연말에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여자 최우수 연기상'과 '네티즌상'을 받았다. 인터넷상에서 악성 루머와 악성 댓글에 시달렸던 최진실에게 이 '네티즌상'은 의미가 큰 것이었다.[260][261] 한편, MBC 전속 연기자였던 최진실은 MBC 사장 최문순의 배려로 KBS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었다.[262][263][264] 이와 더불어 KBS 사장 정연주는 최진실의 매니저를 자청하기도 했다.[265]
  • 2007년 - 1월에 MBC 일일 드라마 《나쁜여자 착한여자》에 전업주부 이세영 역으로 출연하여 시청률 견인에 성공하였다. MBC 일일 드라마를 20% 중후반의 시청률로 끌어올렸는데, 이 드라마는 최고 29.6%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269][270][271][272][273][274][275][276][277][278][279][280][281][282] 1월에는 광고 모델로서 제약업체 일동제약과 냉난방업체 캐리어 등과 계약도 맺었는데, 해당 업계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283][284][285] 7월에 최환희와 최준희를 《나쁜여자 착한여자》 촬영 현장에 방문하도록 하여 두 아동에게 견학의 기회를 제공했다.[286] 12월에 《나쁜여자 착한여자》로 MBC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여자 최우수상'과 '대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287][288]
  • 2008년 - 3월에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출연하여 가정관리사 홍선희 역을 맡았고 배우 정준호와 호흡을 맞췄다.[289]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시즌2》 제작이 확정되었다.[290][29][291] 이 드라마에는 최진실의 친구로 실제 친구이기도 한 이영자가 출연했는데 이영자의 대사 중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를 언급하는 장면이 나오고, MBC 《질투》(1992년)의 마지막 장면이자 당시 인구에 회자되었던 카메라 360도 회전 장면을 패러디한 장면이 나오기도 하였으며, 최진실이 20대 시절에 찍었던 '가나초콜릿' 광고를 패러디한 '아나초콜릿' 광고 장면이 나오기도 하여 재미를 더하였다.[292] 3월에는 토크 쇼 OBS최진실의 진실과 구라》의 진행자로도 발탁되면서 진행자로서 회당 출연료로 그 분야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는데, 방송인 유재석을 능가하는 대우여서 화제가 되었다.[293][294][295][296][297] 이 토크 쇼는 방송인 김구라와 함께 진행을 맡았다.[298][299]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 시즌2》 제작이 기획되었다.[300][301] 7월에 데뷔 이래 처음으로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최진실은 MBC 《시사매거진 2580》과 인터뷰를 가졌는데, 제작진은 데뷔 20주년을 맞는 최진실을 통해 한국 드라마의 흐름을 짚는 시간을 가졌다. 최진실은 인터뷰에서 배우로서의 삶과 비혼자로서의 삶 그리고 연예인들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발언 등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302][303] 11월에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명예 인기 스타상'을 받았다.[304] 12월에 MBC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여자 최우수상'과 '대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공로상'을 받았다.[305][306][307] 12월에는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2009년 소비트렌드 예측서 《트렌드 코리아 2009》가 발간되었는데, 이 책에서 '줌마렐라 신드롬'은 2008년을 특징짓는 문화현상 중 하나로 언급되었다.[308]

1.2.2 국외 진출[ | ]

1.3 사망[ | ]

최진실의 사망시 나이는 만나이로는 39세이고 세는나이로는 41세이다.

  1. 최진실은 데뷔 때부터 어머니 정옥숙에게 로드매니저 역할을 맡겼다. 배병수와 계약을 맺은 후에도 그런 운용은 이어졌다.
  2. 배병수와 계약해지를 한 후 최진실은 박진희와 계약을 맺었다. 최진실은 다른 연예기획사와 계약을 맺은 후에도 박진희에게 개인적으로 로드매니저 역할을 맡겼다. 정옥숙이 맡았던 역할을 박진희가 이어받아서 맡았던 것이다. 최진실은 내성적인 정옥숙보다 외향적인 박진희와 일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신뢰관계가 계속 이어져 최진실은 2003년 3월 1일에 최준희가 태어난 후에는 박진희에게 최준희의 육아매니저 역할을 맡겼다. 더불어 박진희의 딸 이은정과는 의자매가 되었다.
  3. 6촌 오누이인 최재성·최진실. 동아일보. 1994년 2월 5일.
  4. 4.0 4.1 4.2 김민주. 故최진실 알려지지 않은 친아버지 최국현씨 단독 인터뷰. 레이디 경향. 2008년 11월호.
  5. 5.0 5.1 5.2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에세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6. 김연지. 故최진실 남매 부친 "내가 애들 죽을 이름을 지어줬나 봐". 중앙일보. 2010년 4월 29일.
  7. 존 호건. 한겨레. 2003년 10월 17일.
  8. 8.0 8.1 8.2 8.3 황호택. '장밋빛 인생'으로 제2의 전성기 맞은 최진실. 신동아. 2005년 11월호(554호 P270~287).
  9. 故최진실 어머니, "연기밖에 모르던 딸, 그 모습이 너무 좋았다". OBS. 2014년 10월 1일.
  10. 김명은. 최진실 "공부 잘한다고 성공하는 것 아니다". 조이뉴스24. 2008년 3월 19일.
  11. 수제비는 양반층의 음식으로 시작되었는데, 6·25 이후 다량의 밀가루가 구호물자로 유입되면서 서민들의 중요한 주식이 되었다. 1960년대 중반에 대한민국에서는 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 장려 정책을 실시하였다.
  12. 고종석. 최진실-21세기의 제망매(祭亡妹) package.lua 80번째 줄에서 Lua 오류: module 'strict' not found.. 한국일보. 2009년 1월 19일.
  13. 오광수. 최진실, 연예인 최고 소득 2연패. 경향신문. 1994년 10월 16일.
  14. 오광수. 저축의 날 대통령 표창 받은 崔(최)진실, 어머니 포장마차서 「근검」 배워. 경향신문. 1992년 10월 28일.
  15. "어려웠던 시절 생각하며 절약했어요" 배우 최진실·가수 태진아 저축상 받아. 한겨레신문. 1992년 10월 28일.
  16. 이봉호. 鄭(정)회장一家(일가) 7명 712억 신고. 매일경제. 1993년 10월 22일.
  17. 장경덕. 소득세1위 鄭周永(정주영)씨. 매일경제. 1994년 10월 15일.
  18.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박은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19. 기선민. 최진실 충격의 죽음 … 곡절 얼룩진 짧은 일생. 중앙일보. 2008년 10월 3일.
  20. 이유나. 최·진·실…별은 내 가슴 속에 지다. 동아일보. 2008년 10월 6일.
  21. 윤석민. 최진실과 페일린. 머니투데이. 기사입력 2008년 10월 10일. 최종수정 2008년 10월 17일.
  22. 윤여수. (스타 그때 이런일이)‘코미디 프로그램 대부’ 김경태 PD, 대학강단에 대중문화 뿌리를 심다. 스포츠동아. 2015년 4월 1일.
  23. 모신정. 최진영 "최진실 데뷔는 한겨울 메인 모델 뒤에서 다이빙하는 CF". 스포츠한국. 2008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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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박경삼. 내 CF 속에 살아있던 신데렐라, 최진실. 인터뷰365. 2008년 11월 18일.
  26. 김우성. 최초로 공개된 최진실의 연예계 데뷔 사진. 인터뷰365. 2008년 11월 20일.
  27. 이 광고는 더빙이라는 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 이 광고 이후에도 권희덕은 여러 CF에서 최진실의 목소리를 담당했다.
  28. 28.0 28.1 28.2 김수진. 故 최진실, 데뷔부터 사망까지…온 국민 사랑받은 톱스타. 스타뉴스. 2008년 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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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한국통신은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약칭이다. 2001년 12월에 한국통신은 KT로 CI를 변경하였다. 대한민국은 1997년 12월 3일IMF 구제금융 요청 사건을 겪었고, 이러한 외환 위기 속에서 1998년 7월에 '공기업 민영화 기본 방침'이 발표되었다. 2000년 12월 4일김대중 대통령은 "국제 통화 기금의 모든 차관을 상환하였고, 우리나라가 IMF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라고 공식 발표하였다. 2002년 5월에 KT의 정부 지분은 전량 매각되어 KT는 완전히 민영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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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 문수연. 1세대 한류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케이블 ETN서 10년 만에 방송 편성. 한국경제. 2015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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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 최진실은 조성민의 생명의 은인이었다. 조성민은 최진실과의 결혼이 장애에 부딪히자 일본에서 자살 시도를 했었기 때문이다. 혼인신고 또한 조성민의 간청에 의해 결혼식 전인 2000년 11월 15일에 하게 되었다. 이에 최환희는 2000년 11월 15일과 2000년 12월 5일 사이에 잉태되었다. 이후 조성민은 최진실과의 이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도 여러 가지 행위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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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 대한민국은 IMF 구제금융 요청 상황 속에서 사이버 코리아 21을 시행하였는데, 사이버 코리아 21은 4년간 민간 자본 17조 3,000억 원을 포함하여 모두 28조 원을 투입하는 정부의 정보인프라 기본 계획으로 1999년 3월에 발표되었다. 사이버 코리아 21은 정보화 구축으로 창조적 지식기반국가를 건설하고, 국가경쟁력과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선진국 수준의 투자를 함으로써 2002년에는 세계 10위권의 지식정보화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에 의거하여 2002년은 1999년보다 100배 빠른 인터넷을 구현하여 초고속정보통신망을 효과적으로 구축하고자 하였고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2001년까지 인터넷 사용자를 1천만 명 이상으로 확대하고자 하였다.
  137. 대한민국에서는 김대중 정부1998년 6월에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고, 4년 만인 2002년에 대한민국은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138. 김희경. 최진실-조상민 결혼…한일 연예인등 1300여 명 참석. 동아일보. 2000년 12월 5일.
  139. 톱스타 커플 조성민.최진실씨 결혼. 매일경제. 2000년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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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8. 박수현. 최진실 출연 '서세원쇼' 5위로 껑충 . 파이낸셜뉴스. 2002년 2월 4일.
  159. 문향란. 다시 만난 김혜자 최진실. 한국일보. 2002년 4월 15일.
  160. 한승주. 만인의 연인 최진실이 돌아왔다…새 주말연속극 ‘그대를 알고부터’. 국민일보. 2002년 4월 18일.
  161. 정아연. `조선족` 호칭부터 바꾸자. 문화일보. 2003년 1월 17일.
  162. 이성희. 톱스타들 패션사업 잇달아 진출. 한국일보. 2002년 6월 6일.
  163. ‘최진실 사건’ 계기로 본 사이버 명예훼손 앞뒤. 일요신문. 2002년 6월 16일(5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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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 최진실 명예훼손 고소사건 2R. 일요신문. 2002년 6월 30일(제5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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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 정재욱. 사이버테러에 시달리는 스타들 “e-무서운 세상”. 경향신문. 2003년 8월 12일.
  168. '사이버 테러' 적극 대응해야. 한국경제. 2002년 10월 1일.
  169. 스포츠투데이/ 최진실 촬영중 탈진 병원행/탤런트 최진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최진실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MBC 주말극 ‘그대를 알고부터’(극본 정성주·연출 박종)의 야외촬영을 하던 중 복통과 탈진 증세를 보여 인근 병원에서 링거를 맞은 뒤 집으로 돌아가 안정을 취하고 있다. 불볕 더위 속에서 연일 촬영을 강행해 몸 상태가 좋지 않던 최진실은 이날 오전 아침 겸 점심식사로 김밥을 먹은 뒤 급체 증상을 보여 촬영을 중단해야 했다. 최진실이 갑자기 병원 신세를 지는 바람에 이날 저녁 계획됐던 류시원과의 결혼식 장면 촬영은 부득이 연기됐다. 연출자인 박종 PD는 31일 “더운 날씨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땀을 많이 흘린 데다 음식까지 잘못 먹어 링거를 맞게 됐다”면서 “최진실의 회복 상태를 지켜본 뒤 촬영을 하지 못한 장면은 1일 또는 2일께 다시 진행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최진실측은 “그동안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신경을 많이 쓰다보니 최근 그녀의 건강이 나빠진 상태”라고 전했다./ 2002년 8월 1일/ 송호진 기자 dmzsong@sportstoday.co.kr
  170. 임상훈. 최진실 둘째 임신 `현재 2개월`. 중앙일보. 2002년 8월 16일.
  171. 일간스포츠/ 최진실 과로 탈진 입원/톱스타 최진실이 과로로 탈진해 병원에 입원했다. 임신 5개월째에 접어든 최진실은 18일 서울 강남 모 병원에 입원, 안정을 취하고 있다. MBC TV 주말극 <그대를 알고부터>에 출연 중인 최진실은 임신과 육아, 빡빡한 드라마 촬영 등 3중고를 이기지 못해 탈진 상태가 돼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이 때문에 그는 <그대를 알고부터> 제작진에게 20~21일로 예정된 드라마 야외 촬영 일정을 취소해줄 것을 부탁했다. 최진실은 “드라마 촬영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 내 몸도 내 몸이지만, 뱃속의 아기가 걱정될 정도의 상황이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아들 환희을 키우면서 연기 활동도 병행하는 데다 둘째 아이까지 임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지쳐있는 상태라는 것. 그는 “10월 중순께 드라마가 끝나면 정말 푹 쉬면서 태교에만 전념할 것이다. 아기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최진실은 “내년 2월에 출산 예정인 때문에 <그대를 알고부터>를 마친 다음부턴 CF 이외의 연예 활동을 중단할 생각이다. <그대를 알고부터> 이후엔 내년 가을 개편 때나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02년 9월 20일/ 김가희 기자 kahee@dailysports.co.kr
  172. 스포츠서울/ 최진실, 건강 나빠져 드라마 결장한다/ 톱스타 최진실(34)이 28일과 29일 방송되는 MTV 주말드라마 ‘그대를 알고부터’에서 사라진다. 건강이 나빠져 1주일 동안 녹화에 참여하지 못해 결국 방송에서 한동안 빠지게 됐다. 극의 흐름상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이 이틀 동안이나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옌벤 여성 옥화가 왜 안나오지?’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시청자가 적지 않을 듯하다. 이날 방송에서 최진실은 중국 상하이로 출장갔다는 설정으로 빠진다. 최진실이 도저히 녹화를 진행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제작진은 부랴부랴 대본을 수정했다. 가뜩이나 대본 출고가 늦어져 촬영에 애를 먹어온 ‘그대를…’팀은 주인공의 결석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최진실은 지난 18일 과로로 탈진해 서울 강남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임신(5개월)한 상태에서 빡빡한 촬영 일정을 견디다 끝내 몸을 가눌 수조차 없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지난 15일 밤을 꼬박 세워 촬영한 뒤에는 제작진에게 눈물을 흘리며 힘겨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병원 측에서 더 무리하면 태아에게도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최진실은 부득이하게 촬영을 펑크내게 됐다. “현재 병원과 집을 오가며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상태로 건강을 추스른 다음 촬영장에 복귀할 예정”이라고 소속사 측은 밝혔다./ 2002년 9월 26일/ 조재원 기자
  173. 최호열. ‘사업가’로 변신한 최진실 남편 일본 프로야구선수 조성민. 여성동아. 2002년 10월 4일.
  174. 최진실이 《그대를 알고부터》 촬영 초기 인터뷰에서 이 드라마가 끝난 후에 둘째 아이를 임신할 계획이라고 말했던 점, 주인공으로서 드라마 출연 중에 임신을 한다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 조성민이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과 여론 조작 등을 저지른 점 등을 통해 이 임신이 조성민스텔싱에 의해 이루어졌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최진실은 이 임신을 '계획 임신'이라고 말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피임 실패'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게 자식의 자존감에 더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2002년 사람들은 성관계를 할 때 통상 콘돔 피임법을 활용했다. 최진실의 두 번째 임신이 공개된 후 조성민이 인터뷰를 한 것이 있는데 각자 한국과 일본에 거주하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획 임신이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조성민이 최진실과 성관계를 할 때 콘돔을 끼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랬으면서 2002년 12월 18일 최준희가 간통으로 잉태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여론 조작을 저질렀던 것이다. 최진실에게 둘째 아이를 갖겠다는 계획은 있었기에 '계획 임신'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임신 시기가 계획된 것이 아닐 수 있었다. 조성민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라는 것이 확인된 바 있고 더불어 최진실의 배우자 자리에 '채용'되기 위해 '자살쇼'도 벌인 인물이므로 이러한 상황 연출은 어렵지 않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될 수 있는 바였다. 조성민은 임산부(妊産婦) 최진실을 대상으로 갖은 위법을 공개적으로 저지르며 부모로서 실격인 자임이 널리 공유되었고 이에 정자저장소로 전락하였다.
  175. 스포츠조선/ 김규리-송윤아-엄정화, 최진실 위해 지면광고 무료 출연/ "진실언니 사업 걱정마" 최진실- 조성민 운영 '비어드파파 파이슈' 광고 "우리는 의리파!" 김규리 송윤아 엄정화가 우정의 광고 출연을 해 화제다. 이들은 최근 '선배' 최진실의 남편 조성민이 운영하는 슈크림전문 브랜드 '비어드파파 파이슈'의 지면용 광고에 함께 얼굴을 비췄다. CF업계에서 정상급 대우를 받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최진실과의 평소 친분 때문. 특히 송윤아의 경우 영화 '광복절 특사'(감독 김상진)의 막판 작업 때문에 빡빡한 스케줄에 시달리면서도 흔쾌히 카메라 앞에 서는 의리를 보여줬다. 이들은 지면 광고 한 건당 억대의 개런티를 받는 '비싼 몸'들이지만 기꺼이 노개런티 출연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우정에 감동한 최진실 측은 정성이 담뿍 담긴 선물로 '오고 가는 정'을 보여줬다는 후문./ 전상희 기자
  176. 굿데이/ 조성민 초보 사업 최진실 사단 '구원' 절친한 후배 엄정화·송윤아 등 무료 CF 출연/ "동생들이 너무 고맙고 자랑스러워요." 톱스타 최진실이 후배들의 정성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송윤아 엄정화 김규리 정선희 홍진경 등이 최진실을 기쁘게 한 주인공들. 이들은 얼마 전 사업가로 변신한 최진실의 남편 조성민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다. 최진실은 송윤아 엄정화 김규리 등과 함께 지난 13일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지면광고 촬영을 마쳤다. 한 달 전 조성민이 문을 연 슈크림빵 전문점 '비어드 파파' 광고를 위한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무료 출연이었다는 점. 최진실이야 남편의 사업이니 당연하지만, 그외 스타들은 1시간의 팬사인회 출연료만도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대우를 받고 있어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어렵게 부탁을 했는데 다들 흔쾌히 받아들여줘 너무 고맙고 행복해요. 앞으로 더 잘해야죠." 일명 '최진실 패밀리'로 통하는 이들 중 맏언니 격인 최진실은 평소 솔직하고 소탈한 성격대로 후배들을 잘 챙기기로 소문나 있는데 그 결과가 무료 촬영으로까지 이어졌다. "(정)선희와 (홍)진경이는 매장에서 무료 팬사인회도 열었어요.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한편 최진실은 MBC 주말극 <그대를 알고부터> 촬영이 모두 끝나 내년 2월 출산 예정인 둘째의 태교에 전념하고 있다./ 2002년 10월 17일/ 백미정 기자 bmj@hot.co.kr
  177. 최성진. 배병수 살해범 전용철 옥중 인터뷰. 일요신문. 2002년 11월 24일.
  178. 전 톱스타 매니저 배병수 살해범 전용철 옥중 토로 ‘8년 전 사건의 진실’. 여성동아. 2002년 12월호.
  179. 조성민 인터뷰 “설마 뒷조사까지 할 줄이야”. 일요신문. 2002년 12월 29일.
  180. 이영미. 조성민 아버지 조주형씨 인터뷰. 일요신문. 2002년 12월 29일.
  181. 유재순. (최진실ㆍ조성민 파경위기)유재순의 특별 리포트 일본 교민 사회 소문과 진실. 일요신문. 2003년 1월 5일.
  182. ‘이경실 사건’으로 재조명 조성민 부친 조주형씨 단독인터뷰. 일요신문. 2003년 2월 23일(562호).
  183. 183.0 183.1 이영미. 조성민 아버지 조주형 인터뷰. 일요신문. 2003년 3월 16일.
  184. 184.0 184.1 인터뷰 밖 이야기 “가끔 TV밖에서 연기하는 느낌”. 일요신문. 2003년 3월 16일.
  185. 김범석. ‘10년 지근거리’ 기자가 털어놓은 최진실 비사(秘事). 신동아. 2008년 11월 25일.
  186. 김범석. 매니저 배병수 살해 전용철 “진실이 누나 죽음에 눈물 참을 수 없었다”. 중앙일보. 2009년 10월 6일.
  187. 표창원. 최진실이 유명해질수록 그의 복수심은 커졌다. 한겨레신문. 2013년 5월 31일 등록. 2013년 6월 1일 수정.
  188. 조성민은 2002년 12월 18일 수요일 오후 2시 최진실을 비방하기 위해 메모까지 해오는 등[출처 필요] 치밀한 설계 속에 기자들에게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고, 이와 관련하여 김용만성유리가 진행하는 2002년 12월 18일 수요일 밤 11시 MBC섹션TV 연예통신172회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조성민은 이러한 여론조작 행위를 통해 마치 최진실이 비방당할 행동을 한 것처럼 대중이 인식하도록 조장했으나 2004년 8월 1일까지 최진실을 대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본인이 갖가지 위법행위를 저지르며 자멸의 길을 걸었다.
  189. 노이즈 마케팅
  190. 황선주. 조성민 유감(遺憾). 오마이뉴스. 최종업데이트 2002년 12월 27일.
  191. 이승형. 최진실·조성민 부부 파경위기. 문화일보. 2002년 12월 20일.
  192. 장병욱. 조성민·최진실 파경, 진실은 어디 있나?. 주간한국. 2002년 12월 31일.
  193. 결별 선언한 최진실·조성민 커플 상반된 입장 쌍방 인터뷰. 여성동아. 2003년 1월 1일(469호 P676~679).
  194. 신민섭. 최진실-조성민 커플 파경 임박(일요시사 2003년 1월 7일 364호). 국립중앙도서관.
  195. 백미정. 최진실 '남편 고소'…이혼합의서 초안 공개에 분노. 굿데이. 2003년 10월 25일.
  196. 최진실의 자택은 빌라(고급 공동 주택)로 내부 크기는 100평에 가깝고 거실 구조는 높이를 달리하는 형태라 계단이 존재했다. 최진실의 자택은 방송으로 공개된 적이 많고 이에 거실의 계단은 2개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그 정도의 낙차로 거실의 구역이 크게 나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였다. 2002년 11월 6일 발생한 폭행 사건은 그 계단 부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2002년 12월 18일 이후 시점 기사에서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언급할 때 최진실이 마치 스무 계단을 구른 것처럼 서술을 하였기 때문이다. 임신부 최진실은 실상 폭행범으로부터 거실에서 밀침을 당하면서 이 거실 계단으로 낙하하여 스무 번 정도 거실에서 구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밀고 넘어지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된 결과였다. 폭행 시점 최진실은 키 164cm, 몸무게 45kg에 임신 7개월의 몸이었고, 폭행범은 키 194cm, 몸무게 101kg에 직업이 투수였다. 실상은 그러한데 흥분한 기자가 그걸 짜깁기하여 최진실이 스무 개 정도의 계단에서 구른 것처럼 멋대로 퍼즐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다. 혹은 최진실을 허위사실유포자로 만들기 위해 기자가 일부러 그런 왜곡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했다. 통상 '계단'이라고 하면 스무 개 정도를 연상하기 십상이고 거기에 '폭행'이라는 정보가 더해짐에 피해자가 계단 옆에서 폭행을 당하면서 스무 계단을 스무 바퀴 굴러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바였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지르기도 하였는데 그 공범자는 자신이 최진실의 자택을 가본 적이 있다고 하며 그 집에는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바였다. 이 자의 말하는 바가 최진실의 집에 계단 자체가 없다는 뜻이었든 스무 번을 구를 만큼의 낙차를 가진 계단이 없다는 뜻이었든 최진실의 집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낙차가 낮아도 스무 번을 반복해서 굴리면 그 계단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고 평지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다. 군인들이 평지에서 구르는 훈련을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거구의 운동선수 출신이 일반인 임신부를 상대로 밀쳐 넘어뜨리고 그 사람이 일어서려고 하면 다시 밀쳐 넘어뜨려 스무 번 거실에서 구르게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한 바였다. 임신부 최진실이 거실에서 스무 번을 구른 상황을 종합하면 거실 계단 옆에서 폭행범의 밀침에 의해 임신부 최진실이 그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그 구름이 시작되어 이후 일어서려는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반복된 폭행범의 밀침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이 사안의 수위였다. 즉 사법기관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에게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간략하게 언급하는 자리에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스무 번 굴렀다'는 최진실의 말에는 문제가 없다. 이 언론 대응의 핵심은 폭행의 수위가 가해자가 말하고 다닌 것과 다르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짚었던 데에는 폭행범의 사실 왜곡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공범자는 최진실의 이 말을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여론조작을 하며 본질을 흐렸던 것이다. 통상 기자들은 기사 작성시 실수로든, 고의로든 허위 정보 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를 자신의 기사에 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허위 정보로 피해를 본 유명인이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또 다른 기사 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사로 작성하는 일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에는 비일비재하였다. 대중으로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누린 최진실은 늘 이런 류의 기자들의 먹잇감이었다. 또 최진실 본인이 스무 번 구르는 폭력을 겪은 것을 스무 계단을 굴렀다고 말하는 실수를 하거나 고의로 사실 왜곡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왜냐하면 임신부가 스무 번 구른 것도 폭력의 수위가 결코 낮지 않아 그 수위를 더 높여 거짓말을 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폭행범은 이 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지만 다른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굳이 허위사실을 말하여 그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론조작가동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 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하면서 한 마디라도 실수를 할까봐 신경을 쓰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기자나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사안과 관련해서 자신의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혐오세력들은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폭행범의 악질성에 주목하기보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설명하며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를 제압한 최진실을 공격하기 바빴다. 혐오세력들의 이런 행태는 폭행범 등이 왜 여론조작을 구사했는지를 말해 주었다. 이렇게 최진실을 향한 여론조작은 무조건 남는 장사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진실을 향해 이러한 설계를 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해자는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도 말하고 다녔기 때문에 혐오세력들에게 최진실은 허위사실유포자이자 폭행범이었다. 또 최진실의 이 언론 대응의 전제를 무시한 측면에서는 그들에게 최진실은 이혼 생중계자이자 사생활 폭로자이자 명예훼손 행위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이들은 모든 것을 피해자 최진실에게 덮어씌웠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을 향한 마녀사냥의 실체였다. 폭행범 등은 이 사건에 대해서만 여론조작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 폭행범은 최진실이 과거에 겪은 여론조작 피해도 끌어와서 그 가해자들 편에 서서 최진실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혐오세력들은 폭행범 커플과 한 패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최진실을 공격하였고 그것은 최진실 사망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 지형 속에서 증권사 직원들의 새로운 여론조작이 가동됨에 최진실은 세상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토록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썼던 이 폭행범은 최진실 사망 후 최진실의 죽음에 기뻐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최진실이 남긴 유산에 대해 재산관리권을 행사하려는 탐욕을 부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그런 세상을 원망하면서 몇 년 후 죽었다. 2016년 현재 이 혐오세력들은 안티최진실카페라는 본진이 폐쇄되고 혐오세력 대표주자였던 이 폭행범도 이 세상에서 사라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흩어져서 그 여론조작 행태를 이어갔고 미성년자인 자식들을 두고 자결한 것을 두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것을 그 작업에 추가시켰다. 이것은 최진실 관련 방송이나 기사, 그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들을 관찰하면 목격할 수 있는 바였다. 혐오세력이 아니라면 최진실의 자결에 그토록 적개심을 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생전 최진실에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최진실이 죽든 말든 여전히 관심이 없을 것이고, 최진실에게 호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그 죽음에 슬퍼할 것이고, 최진실에게 악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최진실을 물어뜯을 거리를 찾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혐오세력들이 미성년 운운 하며 최진실을 공격하는 순간에도 최진실 자녀들이 먹고 자고 배우는 돈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최진실이 번 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실체적 진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진실은 생사를 넘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식들을 양육했던 것이다.
  197. 최진실의 입계의완(入界宜緩)의 자세는 판 정리를 위한 포석에 해당되는 행동이었다.
  198.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재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199. 이신영. 대법 "유책 배우자 이혼 허용 안돼"..7대6 판례 유지. 연합뉴스. 2015년 9월 15일.
  200. 최진실 병원 한층 전세냈다?. 일요신문. 2003년 2월 23일.
  201. 신웅진. 최진실씨 지난 1일 둘째 출산. YTN. 2003년 3월 5일.
  202. 양성희. 최진실씨 둘째 딸 출산 남편 조성민씨에겐 안알려. 문화일보. 2003년 3월 5일.
  203. 이승재. 최진실씨 ‘아빠 몰래’ 둘째 출산. 동아일보. 2003년 3월 5일.
  204. 최진실 시부모 사는 집 가처분 신청에 비밀 출산까지. 일요신문. 2003년 3월 6일.
  205. 205.0 205.1 수렁에 빠진 조성민 비상구가 없다. 일요신문. 2003년 3월 16일.
  206. 고규대. 최진실, 연예 활동 기지개. 한국일보(워싱턴 DC). 2003년 10월 17일.
  207. 최진실 방송복귀는. 일요신문. 2003년 3월 2일.
  208. 노현. 최진실 내년 3월 연예계 복귀. 매일경제. 2003년 12월 16일.
  209. 양성희. 최진실 "내년 3월 컴백", "아직 이혼 생각 없어". 문화일보. 2003년 12월 16일.
  210. 이미연. 아픔 딛고 원숙해진 최진실, '그래도 얻은 게 많아요'. 스포츠서울. 2004년 6월 20일.
  211. 최진실, 두 아이와 함께 떠난 괌 리조트 여행(주부생활 2004년 8월호). 국립중앙도서관.
  212. 212.0 212.1 이혼의 방식에는 합의이혼과 소송이혼의 두 가지가 있다.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말한 것은 조성민이 자신을 대상으로 소송이혼절차를 밟을 길을 열어주는 행동이었다.
  213. 213.0 213.1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것은 자신이 유책배우자라고 공개적으로 지칭된 상황에서 자신이 이혼소송을 당하는지 여부를 보고 자신을 비난할지 여부를 결정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언론인과 대중에게 제시하는 행동이었다.
  214. 이희정. 억척스런 아줌마 역으로 컴백하는 최진실. 한국일보. 2004년 3월 3일.
  215. “보고 싶다 돌아오라 고현정” … 연예계 러브콜 한창. 주간동아. 2004년 3월 24일.
  216. <인터뷰> `장미의 전쟁' 최진실, 최수종[(과거 내용 찾기)]. 한겨레신문.
  217. 박효실. MTV '장미의 전쟁' OST 인기 폭발. 스포츠서울. 2004년 5월 20일.
  218. 김태근. '백만송이 장미' 시청률 1위 '유종의미'. 스포츠조선. 2004년 6월 8일.
  219. (최진실ㆍ조성민 파경위기) 언제 어떻게 시작됐나. 일요신문. 2002년 12월 29일.
  220. 파경위기 최진실 CF 중단 위약금 어떻게 되나. 일요신문. 2003년 3월 2일.
  221. 최진실-조성민 어떻게 돼가나. 일요신문. 2003년 12월 14일.
  222. 박수현. 자이 이영애·꿈에그린 김현주·래미안 이병헌등… 아파트브랜드 ★마케팅 반짝. 파이낸셜뉴스. 2004년 5월 4일.
  223. 전태훤. 건설광고 '스타모시기' 후끈. 한국일보. 2004년 5월 9일.
  224. (입체추적)최진실-조성민 한밤의 폭행사건 미스터리. 일요신문. 2004년 8월 15일.
  225. 최진실측 이종무변호사 인터뷰. 일요신문. 2004년 8월 15일.
  226. 조성민 부친 조주형씨 인터뷰. 일요신문. 2004년 8월 15일.
  227. 최진실 CF 어떻게 되나. 일요신문. 2004년 8월 15일.
  228. 조성민 줄소송 어떻게 돼가나. 일요신문. 2004년 8월 15일.
  229. 이진석. 사랑싸움은 행복을 위한 전쟁. 헤럴드경제. 2004년 6월 9일.
  230. 최진실·조성민 전격 협의 이혼. 헤럴드경제. 2004년 9월 2일.
  231. 이인표. 최진실·조성민부부 이혼. 문화일보. 2004년 9월 3일.
  232. '끝내 남남'… 조성민 '친권포기' 최진실과 합의. 국민일보. 2004년 9월 2일.
  233. 전지성. "법정서 맞대면 싫다" 이혼대리 시대. 동아일보. 2004년 10월 15일.
  234. 이혼의 방식에는 내용상 합의 이혼(협의 이혼, 조정 이혼)과 소송 이혼(재판에 의한 이혼)의 두 가지가 있다.
  235. 김재우. 《최진실이 자서전 준비하며 틈틈이 직접 쓴 '힘겨웠던 지난 6년 동안의 일기', 마지막 유언 중 '두 아이'에 관한 미공개 이야기》. . 2008년 12월호(223호 P29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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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7. 최진실의 자녀 최환희와 최준희는 사적·공적으로 최진실의 이혼과 관련하여 주요 이해관계자들 중 한 축이었다. 2002년 대한민국 식으로 최환희는 두 살, 최준희는 태아였다. 친권자 최진실은 발달단계상 의사표현의 한계 상황에 놓여있던 최환희와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을 찬성하는 경우와 반대하는 경우 둘 다를 상정(想定)하면서 판을 정리해 나갔다.
  238. 최진실이 유책배우자인지 아닌지를 규명하는 일은 최진실의 자녀가 최진실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안이었다. 즉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모함은 최진실과 대중 사이에 대한 이간책(離間策)일 뿐만 아니라 최진실과 최진실의 자녀 사이에 대한 이간책이기도 했다.
  239.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귀도가 총살당하러 가면서 그걸 숨어서 보고 있던 아들에게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여주는데 이는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볼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부모는 세상이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볼지라도 자식의 복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우스꽝스러운 몸짓도 지어보일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담았던 것이다. 최진실도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이혼한 부모를 둔 사람들이 폄훼되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한계상황 속에서 자식들이 어머니인 자기로부터 충분히 존중받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였다.
  240. 블러핑(bluffing)이란, 자신의 패가 상대의 것보다 약하다고 생각될 때 오히려 더 강한 베팅을 하여 상대를 기만하는 행동을 말한다. 단지 자신이 상대에 비해 약할 때뿐만 아니라, 자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될 때도 마치 자신 없는 듯한 행동을 해서 상대가 방심한 상태로 승부를 걸어오도록 하는 행위 또한 블러핑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강함을 과장해, 상대로 하여금 아예 승부를 포기하도록 해서 자신의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는 행동도 블러핑이다. 즉 블러핑은 상대가 알지 못하는 정보를 이용해 진실을 숨기고,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어 이득을 취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241. 대한민국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발화한 행위를 두고 마치 비혼자가 청혼을 하는 행위인 양 스토리라인을 잡아 기사를 쏟아냄으로써 최진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이는 언론이 이혼유책주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음을 드러내는 행태로도 파악될 수 있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성애적 관계를 맺자는 뜻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위법행위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가해자에게는 처벌을 가하고, 피해자는 배상을 받기 위한 행동이다. 언론이 이것을 성애적 관계를 맺기 위한 행동이라고 왜곡하는 것은 피해자를 바보로 만들고 가해자를 비호하기 위한 행동과 다름없는 것이다. 최진실은 언론을 통해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에게 호의적인 감정이 없는 것에 대해 관심 없음을 확실히 했었고 일관되게 자식들의 안위를 염려했을 뿐이었다. 언론은 최진실의 이런 스탠스를 무시함으로써 최진실을 가지고 놀았다. 더불어 유책배우자로 몰린 자가 '이혼할 의사 없음'을 표하는 건 그 주장을 한 자로 하여금 소송이혼 절차 밟아 그 주장을 입증할 것을 요구한 것이면서 그렇게 입증해서 이혼 판결 받아 떨어져나가라는 뜻이라는 것도 무시했던 바이다. 여기서 짚어두어야 할 것은 최진실의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인데 이런 최진실의 행보에 아니꼬움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억측을 내놓으며 최진실을 조롱한 언론이 있었다는 것이다. 2004년 폭행 사건 직후 '최진실 이혼 결정 임박'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은 신문이 대표적인 예일 수 있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이혼과 관련하여 진도가 나가는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이라는 범죄행위에 중점을 두어야 할 시점에 이러고 있었던 것이다.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기혼자가 되는 일, 비혼자가 되는 일에 병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최진실은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니는 순간 '여론 조작 사건'으로 규정하고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을 밟았던 것이다. 언론은 교활하게도 이혼을 원한다며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닌 최진실의 배우자에게는 이혼 왜 안하고 있느냐고, 이혼 왜 안하고 그러고 다니느냐고, 이혼하고 싶으면 이렇게 이상한 짓 하고 돌아다닐 게 아니라 가정법원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최진실이 2002년 '이혼할 의사 있음' 의사 표시를 했을 경우 최진실의 배우자의 여론 조작 덫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갔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언론은 최진실이 그런 길을 가기를 바랐으나 최진실은 영리하게도 그 길을 피했던 바이다.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가 닫힌 계를 설정함에 시시비비가 선명하게 가려졌던 것이다.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는 여론 조작을 제압하는 으뜸패였는데 언론은 '왜 이혼하지 않는다는 거냐?'라고 물고늘어지거나 '그렇게 지금 배우자가 좋으냐?'라고 물고늘어지며 이 카드를 무력화시키려고 애썼다. 최진실은 독립된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에 비혼 상태와 혼인 상태 사이에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있어 큰 차이가 없었다. 이에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를 폄훼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후진성을 고려하여 친권자로서 성의를 표하는 모양새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고 유책배우자로 몰린 유명인으로서 그 명예훼손 행태를 제압하는 일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며 그런 명예훼손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 자식들의 생부의 실체를 명확히 하여 자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친권자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일 정도가 필요했던 바이다. 이러한 서사에 의거해 비망록에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자식들(아들: 2세~4세, 딸: 태아~2세)에게 친권자로서 제대로 인정받는 길을 가고자 노력했고 미래의 자식들과의 완전한 소통을 지향했음을 밝혀두었던 것이다. 정옥숙의 공개에 따르면 같은 기간 최진실은 위법행위의 피해자로서 겪은 상황을 상술한 일기도 남김으로써 소송이혼 절차를 밟게 될 경우 제출할 자료도 다각도로 취합해간 철저함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는 바이다. 거기다가 대한민국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폭로'라는 무리수(위법)를 두었다는 입증된 바 없는 주장까지 퍼뜨리며 최진실을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그런 일련의 가해 행위의 존재는 무시한 채 그로 인한 최진실의 고통 호소는 상대적으로 부각시킴과 동시에 이를 성애적 관계가 마음대로 안풀려서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처럼 스토리라인을 잡아 최진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이런 행태의 효과는 피해자의 고통은 희화화시키고 가해자의 악랄함은 감추어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두고 펼치는 이들의 장난질을 두고 최진실은 2007년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였을 때 '엉클어진 퍼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 때 최진실은 어디서부터 다시 퍼즐을 맞춰가야 할지 막막했었다고 표현했다. 대한민국 연예 언론이 피해자 최진실의 권위를 흔드는 과정은 교활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었고 이에 대중으로하여금 피해자가 피해자같지 않게 느끼도록 하는 것을 넘어 마치 가해자 package.lua 80번째 줄에서 Lua 오류: module 'strict' not found.처럼 이미지화하게끔 만들었다.
  242. 최진실은 위법행위의 피해자로서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를 누렸지만 대한민국 사회(언론과 대중)는 그 자유와 권리 향유를 문제삼으로써 대한민국이 왜 유엔 개발 계획이나 세계 경제 포럼 등에서 측정하는 성평등 지수상 하위권 국가인지를 예로써 보여주었다. 대한민국 사회는 최진실이 마치 가해자인 양 최진실을 향해 공격퍼부었다. 최진실 사망 후 발간된 책 중에도 피해자인 최진실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자 애쓰는 사람이 나옴으로써 대한민국 사회가 피해자의 인권에 얼마나 무지한 사회인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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