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미나 부라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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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오르프 ‘카르미나 부라나’

종교의 권위를 조롱한 가곡집

강렬한 타악기의 울림과 더불어 목청 높여 운명(Fortuna)을 부르짖는 합창음악을 기억하는지? 영화 ‘엑스컬리버’와 ‘도어즈’에도 이 합창곡이 등장하며, 그 외에도 수많은 CF나 각종 방송 프로그램들의 배경음악으로 빈번하게 사용되었기에 이 곡의 정체를 알던 모르던 간에 누구나 이 곡의 선율에 친근해져 있을 것이다.

이 합창곡의 정체는 1895년에 태어나서 1982년에 사망한 독일의 현대 작곡가 칼 오르프의 칸타타 풍의 작품 ‘카르미나 부라나’의 시작을 여는 거창한 합창곡 ‘오 운명의 여신이여’(O Fortuna)이다. 유독 이 첫 곡만 널리 알려졌지만, 원래 이 곡은 전체 25곡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세 명의 독창자(소프라노, 테너, 바리톤)와 합창단, 그리고 잡다한 타악기들이 총동원된 관현악단이 동원되는 거창한 스케일의 대작이다. 첫 곡 ‘오 운명의 여신이여’는 이 작품을 대표하는 곡인 만큼 똑같은 모습으로 제일 마지막 25번째 곡으로도 다시 한번 등장하면서 작품 전체를 일종의 수미쌍관법의 구성으로 만들어 놓는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카툴리 카르미나’, ‘아프로디테의 승리’와 함께 삼부작 ‘승리’를 구성하고 있지만, 다른 두 작품의 지명도는 현저하게 떨어지는 편이다. 오르프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여러 극음악들을 작곡하였을 뿐만 아니라 음악교육자로서도 대단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지만, ‘카르미나 부라나’로 인해 많은 이들의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는 작곡이 아닌 편곡이라는 쪽이 더 적절한 표현이 될 것이다.

오리지널 ‘카르미나 부라나’는 현재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중세가곡집이다. 제목은 ‘보이에른(뮌헨 남서쪽의 지방)의 노래’라는 뜻이다. 13세기초에 편찬된 이 가곡집에 담긴 노래들은 골리아드라고 불리는 떠돌이 지식인 무리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11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일대에는 학생들이나 파계승들과 같은 반골 지식인들이 창궐하게 되었다. 이들은 사랑과 슬픔과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담은 노래나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남녀상열지사 등을 통해서 당시 유럽을 짓누르고 있던 종교의 권위를 마음껏 조롱하였다. 당시에는 미네징거와 같은 귀족 출신의 음유시인들의 거들먹대는 노래들도 존재하였지만, 이 가곡집에 담긴 이름 모를 민초들의 보다 진솔한 이야기들이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보다 큰 공감대를 형성한다.

당시는 음악을 기록하기 위한 수단은 현재와 같은 오선지나 음표가 아니라 지렁이가 꿈틀대는 듯한 선으로 노래의 선율을 대충 표현한 것이 고작이었다. 지금도 몇몇 고음악 학자들이 이 가곡집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를 700년 전의 모습 그대로 완벽하게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700년 전 음악, 오르프로 인해 부활 오르프는 이 가곡집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려고 시도한 것이 아니라 여기서 얻은 최소한의 재료들을 이용하여 완전히 현대적인 기법과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통해 창작에 가까운 형태로 변모시켜 놓았다. 다채로운 타악기들에 의해 표현되는 생기발랄한 리듬과 동일한 형태로 계속 반복되는 단순한 선율을 통해 20세기 중반에 작곡된 작품으로서는 예외적일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이다.

라이선스 LP 시대부터 이 곡의 대명사로 군림하던 것은 요훔의 연주(DG)이다. 하지만, 필자의 첫 선택은 프레빈(EMI)이다. 프레빈은 다소 가벼운 인상으로 덕에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하는 지휘자이지만, 런던 심포니의 상임으로 활약하던 70년대에 남긴 음반들 중에는 지금 듣더라도 참신하기 그지없는 싱싱한 명연들을 많이 만들어 내었다. ‘카르미나 부라나’ 역시 이 시기의 녹음으로 거대한 스케일, 생동감 넘치는 리듬, 작렬하는 듯한 열정을 담고 있는 연주이다. 유명한 첫 곡에서부터 처절할 정도로 격정을 토해내는 합창단의 맹활약은 음반 전체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놓았다.

프레빈은 뒤에 이 곡을 다시 녹음하였지만, 이 음반과 비교가 되질 못한다. 이 곡은 각종 타악기의 화려한 울림 덕분에 오디오파일용 레퍼토리로도 한몫을 하고 있다. 틸레만의 최근 연주(DG)는 이러한 점에서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오리지널 ‘카르미나 부라나’를 나름대로 재현하고 있는 음반들도 많이 있다. 700년 전의 음악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다면, 피켓의 ‘카르미나 부라나’ 시리즈(Decca)가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글 / 이종선 음악 컬럼니스트

명곡 명반 비교순례

칼 오르프 의 [카르미나 부라나]

글: 정 창 관 (홍콩샹하이은행 부장)

칼 오르프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으로 일약 그를 유명하게 만든, 1935-1936년에 작곡한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는 1942년에 작곡된 [카툴리 카르미나(CATULI CARMINA)]와 1951년에 작곡한 [아프로디테의 승리(TRIONFO DI AFRODITE)]와 더불어 무대 형식에 의한 칸타타의 3부작 [트리온피(TRIONFI:승리)]의 제1부 작품이다.

칼 오르프(Carl Orff)는 1895년 7월 10일 뮌헨에서 출생한 독일의 대표적인 현대 작곡가의 한 사람이며 교육자이다. 일찍 부터 음악적인 자질을 발휘하여 16세 때인 1911년에는 50곡 이상의 가곡과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의한 합창, 관악 오케스트라, 2대의 오르간, 2대의 피아노, 2대의 하프를 위한 대작을 완성했다. 1930년경부터 칼 오르프는 독자적인 작곡 양식의 확립에 정진한 결과, 1936년에 이르러 그의 독자적인 수법에 의한 [카르미나 부라나]를 내놓게 되었다. 1949년에는 오페라 [안티고네] 등을 계속 발표하여 오페라 및 극음악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구축한 그는 1982년 3월 29일 고향 뮌헨에서 사망했다. 그의 음악의 바탕은 음악 언어 동작(특히 무용적 요소)이라고 하는 3개의 기본적 요소의 완전한 일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것에 의해 이루어진 음악은 〈세계〉의 투영이라고 해서 자기의 극작품을 〈세계극〉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그리스 고전극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그의 작품에 시종일관해서 나타나고 있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주제가 되는 소재를 전개함이 없이 반복하고, 형식이나 화성은 명징 간결하여 일관된 리듬이 두드러진 음악이며, 또 대위법적 수법을 완전히 배제하고 단선 음악 취급에 의한 투철한 구성상의 단순성을 끝까지 관철시킨 음악이다. [카르미나 부라나]에 의해 확립된 칼 오르프의 독자적인 양식은 이후의 그의 전작품을 규정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것은 새로운 무대 음악으로서 모색을 계속하는 현대음악의 한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되었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보이렌의 시가집]이라 뜻의 라틴어이다. 11-13세기에 유랑승이나 음유시인들이 노래한 도덕, 사랑, 유희, 종교 및 외설 등에 관한 시가집이 1803년 뮌헨 남쪽에 위치한 바이에른지방에 있는 베네딕트 보이렌 수도원에서 발견된 연유에서 [카르미나 부라나]란 이름이 붙었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악보에 의한 해독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추정으로 연주한 음반이 현재 하모니아 문디 등에서 발매되고 있다.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의 대본은 중세의 시가집 [카르미나 부라나]에서 24곡을 골라 낸 것으로, 칼 오르프는 [카르미나 부라나]의 작곡에서 [보이렌의 시가집]의 가사는 차용했으나 선율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전체 25곡은 〈서곡〉(2곡), 제1부 〈봄의 노래〉(8곡), 제2부 〈주막에서〉(4곡), 제3부 줄거리를 갖는 〈사랑의 이야기〉(10곡), 〈서곡〉중의 첫째 곡이 마지막 25번 곡에서 반복된다.곡의 중심은 합창에 있으며, 소프라노, 테너, 바리톤의 독주자들은 부수적으로 설명을 보충하는 정도의 역할을 맡고 있다. 오케스트라는 대규모의 타악기(5대의 팀파니, 4개의 심벌즈, 3개의 종, 트라이앵글, 피아노 외 13종류)를 사용하여 강한 액센트의 합창 리듬을 산발적인 화음으로 강조해주고 있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기악의 반주를 가진 독창자와 합창을 위한 세속적 가곡이라는 일종의 무대형식 칸타타이다. 칼 오르프는 이 음악을 가수는 의상을 입고, 노래의 내용은 발레에 의하여 상징적으로 연출되는 극음악으로 작곡되었지만, 단순한 연주음악으로도 그 효과는 충분하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1937년 6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의 시립 가극장에서 초연 되었으며, 3부작 전체는 1953년 봄 밀라노의 라 스칼라좌에서 행해졌다.

첫 전개부터 충격과 감흥의 전율을 분출시키는 이 음악은 영화와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으며, 얼마전 TV드라마의 삽입음악으로 사용되어, 이 음반을 처음 듣는 사람도 첫 곡에는 매우 친숙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현재 [카르미나 부라나]의 음반은 오이겐 요흠(성음, DG), 안탈 도라티(성음, DECCA), 세이지 오자와(서울음반, RCA), 미셸 틸슨-토마스(지구레코드, CBS SONY)이 지휘한 4매의 라이센스 레코드와 페르디난트 리이터너(SKC, ACANTA), 헤르베르트 볼롬슈테트(POLYGRAM, DECCA)가 지휘한 2매의 국내 발매 CD와 10여매의 수입 CD가 선 보이고 있다.

오이겐 요흠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관현악단,합창단 외

녹음: 1967년 10월

시간: 총 58:20

(주)성음 LP SEL-200 141(DG)

현재 25종 이상의 [카르미나 부라나]가 발매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 고전적인 명반으로는 오이겐 요흠이 1967년 10월 베를린에 있는 우파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이 음반을 꼽을 수 있다. 이 음반의 왼쪽 상단에는 작곡자가 직접 감수하고, 작곡자의 의도대로 연주되었다는 뜻에서 서명이 표기되어 있다. 오이겐 요흠은 1954년경 이 곡을 세계 최초로 녹음하였으며, 이 음반은 그의 두번째 녹음이다.

[보이렌의 시가집]이란 뜻의 [카르미나 부라나]는 바이에른지방에 있는 수도원에서 발견되었고, 칼 오르프는 바이에른지방 북쪽에 인접한 뮌헨출신이고, 오이겐 요흠 도 바이에른 출신이다. 작곡자와 연주자가 동일한 문화권 출신이라는 것은 그들의 예술세계 표현에 공통점이 많다는 뜻이다.

요흠은 작곡자의 친구로서 성실히 작품을 다루고 있으며, 확실한 리듬으로 불안정한 데가 없이 매끄럽게 곡을 완성시키고 있다. 합창은 웅장하면서도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다. 여기에는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합창단의 가창력이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맑고 아름다운 정감에 싸인 목소리로 격조가 높고 우아한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베를린 출생의 소프라노 군들라 야노비츠, 독특한 음성과 음색으로 제12곡 〈지난날 내가 살던 호수〉에서 개성을 보여주고 있는 독일 태생의 테너 제랄드 스톨체,

위대한 예술 가곡 가수, 베를린 근교 출생의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가 표현해 내는 바리톤 독창곡 제4곡 〈태양은 모든 것을 부드럽게〉와 제16곡 〈낮, 밤, 모든 것이〉는 매우 아름답다. 3인 독창자와 합창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요흠의 절묘한 통솔력 아래 연출해내는 이 [카르미나 부라나]는 가히 명반이라 부를 만 하다.

1975년에 (주)성음에서 라이센스로 발매되었으며, CD(수입)로도 판매되고 있다.

로버트 쇼

애틀란타교향악단, 합창단 외

녹음: 1980년 11월 11-18일

시간: 총 60:31

텔라크(미국) CD-80056(수입CD)

[카르미나 부라나]에 포함된 25곡에는 바리톤 독창곡 2곡, 소프라노 독창곡 4곡, 순수 관현악곡 1곡, 6인의 중창곡 1곡과 17곡의 합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7곡의 합창곡에는 11곡의 순수 합창곡과 독창자와 함께 부르는 6곡의 합창곡이 들어있다.

위와 같이 [카르미나 부라나]의 승패는 합창단의 실력으로 그 우열이 좌우되고 있다. 그만큼 곡에서 합창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합창의 귀재라는 로버트 쇼가 연출해내는 이 음반은 그 멋진 합창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로버트 쇼(1916년 4월 30일 출생)는 1941년 뉴욕에서 학생합창단을 조직, 자신이 창안한 효과적인 훈련방법을 도입하여 명성을 얻은 후 1948년 40여명의 전문 성악가를 차출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인 로버트 쇼 합창단을 창단하였다. 합창 기교라는 점에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이 합창단은 로버트 쇼가 합창보다는 관현악단의 지휘를 많이 하게 되자 1966년에 해체되었다.

지극히 아메리카적인 사운드라고 할 수 있는 음의 조성방법과 현대적인 음향을 구사하며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 애틀란타교향악단의 생기있는 연주와 열연을 전개하고 있는 이 음반은 로버트 쇼의 성숙한 지휘와 합창의 어울림이 뛰어나며, 훈련이 잘된 합창단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장엄한 일대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소프라노 쥬디스 블레겐, 바리톤 하칸 하게갈드, 테너 위리암 브라운의 열창 또한 훌륭하며, 특히 3부 〈사랑의 이야기〉에서 소프라노의 기교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애틀란타 기념예술센터에서 디지털로 녹음된 이 CD는 현재 수입 판매되고 있다.

제임스 레바인

시카고교향악단, 합창단 외

녹음: 1984년

시간: 총62:00

DG(독일) 415-136-2(수입CD)

3명의 독창자와 어린이합창단을 포함한 대규모의 합창단과 18종류나 되는 많은 타악기를 보탠 관현악단에 의한 연주인 만큼 [카르미나 부라나]는 어떻게 다양한 음색을 훌륭하게 녹음에 표현하느냐에 또한 승패가 달려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시카고에서 열리는 라비니아 음악제의 음악감독으로 임명(1973년)되어 1984년 제49회 시즌기간에 시카고교향악단과 녹음한 제임스 레바인의 이 음반이다.

미국이 낳은 최초의 국제적인 오페라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은 1943년생으로 신시내티에서 출생했다. 1973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라파엘 쿠벨릭 음악감독 아래 수석지휘자로 추대되고 1975년부터 음악감독으로 정력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일반 관현악단의 지휘와 피아니스트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자기가 지휘하는 오페라는 모두 암보로 연주하는 레바인은 오페라연주에서 쌓은 경험으로 [카르미나 부라나]의 독창이나 합창을 관현악과 절묘하게 조화시키고있으며, 관현악이 놀랄 만큼 빛나게 울려 퍼지면서도 독창이나 합창과의 합주부분에서는 결코 지나치게 울려 퍼지는 일이 없이 한계점에 도달해서도 잘 조화된 음악을 유지시키고 있다. 1891년에 창립된 시카고교향악단 특유의 윤기나고 빛나는 음색은 매력적이며, 다이나믹한 연주는 현대적인 감각을 잘 표현하고 있고, 특히 타악기군과 금관악기군은 아연해질 정도로 멋있다.

소프라노 준 앤더슨, 테너 필립 크리치, 바리톤 B 바이클의 독창은 잘 다듬어져 정열적으로 부르고 있으며, 특히 제23곡 〈사랑스러운 사람이여〉에서의 소프라노 아리아는 과연 일품이다. 녹음도 우수하여 사운드스트림 녹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생생한 현장감을 재생하고 있다.

1985년애 발매된 이 CD는 현재 수입 판매되고 있다.

앙드레 프레빈

런던교향악단, 합창단 외

녹음: 1974년 11월 25-27일

시간: 총62:38

EMI(독일) CDC 7 47411 2(수입CD)

지휘자가 곡을 해석할 때, 작곡자가 곡을 작곡하였을 때의 악기를 사용하고 작곡자의 의도대로 곡을 연주하거나, 시대의 변화에 적응시켜 개량된 현재의 악기와 현대인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연주하는 방법이 있다. 요흠이 연주한 [카르미나 부라나]가 중세의 분위기에 기저를 두고 작곡자가 의도한 남부 독일 풍의 낙천적이며 정열적인 성향의 음악이라면 앙드레 프레빈의 [카르미나 부라나]는 현대인이 선호하는 분위기의 듣기 편한 음악이다. 이 두가지 형태의 음악은 연주의 우열을 논하기 보다는 듣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1929년 4월 6일 독일 베를린 출생의 앙드레 프레빈은 정통파 고전음악 지휘자가 아니다. 1945년 고등학교 졸업 후 MGM 영화사에 입사하여 1948년에는 최연소의 음악 감독이 되어 MGM의 영화음악을 지휘하고 재즈, 포플러 음악의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날리었다. 1967년 가을 존 바르비롤리의 후계자로서 텍사스주에 있는 휴스턴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영입되어 그의 포플러 음악에 친근해 왔던 많은 젊은이들을 고전음악 연주회의 청중으로 끌어들여 호평을 받았다. 1968년 9월 프레빈은 런던교향악단의 제8대 수석 지휘자가 되어 74년 11월 런던의 킹스웨이 홀에서 이 녹음을 완성했다. 79년 런던교향악단을 용퇴한 그에게는 런던교향악단 최초의 명예 지휘자 칭호가 주어졌다.

프레빈의 연주는 무엇보다 듣기가 편하다. 구두점이 잘 배려된 문장을 읽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알기 쉽게 들린다. 런던교향악단의 울림은 풍려한 색채감으로 빛을 발하고 있으며, 소프라노 세라 암스트롱, 바리톤 토마스 알렌, 테너 제랄드 잉글리쉬가 부르는 노래의 선율은 감미롭기까지 하다. 영화음악에서의 녹음의 예술적 효과가 이 음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75년 아날로그로 발매된 이 음반은 디지탈방식으로 재생되어 CD로 수입 판매되고있다.

마이클 틸슨-토마스

클리브랜드관현악단, 합창단 외

녹음: 1974년

시간: 총 62:00

CBS CCK-7088

[카르미나 부라나]의 제3부 〈사랑의 이야기〉(15곡 - 24곡)는 "사랑의 신은 어디에서나 날아온다. 실연으로 상처 받은 한 사나이가 있었는데, 그는 때때로 붉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처녀를 만나, 먼저의 실연을 탄식하면서도 이 처녀의 아름다움을 동경하게 된다. 짊은이와 처녀가 만나다면 거기엔 사랑이 싹틈은 자연의 법칙, 젊은이는 처녀에게 구애하게 되는데, 처녀는 사랑에 고민한다. 그러나 새로운 사랑에 기뻐하는 젊은이의 열렬함에, 이윽고 처녀의 심중에 사랑이 싹터서, 환희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약관 30세의 나이로 클리브랜드관현악단 과 클리브랜드의 매소닉 오디토리움에서 녹음한 마이클 틸슨-토마스의 이 음반은 현대 젊은이의 청춘찬가와도 같은 샤프하고 발랄하고 경쾌한 리듬을 담고 있으며, 1975년에는 이 녹음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1944년 12월 21일 미국 캘리포니아 헐리우드에서 출생한 틸슨-토마스는 생화학을 전공한 과학도였지만, 19세에 이미 청소년 음악가 재단 데뷔 오케스트라를 통하여 그 재능을 인정받고, 68년 탱글우드 음악제에서 쿠세비츠키상을 수상한 후 69년 보스톤 교향악단의 부지휘자로 임명 이래 본격적인 지휘자로서 확실한 자기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치밀한 앙상블을 자랑하는 클리브랜드 관현악단의 연주는 젊은 지휘자의 현대적인 감각의 경쾌한 해석으로 생기가 넘친다. 아름다운 발성의 소프라노 쥬디스 블로겐(로버트 쇼의 음반(1980년)에서도 소프라노를 부르고 있다), 드라마틱한 음성의 바리톤 피터 빈더, 밝은 음성의 테너 케네스 리겔의 노래는 젊음의 선율로 고조되어 있다. 각 부문의 세세한 음까지도 재생하고 있는 훌륭한 녹음이다.

이 음반에서는 제9곡 〈원무〉을 관현악곡 부문과 합창부문으로 분리하여 26곡으로 표시하고 있다.

1980년 지구레코드에서 라이센스로 발매되었으나 현재는 SKC에서 CD로 제작되어 CBS 레이블로 판매되고 있다.

  • 하모니아 문디에서 발매된 원본 [카르미나 부라나] 음반 중의 1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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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오르프 '카르미나 부라나'의 뮌헨

'운명의 수레바퀴' 합창음악으로 자연ㆍ향연ㆍ사랑 세가지 욕망 축으로 외설과 풍자ㆍ익살ㆍ진지한 사랑 담아 극과 음악 결합시킨 '카르미나..' 완성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가늠할 수 없는 「운명」이다. 「운명」이란 이름의 키워드로 세상은 아니 우리의 삶은 지배받아 왔다. 오르프에게 있어 운명의 여신은 포르투나(영어 Fortune과 발음이 흡사하다)란 이름을 지녔었다. 텔레비전 어느 광고의 행간에서인가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의 주제는 우리를 굽어본다. 액센트가 힘있게 주어지는 네 개의 첫 음절 「오, 운명의 여신이여」를 모른다고 고개를 저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베토벤 「운명 교향곡」의 첫 네 음절만큼 폭 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 작품이 「카르미나 부라나」이다.

드라마틱했던 대선을 뒤로 하고 우리는 오르프의 「운명」과 조우한다. 독일의 현대 음악가 칼 오르프(1895∼1982)가 생각하는 「운명의 수레바퀴」는 가장 설득력 있는 욕망의 세 축으로 굴러가도록 돼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먹고 마시며 취하는 향연, 남녀간의 사랑이 그가 생각하는 운명의 바탕그림이다. 한 차원 높은 세상의 예술이란 것은 사실 이러한 욕망이 바탕에 있는 것이다. 지나친 외설과 풍자, 그리고 잔 밖으로 흘러 넘치는 익살, 한껏 진지해 보이는 구애와 살갗으로 느껴지는 사랑 등. 이런 내용은 놀랍게도 중세의 유럽에서 빌어 온 것이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내용을 가진 음악이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합창음악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이다.

독일 뮌헨의 마일링저란 곳에서 태어난 칼 오르프는 사실 당대의 현대음악 조류와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다. 쇼스타코비치나 프로코피에프처럼 교향곡의 부흥에 온몸을 불살랐던 것도 아니었고, 新빈악파의 난해함에 동조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극과 음악을 한번 멋지게 결합하고 싶어했을 따름이었다. 1912년 뮌헨 음대를 나온 이후 앞날을 모색하던 그에게 길을 열어준 사람은 쿠르트 작스였다.

이후 오르프는 일련의 무용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사람의 몸이 표현할 수 있는 공간과, 그 공간이 연출하는 음악이 신기하도록 어울리는 배필임을 깨달았다. 합창음악(원래는 발레가 들어 있었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이렇게 해서 세상의 빛을 보았다. 또한 그는 그리스의 작가 소포클레스가 쓴 「안티고네」를 극 음악으로 만들기도 했다. 198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르프의 이름은 적어도 극 음악 부문에서는 최고의 반열에 있었다.

1937년에 초연된 「카르미나 부라나」는 뮌헨에서 작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시절의 음악 양식에 뿌리를 둔다. 모두 25곡으로 된 이 작품의 주역은 물론 합창이고, 바리톤 독창과 소프라노 독창도 있다.

엄숙주의 속에 감춰진 인간의 원초적 욕망처럼 실감나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그게 바로 우리의 보편적 「운명론」이 아니었던가.


사진설명 :극음악의 대가 칼 오르프(맨위). 독일 뮌헨에 있는 칼 오르프의 생가. 대표작'카르미나부라나'의 모델인 당시 선술집 풍경.


서동진(음악 칼럼니스트)

오르프, 칼

Carl Orff(1895 뮌헨-1982 뮌헨)

독일의 작곡가.

처음에는 뮌헨, 만하임, 다름슈타트에서 지휘자로 활약했으며, 작곡가의 길로 들어가기까지는 약간의 기간이 필요했다. 1920년부터 1935년에 걸쳐서 오페라나 교향시, 그리고 프란츠 베르펠 Franz Werfel과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작품을 텍스트로 한 가곡이나 칸타타 등을 작곡하였다. 1920년대부터 리듬에 기초를 둔 음악교육체계에 주목하기 시작하였으며, 1925년에는 도로테 귄터 Dorothee Gunther와 협력하여 고전 무용과 리듬체조를 가르치는 귄터슐레 Guntherschule를 설립하였다. 귄터슐레의 학생들을 위하여 오르프는 소규모의 타악기(5음음계로 조율되어 음이 줄여진 목금이나 철금)가 많이 포함된 오케스트라를 구상했는데, 이 오케스트라는 1933년의 저서 학교 교육용 작품 Schulwerk 이후 제창된 교육 방법과 관련하여 지금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이 방법은 오늘날 몇몇 사람들로부터 꽤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달크로즈법과 함께 아동용으로 고안된 것 가운데 실제로 쓰이고 있는 흔치 않은 교육법의 하나이며 전통적인 솔페주를 대신하는 것으로 제시되었다. 이와 동시에 1920년부터 1930년대에 걸쳐서 오르프는 거의 잊혀진 음악가인 버드나 랏수스, 쉿츠, 몬테베르디 등의 음악에 흥미를 나타내어(특히 몬테베르디에 대해서는 오페라 오르페오 Orfeo를 편곡하였다),

그러한 작품의 연구에서 음악의 원초적인 기원으로 되돌아가는 음악이라는 오르프 독자적인 개념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러한 음악의 원초적인 기원은 신체, 즉 음악적 기술과 육체적 조정의 학습에 이어져 있는 동시에 전례로서의 음악이라는 일종의 관념에도 연결되어 있다. 제3제국시대인 1937년에 오르프는 카르미나 부라나 Carmina Bourana로 최초의 큰 성공을 거두어 그 반향은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이 이교적인 정신을 가진 무대 칸타타에서 오르프는 잘 갈고 닦여져 단순화된 음악서법에 의해서 원초적인 연극 양식이 가지고 있던 힘의 재발견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그때까지의 스스로의 작품을 파기하고 부인한 그는 카르미나 부라나에 나타난 방법을 추구하게 된다. 이 작곡 양식에서는 새로운 단순성(완전협화음의 기계적 반복이나 렉토 토노 recto tono의 낭창, 복잡성의 최소한의 수준으로까지 환원되는 선율과 리듬의 요소)이 극적인 매력이라는 의도에 도움이 되고 있다. 그 뒤에 작곡된 카툴리 카르미나 Catulli Carmina(1943)와 아프로디테의 승리 Trionfo di Afrodite(1953)의 두 작품을 더해서 이교적 3부작 승리 Trionfi가 완성된다. 이 3부작은 젊고 씩씩하고 힘찬 집단의 표상으로서의 에로스를 찬양하는 것이다. 또 바이에른의 전설을 바탕으로 작곡한 달 Der Mond(1939), 현명한 여자 Die Kluge(1943), 바이에른 사투리로 쓴 베르나우어의 여인 Die Bernauerin(1947) 등의 신비극에서는 독일의 민중적 음악극의 형식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제3제국의 공인 음악가의 한 사람이었던 오르프는 제국이 붕괴할 무렵에는 차라리 그리스적인 테마(소포클레스 원작 횔데를린의 독일어판에 의한 안티고네 Antigonae(1949)와

폭군 오이디푸스 OEdipus der Tyrann(1959), 거기에 고전 그리스어에 의한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1966])나 그리스도교적인 테마(그리스도 부활극 Comoedia de Christe resurrectione[1957], 아기의 탄생을 찬양하는 기적극 Ludus de Nato Infante mirificus[1960], 때의 마지막 희극 De temporum fine comdia[1973])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무대를 위한 작품에서는 현악기가 최소한으로 줄여지고 관악기나 특히 타악기 같은 고대를 지향하는 정신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악기로 그것을 대신했다. 왜냐하면 오르프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고대 취미도 처음에 정한 작곡 규범에서 벗어나는 뉘앙스, 간격, 변덕 등을 솔직하게 포기하는 태도 위에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르프의 성공은 이러한 효과에 대한 연구에서도 간단히 설명할 수 있고 그것을 작품에 살리는 그의 음악적 재능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거기에는 어떤 미학이나 표현 이상의 것이 있다. 즉, 그 어떤 사상 고대를 지향하는 시점에서 본 신화에 대하여 느끼는 매혹, 집단적 이념인 힘이나 지배의 이교적 고양을 받쳐주고 있는 총괄적인 개념인 것이다.

우선 이 장에서 말할 칼 오르프와 윤이상님에 대해서는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에 없는 것이라 클래식에 관한 인터넷 사이트 중에 김진규 님의 홈페이지(홈 주소는 잘 몰라서 기재를 못함을 양해바랍니다 ^^;)에서 자료를 가져 왔음을 알려 드립니다. 퍼 온 정보라서 원본에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싣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현대 음악계에서 중요한 사람이고 특히 윤이상님은 한국인으로 너무나 위대하고 자랑스런 작곡가라서 부득불 자료를 가져왔음을 밝힙니다.

칼 오르프 (1895 - 1982) 뮌헨에서 태어난 오르프는 5세부터 첼로, 피아노, 오르간을 배웠고, 11세 때 12개의 초기가곡을 작곡해냈다. 뮌헨음악원에서 작곡과 지휘를 공부한 후 뮌헨, 만하임, 다름슈타트 등지에서 악장을 역임했다. 고음악 연구에 흥미를 느낀 그는 몬테베르디를 비롯한 바로크 작곡가들의 작품을 다수 편곡했다. 1924년에 도로테 귄터와 함께 뮌헨에 체육, 무용, 음악학교인 를 설립하여 신체의 움직임과 음악을 결합하려는 시도를 했다. 음악교육에도 열성적이었던 그는 1930년부터 35년 사이에 전 5권으로 된 〈학교교육용 작품집〉을 편찬했고, 〈어린이를 위한 음악〉도 저술했다. 오르프는 1937년에 대작 〈카르미나 부라나〉를 완성하면서 이전의 작품들을 모두 파기해버렸다. 그래서 〈학교교육용 작품집〉은 1937년 이전에 작곡된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작품이 되었다. 〈카르미나 부라나〉 〈카툴리 카르미나〉 〈아프로디테의 승리〉의 3부작으로 된 는 중세 라틴어와 독일어 텍스트를 통해 신을 떠나 육신을 찬미한 세속 찬가다. 단순한 화음과 고전적인 멜로디를 사용하여 극의 효과를 주었으며, 강렬하고 복잡한 리듬이 충격을 주었다. 합창과 타악기들이 원시적인 생명력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것은 오르프가 열망했던 "종합극"의 이념이 그대로 반영된 곡이었으며 이로인해 그의 이름은 전세계에 알려졌다.

윤이상 (1917 - 1995) 1917년 9월 17일, 윤이상은 경상남도 통영(지금의 충무)에서 태어났다. 나중에 독일의 문학가 루이제 린저는 선생의 태몽 이야기를 듣고 그의 자서전 제목을 '상처입은 용'이라고 달았으며, 이 제목은 윤이상을 상징하는 별명이 되었다. 8세 때 소학교에 입학하여 서양음계를 배운 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나와 서울에서 음악을 공부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공부를 계속했다. 전쟁으로 인해 귀국한 그는 비밀 탄약 공장을 차리던 중에 조선어 가곡을 지었다는 이유로 2개월간의 고문과 투옥을 겪기도 했다. 해방 후 결핵으로 사경을 헤매기도 했으나 가까스로 회복한 그는 서울로 옮겨 음악활동을 계속했고 1955년에 〈현악 4중주 1번〉과 〈피아노 3중주〉로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파리 국립음악원에 유학했고, 1957년에 베를린으로 옮긴 윤이상은 블라허 등에게서 현대음악을 배웠다.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 등 그의 작품은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에 연주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1966년엔 도나우에싱엔에서 관현악을 위한 을 초연했다. 그러나 67년 6월 18일, 그는 중앙정보부에 의해 강제 납치되어 간첩으로 몰렸고 사형을 구형 받았다. 이른바 〈동백림 사건〉이었다. 베를린 시장을 비롯하여 카라얀, 클렘페러, 아라우를 위시하여 슈톡하우젠, 리게티, 헨체 등 당대 세계 정상 음악가들의 항의로 인해 죽음 직전에 구출된 그는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왔으나 이후 평생토록 조국을 밟을 수 없이 '20세기의 오디세이'로 떠돌아야 했다. 69년엔 그가 감옥에서 작곡한 이중 오페라 (〈류퉁의 꿈〉과 〈나비의 미망인〉)이 초연되었고, 72년 뮌헨 올림픽 문화축제에선 그의 오페라 '심청'이 올랐고, 베를린 대학 교수, 튀빙겐 대학 명예박사, 그리고 독일 연방공화국 대공로 훈장이 그에게 수여되었고, 사형수 윤이상은 현존 세계 5대 작곡가의 한사람으로 추앙 받았다. 1981년엔 〈광주여 영원하라〉를 초연했고, 81년부터 87년까지 매년 1곡씩 교향곡을 발표했다. 1990년에 평양에서 '범민족 통일 음악회'를 성사시켰으나 그로 인해 건강을 해쳐 결국 95년에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다. 죽기까지 독주곡에서 오페라에 이르는 120여 곡의 대작들을 작곡해냈으며, 그가 타계한 직후 독일 신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퉁'은 "음양(陰陽), 동정(動靜), 강약(强弱)의 조화와 변화를 담아 동서양의 접목을 시도한 위대한 작곡가"라고 평했다. 또한 정치적 인본주의를 표방한 휴머니스트라고 말했다.

올리비에 메시앙 (1908 - 1992) 메시앙은 1908년 12월 10일 아비뇽의 문학계의 양친에게서 태어났다. 양친은 모두 음악하고는 연관이 없었는데, 메시앙은 어려서부터 음악의 재능을 나타내서 아홉 살 때에는 최초의 작품인 피아노곡 '샬로트의 귀부인'을 작곡했다. 제 1차 세계대전 후의 1919년, 메시앙은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서 1930년에 졸업했는데, 그동안 오르간과 작곡을 시작했고 음악원에서 배운 거의 모든 과목에서 1등 상을 받았다. 1930년에 메시앙은 파리의 트리니테교회의 오르간주자로 채용되었다. 그 때문에 1939년까지의 초기의 작품은, 오르간곡이 많이 차지하고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오르간곡은 '성찬식'(1928), '그리스도의 승천'(1933-4), '그리스도의 강탄'(1935), '영광의 존체'(1939)이다. 오르간곡 말고도 피아노를 위한 전주곡집(1929) 등이 초기의 대표작으로 손꼽을 수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의 1940년에 메시앙은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1941년에 송환되어, 이후 관현악곡과 피아노곡의 창작에 전념했다.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세계의 종말을 위한 4중주곡'은 1940년 포로로 수용소에 있는 동안에 썼으며, 함께 포로가 된 세 사람의 프랑스 음악가들과 같이 거기서 초연을 했다. 이 특수한 악기의 편성도 다른 악기의 주자가 없었던 상황에서 생긴 일이었다. 이 이후 그는 실내악곡이라는 걸 쓰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오케스트라와 같은 풍부한 음의 표현이 가능한 것이라든가 피아노의 독주곡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오르간 곡을 잊은 건 아니었지만 전후의 메시앙에게는 그다지 크나큰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 1942년 파리로 돌아온 메시앙은 파리 음악원의 화성학의 교수로 취임했다. 그리고 1947년에는 파리 음악원의 악곡법, 미학, 리듬법 등의 교수로 있게 된다. 메시앙의 초기의 제자들 중에는 불레즈, 슈토크하우젠, 이본 로리오 등 후일에 저마다 유명해진 학생들이 숱하게 있었다. 특히 1943년 이후의 메시앙의 모든 피아노곡은 로리오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1959년에 최초의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3년 후인 1962년에 메시앙은 그녀와 재혼했다. 파리에 돌아온 직후 쓴 작품엔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힐 작품이 많다. 2대의 피아노를 위한 '아멘의 환영'(1943), 피아노 독주곡'아기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눈길'(1944) 등이 있다. 이 시기까지의 작품의 주제에는 카톨릭신앙의 영향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예배음악이 아니라 콘서트 홀의 음악으로 써 가면서, 그 안에서 상징적 접근을 즐겨 시도해 본 데 불과하다. 오르간곡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예배의 일부로서 그 반주를 하기 위한 음악은 아니었다. 1945년부터 49에 걸쳐 메시앙은 사랑과 죽음을 주제로 한 3편의 작품에 착수했다. 최초의 작품은 페루의 신화와 종교적인 상징주의에 따른 소프라노와 피아노를 위한 '아라위'이며, 다음의 피아노를 포함하는 대오케스트라를 위한 '투랑가릴라 교향곡'과 12성을 위한 '5개의 르샹'이다. 1944년 이후, 관악기와 금속타악기를 위한 '그러므로 나는 죽은 자들의 소생을 기다리도다'(1964)까지 메시앙의 작품에는 기독교적 상징주의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 후 오르간 곡'성령강림제 미사'(1950)와 '오르간의 책(1952)으로 한 때 기독교적 상징주의로 돌아왔지만, 이 이후의 작품에서는 새의 노래가 크게 다루어지고 있다. 1964년 이후 메시앙은 다시 기독교적 상징주의로 되돌아와서 합창, 기악독주, 오케스트라를 위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변용', 오르간을 위한 '성삼위일체의 기적에 관한 명상',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곡에서 별로', '아사시의 성 프란체스코'(1983)등 일련의 대작들을 써냈다. 메시앙의 음악은 작곡가로서의 성장과정에서 갖가지 영향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젊은 시절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요소는 색채와 음과의 연관에 날카로운 감각이다. 색채와 음을 연관시킨다는 사고는 독특한 선법론을 탄생시켰다. 그의 초기의 작품에서 이것은 이조(移調)의 한정된 선법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아주 인공적인 음계 시스템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한 옥타브를 2등분, 3등분 또는 4등분해서, 각 그룹의 전음, 절반의 수를 등분하면 애초의 음계를 되풀이하기까지 이조할 수 있는 횟수가 한정된 하나의 선법이 형성되는 것이다. 메시앙은 처음으로 출판된 작품인 초기의 오르간곡 '성찬식'으로부터 '5개의 르샹'까지 이 특수한 선법을 활용해서 독자적인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는 전곡을 한 조성으로 쓰는 일은 하지 않고 있어서, 이 독자적인 선법이 조성의 대신 역할을 하지 않지만, 한곡 중에서 선법을 병행시키고 혹은 중첩시키면서 효과적인 콘트라스트를 나타내주고 있다. 이 음계에 보태어 그는 그리스의 박자와 13세기의 인도음악 타라스에서 응용한 리듬 패턴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메시앙이 노리는 바는 규칙적인 박자(또는 시간의 구분)에 의한 리듬을 피해서 시간의 개념을 아주 지워버리는 일이었다. '세계의 종말을 위한 4중주곡'이라는 표제에 계시적인 의미에서의 종말과 음악적인 의미에서의 시간의 소멸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1948년 이후 피아노협주곡 '새의 카탈로그'까지 메시앙은 초기의 선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 동안 메시앙은 '뮈지크 세리엘'수법을 시도해서 새의 노래를 소재로 많은 실험을 했다. 1944년 불레즈가 파리음악원에 들어올 무렵엔 메시앙은 베르크의 '서정모음곡'을 분석하고 쉰베르크와 베르크의 음정에 관한 12음기법을 고전적인 리듬과 형식에 구애받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메시앙의 이런 생각은 불레즈를 포함하는 그의 제자들의 초기 작품 뿐 아니라 40년대 후반의 그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1953년부터 60년에 걸쳐, 그는 새의 노래를 주요 모티브로 한 일련의 작품을 발표했다. '새의 카탈로그'를 작곡할 때에는 메시앙은 종이와 펜을 갖고 시골로 떠나, 그의 표현에 의하면 '청각테스트'처럼, 들려오는 새소리를 적어 놓았다. 메시앙은, 틀림없이 20세기의 위대한 작곡가의 한 사람이지만, 그는 어느 유파에도 단체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1936년에 졸리베, 다네엘-르쉬르, 보드리에 등과 결성한 '프랑스청년파'가 예외로 지적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그룹은 작곡가들 사이의 우정에서 싹튼 것이며, 미학적 선언 따위를 하는 식의 단체는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메시앙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현재에 이르는 20세기 현대음악의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주고 정점적인 역할을 해 왔다. 그는 헝가리, 미국, 독일, 불가리아, 아르헨티나에서 교편을 잡고, 세계 도처에서 제자들이 그의 곁으로 몰려왔다. 그들중에 불레즈가 있었다는 것, 메시앙이 분석의 교재로 사용한 최초의 작품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었던 것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그의 애제자인 불레즈의 '봄의 제전'의 분석은 메시앙과 다르지만 스승의 작업에 촉발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Luise Rinser(1911.4.30-):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여류 소설가로서 주요 작품으로는 생의 한가운데》《다니엘라》《파문(유리반지)》《완전한 기쁨》등이 있다.

독일 오버바이에른주(州) 피츨링에서 출생하여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1925년 14세 때 독일어 교사로부터 시인 횔덜린(F.Hoelderlin)의 생애를 듣고 그의 《히페리온 Hyperion》을 암송하며 문학에 눈을 떴다.

뮌헨대학교에서 교육학과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이때 왕성한 독서욕으로 니체(F. Nietzsche), 헤겔(G.W.F. Hegel),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 야스퍼스(K. Jaspers), 하이데거(M. Heidegger), 마르크스(K. Marx) 등의 책을 두루 읽었다.

대학졸업 후 1935년부터 교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향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1939년 학교로부터 나치스에 가입하라는 독촉을 받게 되자 직장을 떠났다. 같은 해에 젊은 작곡가와 결혼한 후 소설을 쓰기 시작해 1940년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파문(유리반지) Die glaesernen Ringe》을 완성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로서 병상에 있던 헤르만 헤세(Hermann Hess)가 찬사의 편지를 보낼 정도로 반응이 대단했다.

1944년 남편이 러시아전선에서 전사했으며, 자신은 히틀러 정권에 반발했다는 이유로 작품의 출판금지를 당하고 게슈타포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이어 반나치스활동으로 투옥되었으며, 1944년 10월,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종전으로 1945년 석방되었다.

종전 후 이때의 경험을 일기형식으로 쓴 《옥중기 Gefaengnistagesbuch》(1946)를 통해 작품활동을 재개했다. 《옥중기》는 나치스에 대한 고발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으로서, 이 작품을 계기로 작품세계는 자신의 내면 풍경을 묘사하는 것에서 벗어나 인류의 세계사적 비극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유대인에게 가했던 동족의 만행을 고발한 반파시즘적인 중편 《얀 로벨 Jan Lobel aus Warschau》(1948)에도 잘 나타나 있다.

1950년에 발표한 《생의 한가운데 Mitte des Lebens》는 니나라는 여성의 삶을 통해 사랑의 본질적인 의미를 탐구한 대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침체된 독일문단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그녀의 작가적 기반을 튼튼히 다지는 역할을 했다. 이 작품으로 슈켈레(schickele) 문학상을 수상했다.

1953년 《다니엘라 Daniela》를 발표했으며, 1954년 독일의 작곡가인 칼 오르프(Carl Orff)와 재혼했다. 1957년 《생의 한가운데》의 속편인 《덕성의 모험》을 발표하여 ‘니나 소설’을 완성했다. 1959년 두 번째 남편과 이혼한 후 이탈리아의 로마 근교 로카디파파에 거주하며 자유문필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후에 나온 작품에 장편소설 《완전한 기쁨 Die Vollkommene Freude》(1962)을 비롯해 《토비아스》(1967) 《검은 당나귀 Der Schwarze Esel》(1973) 《미리암》(1983) 《아벨라르의 사랑 Abaelards Liebe》(1991) 등의 소설과 많은 수필집, 기행문과 일기 등이 있다.

억압받는 민족에 특히 관심을 기울여온 작가는 북한을 여러 번 방문했으며, 한국 관련 저서도 많이 집필했다. 그 중 작곡가 윤이상(尹伊桑)과의 대담록인 《상처입은 용 Der verwundete Drache》(1977)과 북한방문 후 집필한 《또 하나의 조국》 등을 통해 사회비판적이며 휴머니즘적인 세계관을 표명했다.

전후 독일의 가장 뛰어난 산문작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토마스 만(Thomas Mann)으로부터 시대악과의 싸움에서 뛰어난 용기를 보인 작가라고 평가받았으며, 시몬느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와 더불어 현대여성계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진다.

처녀작 《파문》을 비롯하여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생의 한가운데》 《다니엘라》《완전한 기쁨》《검은 당나귀》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작품세계는 여인의 사랑과 적극적인 사회참여 등을 기독교적 질서와 조화로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문체가 간결하고 보편성을 띤 주제를 다루므로 외국에도 비교적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다. 주요경력에 1979년 바트 그란더하임 시의 문학상인 로즈비타 기념메달 수상, 1987년 구동독 학술원의 하인리히 만 문학상 수상, 1988년 엘리자베스랑게서 문학상 수상 등이 있다.

LINER NOTES

Copyright 1983 A&M Records, Inc.

CARMINA BURANA


Music Composed By Carl Orff - Produced By Philip Glass and Kurt Munkacsi - Arrangements By Ray Manzarek

MUSICIANS:

Ray Manzarek: Piano, Organ, Misc. Keyboards Michael Riesman: Synthesizer and Orchestrations Larry Anderson: Drums Ted Hall: Guitar Doug Hodges: Bass Adam Holtzman: Synthesizer Jack Kripl: Saxophone, Fl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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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Y RULER OF THE WORLD THE WHEEL OF FORTUNE (O FORTUNA) THE WOUNDS OF FATE (FORTUNE PLANGO) SPRINGTIME THE FACE OF SPRING (VERIS LETA FACIES) SUNRISE (OMNIA SOL TEMPERAT) WELCOME (ECCE GRATUM) THE DANCE (TANZ) SWEETEST BOY (DULCISSIME) IF THE WHOLE WORLD WAS MINE (WERE DIU WERLT) IN THE TAVERN BOILING RAGE (ESTUANS INTERIUS) THE ROASTED SWAN (OLIM LACUS) IN THE TAVERN (IN TABERNA) THE COURT OF LOVE LOVE FLIES EVERYWHERE (AMORE VOLAT) A YOUNG GIRL (STETIT PUELLO) COME, MY BEAUTY (VENI VENI VEMIAS) THE LOVERS (BLANZIFLOR ET HELENA)

In 1803 a scroll of medieval poems was discovered in the German province of Bavaria among the debris of the secularized monastery of Benedikt-Beuren ("BURANA").

These lyrics, written primarily in Latin, were determined to be the work of renegade monks and wandering poets of the 13th Century. Their words captured a lost world of rebels and dropouts of the medievil clergy: hard lovers, drinkers, on the move, celebrating existence rather than living the meditative, celibate, cloistered life of the monastery.

In 1935 German composer Carl Orff re-discovered the poems. Impressed withe their meaning and rhythm he composed a cantata utilizing the centuries old verses. He transformed the writings into invocations and profane chants accompanied by numerious instruments and magical representations.

These songs ("CARMINA") were divided into three sections: Springtime-the life force renewed; In the Tavern- drinking and gambling: The Court of Love- passion, sensuality. The sections are pervaded and framed by The Wheel of Fortune ("O Fortuna") perpetually turning, perpetually governing the course of man's existence.

In 1983 Ray Manzarek, long attracted to the spiritual power of CARMINA BURANA, chose to interpret the piece in a contemporary framework. This presentation intends to create enchanted pictures; to conjure up the ectasy expressed in the lyrics, an enhanced intense feeling for life akin to the passions and revelry of the wandering poets of so long ago.

Ray Manzarek. The 1983 A&M Press Release.


Nothing about Ray Manzarek's career has been ordinary. Keyboardist with The Doors, record producer (notably the rock band X), solo artist: in these and other pursuits, Manzarek has studiously avoided any hint of compromise or predictability. It's only appropriate, then, that his first album for A&M Records is another extraordinary effort: a contemporary interpretation of Carl Orff's Carmina Burana. Carmina Burana, written in 1935 and first performed in 1937, is a vocal and instrumental cantata based on a series of medieval poems (most likely dating from the 13th Century) written in Latin by a group of renegade monks. Manzarek was aided by the noted composer Philip Glass (who co-produced the album) and some of Glass' closest musical associates. Manzarek chose to perform the work in an instrumental setting that would have been impossible in Orffs time: instead of working with an orchestra, he arranged the music for an electric jazz-rock band, including members of a group called the Fents and Manzarek himself on keyboards. The details of Manzarek's career have been well documented by now. In 1966, after graduating from UCLA, he and classmate Jim Morrison decided to form a rock 'n' roll band. That band, The Doors, went on to become America's premier rock band, record eight platinum albums' (and three platinum singles') worth of material before Morrison's death in 1971. Manzarek and fellow remaining members went on to make two more Doors albums before disbanding for good in 1973. Manzarek then made two solo albums, The Golden Scarab and The Whole Thing Started with Rock 'n' Roll, Now It's Out Of Control. In 1976 he put together Nite City, his first working band since The Doors; they recorded two albums, only one of which was released in the United States. The late 70's was a period of intense activity for Manzarek. He participated in the completion of An American Prayer, an album of Jim Morrison's poetry and the Doors' music. He was asked to write some of the music for Francis Coppola's "Apocalypse Now," a task that Ray's schedule ultimately did not permit him to fulfill, (eventually Doors' music would be used for the soundtrack). He witnessed a remarkable Doors renaissance, as renewed interest in the group resulted in the reappearance of several of their albums on the charts, heavy airplay, various TV and film documentaries and a best-selling Morrison biography (co-written by Ray's personal manager/publicist, Danny Sugerman). Manzarek himself was at the center of the new music scene that sprang up in Southern California. He produced X's Los Angeles, an album that brought both group and producer considerable acclaim; he has also produced the three subsequent X albums. All in all, Ray Manzarek has not been lacking things to do. Carmina Burana, Ray says, "is a piece I've always loved. Four or five years ago, I went out and bought the piano and vocal score. I wanted to find out exactly what Carl Orff was up to in one particular section, as far as the rhythmic structure. The section was called 'The Dance'; I tried to keep my foot tapping along with it, but the rhythm kept turning around, and I wondered what he was doing . . . it was brilliant. So I got the music, and once I'd checked it out I was hooked. "The aspect of Gregorian chants with strong rhythm - which is essentially what Carmina Burana consists of - is something you don't normally hear," Manzarek adds. "I think that's what intrigued me about it in the first place . . . the power and passion . . . But, I heard it with even more emphasis on the rhythmic foundation, and that's what I set out to do with it." Manzarek, with production assistance from A&M's David Anderle, made demos of four Carmina Burana sections. Those tapes found their way to Philip Glass, a composer whose many works have included the opera Einstein on the Beach (1976), the musical theater piece The Photographer (1982) and soundtrack music for such films as "Koyaanisqatsi (1982). Glass expressed an interest in Manzarek's project; he and Kurt Munkacsi, who has co-produced all of Glass' recordings (and who has also produced the Waitresses and engineered for John Lennon, Brian Eno, Ornette Coleman and others), agreed to produce Carmina Burana. Michael Riesman, another frequent Glass collaborator, played synthesizer and conducted the 10-member vocal ensemble used on Manzarek's album. "Once the Carmina Burana team was assembled, Manzarek discovered an almost inexplicable affinity among the project's various components. The whole minor overtone in Gregorian chants is, in essence, Doors music," he explains. "And that plugs into the modal idea of late '50's jazz - like Miles Davis' Kind of Blue one of my favorite records. That's the way I like to play. And working with Philip Glass was perfect. He plays like I do; I play like he does. We have a very similar harmonic, rhythmic and melodic approach, based on working off of chord structures. We're coming from the same place, only he comes from the classical end and I come from the rock end. "Philip Glass, Carl Orff, Ray Manzarek: We're all revolving around the same central point of rhythm and harmony. It's a marriage made somewhere . . . I don't even control it." Other than reducing Orff's 25 parts to 16, Manzarek and company stuck to the original score. But the instrumentation differed considerably: where Orff used strings and orchestral percussion instruments, Manzarek used synthesizers and a standard trap drum kit. "It is totally contemporary," he says. "Even though the piece is nearly 50 years old, it doesn't sound dated; it really could have been written today. I think it's timeless. "The fact that the Iyrics are in Latin might be difficult for some people," Ray continues. "But the voices are simply another rhythm instrument, and they should be regarded that way. In essence, this is an instrumental album; there are human voices, but they're chanting across the top of this rhythmic foundation we've established for them." A one-hour "video opera" based on Manzarek's Carmina Burana is currently in progress. Produced in cooperation with Los Angeles' Mark Taper Forum, it will include a complete script written by Louis Valdez (' Zoot Suit"). Manzarek calls it a "psychic journey through life, death, and rebirth, sort of a modern Tibetan book of the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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