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병일기0327

1 # 3.27 (화)[ | ]

요즘 4주차들어 밥을 자주 남긴다.
속이 좀 안좋다.

어제 야간각개를 하는데 속이 안좋아서 설사를 했다.
조교 하나가 따라와서 어서 싸라고 재촉한 것은 짜증났었지만 바로 그 조교가 야간각개 실습을 가르쳐주는데 그것은 조금 감동적이었다.
애들 대부분이 야간이동 자체를 우습게 생각하는데 그들은 그것을 너무나 진지하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나도 비교적 진지한 사람이지만 진지하게 사는 사람들은 보기가 좋다.

군대라는 조직에 대해 또한번 생각해 본다.
사실 나나 내 전우들은 여기서 주인이라기보다는 방관자이다.
4주만 있으면 나간다는 사실이 교관들의 충고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26개월을 지낸다면 그렇게 살 수 없을 것이다.
2년이 넘게 이런 조직에서 방관자로 지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조교들의 몸에 배어있는 진지함은 주인의식에서 나오는 것일게다.
이나라 남자들의 절반이상이 인생의 가장 활기찬 시기에 군인의 마인드를 주인의식으로 체화시킨다는 것은 끔찍하다.

전두환 시대때는 삼청교육대의 존재가 사회를 정화시킨다고 믿는 넘들이 있었다.
분명 군대가 이 나라의 기둥이라고 믿는 놈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
어서 통일이 되고 사회가 안정되어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다고 병장들의 2년 2개월에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그들은 통과의례를 거친 자들이다.

  • 해설

이 조교가 나에게 보여준 행동은 훈련소에서 느낀 몇안되는 감동이었다.
나중에 이친구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로 소리를 빽 질렀음에도 말이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해도 시시하기 짝이없는 야간각개전투 훈련 시범을 그렇게 진지하게 하다니 말이다.
나는 조금만 재미없거나 하면 진지하게 안하는 경향이 있다.
나중에 한방 먹어야 고쳐질지 모르겠다.
시시한 것이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세상에는 아직도 전체주의를 동경하는 인간들이 많다.
내 생각에 군대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인간들 상당수가 그런듯 하다.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 전체주의자 내지는 수구반동적인 인간들은...
마치 그들이 레드컴플렉스에 걸린것 못지않게 싫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지고의 가치를 거부하는 인간들이다.

2 # 3.27 (화) part 2[ | ]

오늘 수류탄을 마지막으로 50km를 제외한 모든 훈련이 끝났다.
나갈 날을 생각하다보니 오히려 마음이 조급해지고 시간이 안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훈육들 말로는 4주가 되면 다 그렇다한다.
애들 모두 빠져가지고 풀어져서 지낸다.
나도 경민이와 농담따먹기하는 횟수가 늘고있다.

여기있다보면 확실히 사람들의 성격이 드러나는데, 나이와는 상관없이 빠진녀석은 빠졌고 부지런한 녀석은 부지런하다. 어린 녀석중 빠진 녀석들을 보면 영 맘에 안든다. 나도 한국식 권위주의에 빠져있는 것인지? 나도 어릴때 그랬는지?

애들이 자발적으로 군가를 가르쳐달라고 한다.
난 그런 정서가 어색하다.
아무래도 난 체질적 방관자이거나 소외자인가보다.
난 대학때도 그랬었다.
다들 노래부를때 난 부르기 싫었다.
이상하게 난 집단속에 잘 묻히지 못하고 튀어나온다.

  • 해설

수류탄은 실탄이 아닌 뇌관만이 꽂힌 연습용을 던졌다.
수류탄은 무서운 무기인듯.

경민이녀석은 우리의 훈육인데 이녀석의 역할은 담임이 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 안에서는 상당히 높아보이고 진지해보였는데...
나중에 퇴소한 후 하는 것을 보니까 여느 79와 별 차이 없었다.
제복은 관계를 심리적으로 규정하는데 있어서 상당히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일안하고 뺀질거리는 놈들은 정말 꼴보기 싫다.
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일안하는 것보다는 일하는 것이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조금이라도 현명해지고 있는 것일까? 최근의 내 행적을 살펴보면 일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자발적이다.
어리다고 일을 더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녀석들이 일 안하려고 빼는 통에 노인들이 더 일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화가난다.
아무래도 나 역시 한국식 권위주의에 빠져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쁜것일까?

자발적으로 애들이 군가를 가르쳐달라고 말한건 정말 쇼킹했다.
4주밖에 안되는데 그런 말이 나오다니.
아마 그들은 그순간 즐거웠거나 최소한 자신의 모드를 군발모드로 만든것이 분명하다.
나는 죽을때까지 정을 맞을거 같다.
결코 쉽게 남들과 동화될 놈이 아니다...-_-


훈련병의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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