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즈 시킨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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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학자]]인 시미즈 사다간의 장녀
* [[한학자]]인 시미즈 사다간의 장녀


1881년(메이지 14) 교토 부립 제일 고등 여학교를 졸업했다. 1885년(메이지 18) [[민권가]]의 [[대언인]](변호사) 오카자키 하루마사(岡崎晴正, 마사하루(正晴)라는 설도 있다)와 결혼한 후, 여권 신장 운동을 하였다. 1889년(메이지 22) 오카자키와 이별하고, 상경하여 와모토 젠지 주재의 여학잡지사에 입사해  『여학잡지』 기자가 되어 자유민권운동에 힘쓴다. 1891년(메이지 24) 『여학잡지』에 「깨어진 반지」를 발표하여 호평을 받는다. 이듬해에는 농예 화학자의 고자이 요시나오(古在由直)과 재혼했다. 피차별민을 소재로 한 '이민학원'(1899)을 집필하기도 했다. '나츠코의 생각'(1901) 이후 절필했다.<ref>https://www.ndl.go.jp/portrait/datas/6298/</ref>
1881년(메이지 14) 교토 부립 제일 고등 여학교를 졸업했다. 1885년(메이지 18) [[민권가]]의 [[대언인]](변호사) 오카자키 하루마사(岡崎晴正, 마사하루(正晴)라는 설도 있다)와 결혼한 후, 여권 신장 운동에서 활약했다. 1889년(메이지 22) 오카자키와 이별하고, 상경하여 와모토 젠지 주재의 여학잡지사에 입사해  『여학잡지』 기자가 되어 자유민권운동에 힘쓴다. 1891년(메이지 24) 『여학잡지』에 「깨어진 반지」를 발표하여 호평을 받는다. 이듬해에는 농예 화학자의 고자이 요시나오(古在由直)과 재혼했다. 피차별민을 소재로 한 '이민학원'(1899)을 집필하기도 했다. '나츠코의 생각'(1901) 이후 절필했다.<ref>https://www.ndl.go.jp/portrait/datas/629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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