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즈 시킨

1 개요[ | ]

Shimizu Shikin
淸水 紫琴 (しみず しきん)
시미즈 시킨
  • 일본의 소설가
  • 한학자인 시미즈 사다간의 장녀

1881년(메이지 14) 교토 부립 제일 고등 여학교를 졸업했다. 1885년(메이지 18) 민권가대언인(변호사) 오카자키 하루마사(岡崎晴正, 마사하루(正晴)라는 설도 있다)와 결혼한 후, 여권 신장 운동을 하였다. 1889년(메이지 22) 오카자키와 이별하고, 상경하여 와모토 젠지 주재의 여학잡지사에 입사해 『여학잡지』 기자가 되어 자유민권운동에 힘쓴다. 1891년(메이지 24) 『여학잡지』에 「깨어진 반지」를 발표하여 호평을 받는다. 이듬해에는 농예 화학자의 고자이 요시나오(古在由直)과 재혼했다. 피차별민을 소재로 한 '이민학원'(1899)을 집필하기도 했다. '나츠코의 생각'(1901) 이후 절필했다.[1]


오카야마 출생으로 생애는 여권운동가, 잡지편집자, 평론가, 작가로서의 전반생의 경력과 현모양처, 유명부인으로서 가정에 파묻힌 후 반생으로 이분된다. 교통부처 임원의 집에서 자라 14살로 부여학교 및 여홍장의 소학사범제례과를 졸업했다. 18살에 결혼하지만 남편의 다처가 원인이 되어 파탄했다. 간사이의 여권가로서 활약하며 이혼을 체험하고 상경한 뒤『여학잡지』의 기자에서 주필이 된다. 그 사이 1890년의 ‘집회 및 정사법’에서 여성의 정치상 권리가 금지된 것에 대해 『울며 사랑하는 자매에게 고한다』를 실어 이 안에 반대하는 여성 독자에게 호소하기도 하였다. 『감희 동포 형제에게 바란다』에서는 집안의 소군주(남편)로부터의 여성해방을 역설하고 일부일처건백운동을 전개하여, 서경의 여권가로서 그 이름을 알리게 된다. 『처음배우는 일본 여성 문학사』, 어문학사, p37.

작품으로는 1897년 『들길의 국화』(1896년 10월~1월)에서 시킨을 호로하고 이듬해부터는 『마음의 귀신』(1월) 『칡등굴의 뒷잎』(5월) 『아래로 가는 물』(1898년 2월) 『이민학원』(8월)을 계속해서 『문예 구락부』에 발표했다.『이민학원』은 피차별적 부락 출신의 여성 차별로부터의 해방을 내건 시킨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사회소설, 페미니즘 소설로,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 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한편 『여학잡지』1891년 1월 1일호 부록에 쓰유코의 이름으로 발표한 『깨어진 반지』는 성공을 거두었는데, 신형식의 일인칭 구에체를 채용하여 이혼과 여성의 자립을 테마로 한 페미니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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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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