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B2000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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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의 생각 2: 펫 샵 보이즈, 혹은 같은 것과 다른 것

2000년 2월 8일 월요일 저녁 6시 반. 당신과 나는 바로 지난 주 이브를 만났던 그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공연은 8시. 아직 1시간 30분이나 남았다. 당신은 프라하의 맥주 이야기며, 우리 나라보다도 싼 물가, 젊고 늘씬한 미인 아가씨들, 아름다운 도시 등에 대해 쉼 없이 얘기한다. 나도 재미있게 듣고 있다. 당신은 오고 가는 기차에서 RATM과 펫 샵 보이즈의 테이프만 들었다고 했다.

근데 여하튼 펫 샵 보이즈는 어떻게 해서 선정했어요? 일단 여기 그 사람들이 오니까 했고 ...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단은 나도 그렇고 전정기 편집장이나 임근영씨도 펫 샵 보이즈의 엄청난 팬이라니까 ... 그래요? 의외네요. 그럼 사실 나도 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가 옛날부터 해오던 편집진 음악감상회 때 내가 한 번 소개해 보려고 했더니 벌써 펫 샵 보이즈는 다들 꿰어차고 있던데 ... 그래요? 진짜 의외네. 그 분들은 헨리 카우나 브라이언 에노 같은 사람들 아니면 구루구루 밴드 같은 음악만 듣는 줄 알았는데 ... 그게 아니야, 나만해도 국악이나 80년대 팝송, 세계 민속 음악의 - 말대로 - '광팬'인데 뭐, 다른 친구들도 또 자기 좋아하는 분야가 있고. 재미있네요. 또 난 개인적으로 펫 샵 보이즈의 음악이 갖는 나름의 '시대적 의미'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 그게 뭐라고 생각하는데요? ... 음 ... 나는 펫 샵 보이즈가 우리 시대에 보기 드문 '대중 음악계의 장인들'이라고 생각해. 일단 대중성 혹은 상업성이 있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음악성이 없다는 건 얼핏 생각해도 하나의 논리적 오류이니까. 그렇다고 그 역이 항상 참인 것도 아니지만 ... 하여튼, 내가 생각하는 이 사람들의 '시대적 의미'랄까 하는 건 아까 내가 준 펫 샵 보이즈 신보 리뷰에 쓴 그대로야.

디스코테크-댄스 음악의 '시대 정신' 펫 샵 보이즈의 신보 - Pet Shop Boys, , Parlophone/EMI, 1999

1. For Your Own Good 2. Close To Heaven 3. I Don't Know What You Want But I Can't Give It Any More 4. Happiness Is An Option 5. You Only Tell Me You Love Me When You're Drunk 6. Vampires 7. Radiophonic 8. The Only One 9. Boy Strange 10. In Denial 11. New York City Boy 12. Footsteps

펫 샵 보이즈의 일곱 번째 정규 앨범 가 발매되었다. 우선 그들의 정규 앨범 디스코그래피를 알아보자: ① (EMI·1986) ② (EMI·1987) ③ (EMI·1988) ④ (EMI·1990) ⑤ (EMI/Capitol Entertainment Prop.·1993) ⑥ (Atlantic·1996). 이외에도 그들은 디스코·댄스 그룹답게 <Disco: The Remix Album>(EMI·1986), (EMI·1994), (근영 발매연도와 소속사를 적고 연대순으로 배열해 다오·) 등의 리믹스 앨범, 베스트 앨범 <Discography: The Complete Singles...>(EMI·1991) 및 아웃테이크들을 모은 컴파일레이션 앨범 (EMI·1995) 외에도 엄청난 수의 싱글·리믹스 등을 발매했다(www.petshopboys.co.uk).
앨범의 노래들은 아니나 다를까 디스코테크의 거물답게 첫 곡부터 그야말로 '착착 감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앨범을 통해 그들이 이른바 "크라프트베르크-드페시 모드-펫 샵 보이즈"로 이어지는 테크노 (댄스) 계의 '시대 정신'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이 앨범이 그 정신과 음악적 취향에 있어 일정 정도 70년대 풍의 디스코적 '복고' 취향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특히 첫 싱글 'I Don't Know What You Want But I Can't Give It Any More'(이하 'I Don't...')에 이어지는 그들의 두 번째 싱글 'The New York City Boy'는 여러 면에서 70년대의 6인조 디스코 보컬 그룹 빌리지 피플(Village People)을 연상시킨다. 심지어 중간 어떤 부분에서는 빌리지 피플의 'Y.M.C.A.' 리듬이 잠깐 나타나는 듯 하기까지 하다. 이들은 또 다른 한 편에서 자신들이 "빌리지 피플-프랭키 고우즈 투 할리우드-펫 샵 보이즈"로 이어지는 게이 팝 싱어/그룹의 전통을 잇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려는 것일까? - 그들은 93년의 에서 이미 빌리지 피플의 'Go West'를 리메이크해 싱글로 발매한 있다.
그들은 참으로 나름의 '작가주의'로 무장하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은 발표하는 앨범마다 댄스 음악의 '새로운 문법'을 실험하는데, 놀라운 혹은 당연한 사실은 그러한 시도들이 언제나 오늘 댄스/팝 신의 '정통'이 된다는 사실이다(역시 그들의 장점이자 단점은 너무 즐겁고, 너무 가볍고, 너무 좋은 곡들을 너무 세련되고, 너무 편안하고, 너무 깔끔하게 내놓고, 따라서 너무 많은 판이 팔리고, 너무 '주류'가 되어버리며, 그리하여 결국은 그들의 음악이 언제나 너무 '행복'하다는 점이다 - 실은 주류도 참 이상한 주류다. 그들은 항상 '식상한 주류'가 아니라 '대안적·컬트적 주류'가 된다. 이 점에서 그들은 그 정신에 있어 또 다른 '동시대의 얼터너티브 그룹'이 된다).
앨범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들과 함께 몇 명의 '객원 프로듀서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번 앨범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데이빗 모럴즈(David Morales)이다. 앨범의 첫 두 히트 싱글이 바로 그의 작품이며 현악 사용을 포함한 그의 프로듀스·믹싱 작업은 더 할 나위 없이 세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곡들은 이후 세 번째 싱글로 발매된 'You Only Tell Me You Love Me When You're Drunk' 정도를 제외하고는 '펫 샵 보이즈의 곡'이라기엔 그저 평범한 수준이다 - 사실 왜 펫 샵 보이즈가 앨범 전체를 그에게 맡기지 않았는지 의심스럽다. 앨범은 물론 그의 팬들에게 만족을 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기로 마음먹고 있으며, 또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앨범은 참으로 참신한 '펫 샵 보이즈만의 길'을 걸었던 80년대의 앨범들은 물론 최근작 혹은 과 비교해도 무언가 아쉬움을 준다. 이 앨범은 무척이나 '좋은 팝 앨범'이지만, 그들이 다름 아닌 '펫 샵 보이즈'이기에, 그들의 전 앨범 중 '가장 덜 독창적인 정규 앨범'으로 기록되어야만 할 것이다.

  • 한편 이들은 이 정규 앨범 이외에도 이 앨범과 관련하여 99년 12월 현재까지 다섯 종류의 싱글 CD를 발매했는데, 타이틀곡을 중심으로 수록곡들을 살펴보자: ① - i) 이 타이틀곡 이외에도 ii) 'I Don't ... - The Morales Remix' iii) 'Silver Age' iv) 'Screaming' 수록. 이 CD의 마지막 트랙은 타이틀곡의 비디오가 담겨 있다. ② 앞의 CD와 i)번 트랙은 같으나 ii), iii)번 트랙으로 각기 'Thee Maddkatt Courtship 80 Witness Mix', 'Je T'Aime ... Moi Non Plus'가 수록되어 있다. ③ <The New York City Boy> - i) 타이틀 곡 이외에도 ii) 'The Ghost Of Myself' iii) 'The New York City Boy (The Almighty Definitive Mix)'가 실려 있다. 역시 마지막 트랙은 타이틀 곡의 비디오. ④ <New York City Boys> - i) 이 타이틀 곡(Radio Edit) 이외에도 이하 모두 같은 곡의 다음 8 버전 ii) The Superchumbo Uptown Mix iii) The Superchumbo Downtown Dub iv) The Almighty Definitive Mix v) The Almighty Man On A Mission Mix vi) The Thunderpuss 2000 Club Mix vii) The Thunderdub viii) The Morales Club Mix ix) The Lange Mix ⑤ 마지막으로 미국에서만 발매된 앨범의 '한정 스페셜 에디션'에는 정규 앨범과 함께 다음의 보너스 CD가 들어 있다: <Nightlife Extra> - i) 'The Ghost Of Myself' ii) 'Casting A Shadow' iii) 'Je T'Aime ... Moi Non Plus' iv) 'Silver Age' v) 'I Don't ... - The Morales Remix' vi) 'Screaming' vii) 'I Don't ... - Thee Maddkatt Courtship 80 Witness Mix' viii) 'NYCB - The Superchumbo Uptown Mix' ix) 'NYCB - The Almighty Definitive Mix' x) 'NYCB - The Thunderpuss 2000 Club Mix' xi) 'NYCB - The Lange Mix'. 이외에도 이들은 '디스코테크의 왕자'답게 와 등의 몇 장의 '믹싱용' '12-인치 싱글을 발매했다.

펫 샵 보이즈가 동성애 그룹인가요? 그건 몰랐는데 ... 그럼 둘이 애인인가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어. 모르지. 그런데 예를 들어 남녀 혼성 듀오에게 두 사람이 꼭 애인이냐고 물어본다고 해서 - 그럴 개연성이 아마 좀 더 클 수도 있겠지만 - 항상 대답이 예스인 건 아닐테니까, 모르지 뭐. 그리고 어쨌거나 그게 음악에서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 사생활인데 뭐 ... 아니지,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 ... 사실 펫 샵 보이즈를 자기네 '가요 팝 듀오'의 하나로 생각하는 이 곳에서는 상당한 의미가 있지. 서구도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그들처럼 공개적으로 내놓고 활동하기가 여전히 쉽지만은 않을 꺼야. 그리고 그런 점, 그러니까 '동성애적 세계관'이 펫 샵 보이즈의 음악이나 가사, 특히 이미지 구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가요? 그럼 ... 그렇군요. 근데 우리 독자들이 RATM이나 킹 크림즌은 몰라도 공연 취재기에 펫 샵 보이즈도 들어간 걸 보면 되게 놀랄 것 같아요. 그럴까? 왜요? 보통 이런 그룹은 <뮤지컬 박스> 같은 잡지에서는 안 다루잖아요? 그건 그렇지. 이런 그룹 선정을 독자분들이 참신하다고 볼 지는 어떨지는 내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지 ... 그러고 보니까 독자분들이 반응이 벌써 궁금하네 ... 지난 호처럼 이-메일로 의견을 많이 보내주시겠지. 하여튼 기다려 봐야지.

우리가 호프집을 나선 것은 7시 10분쯤이다. 나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입으로는 그들의 걸작 6집 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걸어간다. 그들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내 귀로 직접 라이브에서 볼 수 있다는 흥분이 새삼 몰려왔다. 당신과 나는 한참이나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려 드디어 공연장으로 입장했다. 7시 30분. 안에 들어가 약간 어둑한 조명에 눈이 익숙해지고 주위를 살펴보던 우리는 깜짝 놀란다. 주변에는 펫 샵 보이즈처럼 아주 '모던'하고 아주 '쉭'한 검은 캐쥬얼 옷으로 - 물론 구두와 어깨 가방까지 - 말끔히 차려입고 두 손을 꼭 잡은 멋쟁이 남성 커플들이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 이거 진짜 죽이네요. 난 이런 데는 처음 와 보는데요. 야, 정말 나도 이런 느낌 처음이다, 야! 그러게. 그래도 난 여자나 '그냥'(?) 관객도 훨씬 더 많을 줄 알았는데. 그런 사람들도 적지는 않은 것 같은데 ... 일단 남녀 비율이 한 8:2는 되겠는데 ... 그건 그냥 보통 록 콘서트하고 남녀 비율은 똑 같은데 뭘. 난 그것보다 백인들이 99%인 게 더 놀랍다, 야. 이건 좀 특이한 현상이야. 그래도 다른 팝, 록 공연장에 가보면 유색 인종이 아무리 못 되도 한 10-20%는 되는데 말이야. 파리에 유색 인종들이 얼마나 많은데 ... 남자 관객의 한 반은 동성애자 커플인 것 같은데요. 그렇지? 사람들이 우리도 동양에서 온 애인들인 줄 알겠어요. 그러게 말이다. 사람들이 옷도 되게 깔끔하게 입고 머리 스타일도 그렇고 고급 향수 냄새가 팍팍 풍기는 게 진짜 멋쟁이들인데요. 그렇지? 이런 걸 '펫 샵 보이즈 패션'이라고 불러야 되는 건가 ... 글쎄요 ... 요번 신보 앨범 속지에 실린 바지 입은 사진들에 나오는 옷들 같지? 그러네요, 비슷한데요 ...

우리의 자리는 무대 오른쪽 앞줄, 그것도 첫줄이다. 티켓의 가격이 모두 같기 때문에 이건 우연치고는 정말 대단한 행운이다. 무대와 우리가 앉은 첫줄 사이에는 약 10여명의 사진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도 역시 그들의 유명세를 증명하는 사실일 것이다. 제니트 공연장이 꽉 찬 것으로 보아 관객은 적어도 대략 4000-5000명 가량, 혹은 그 이상이 모인 것 같다. 스스로 작사/작곡/제작을 겸하는 실력파 그룹의 공연답게 무대 위에는 보기만 해도 '최고급품'임을 느낄 수 있는 초대형 스피커들이 설치되어 있다. 나는 스피커 쪽으로 다가가 스피커의 숫자를 세어본다. 일단 무대 양끝 좌우 바닥에는 약 40*60cm 가량의 소형 스피커 24개가 묶여 있는 초강력품이었다. 좌우 합하면 48개다. 무대 위쪽 허공의 좌우에도 비슷한 크기의 스피커들이 각기 21개씩 묶여 있다. 좌우 합하면 42개다. 이들을 모두 합하면 도합 90개의 스피커들이 포진해 있는 것이다. 나는 잠시후의 사운드 충격을 기대하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무대 정면 중앙 허공에는 <Pet Shop Boys World Tour 1999-2000>이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러나 이 스피커와 현수막 뒤의 본무대 전체는 거대한 흰색의 천으로 가려져 있다. 그들의 이번 투어는 데뷔 이후 18년만의 두 번째 월드 투어이다. 첫 번째 월드 투어 91년에 있었던 '91 퍼포먼스 투어'이다. 오늘 공연에 '오픈닝 밴드'(premi re partie)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연장의 스피커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크라프트베르크의 'Radioactivity'가 흘러나오고 있다. 공연은 8시인데, 8시 15분 가량이 되자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며 빨리 공연을 시작하라는 함성을 지른다. 8시 20분, 드디어 장내의 불이 꺼지자 관객들은 열광적인 함성을 지른다. 동시에 수십 개의 녹색 레이저 광선이 중앙의 흰 천에 갖가지 이미지들을 그려낸다. 흰 천이 걷혀 지리라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화면에 두 사람의 거대한 두상이 그래픽 이미지로 나타난다. 동시에 흘러나오는 첫 곡은 ... 'For Your Own Good'이다. 신보 의 첫 곡이다. 신보의 첫 곡인 것은 일반적인 선곡 순서이지만, 더욱이 '(나보다는) 너 자신을 위해서 오늘밤 나에게 전화를 하라'는 재미있는 가사가 라이브의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

Artist: Pet Shop Boys
When: 20H, 8 February, Monday, 2000
Where: Le Z  nith, Paris, FRANCE

Personnels
Neil Tennant: vocal, ac-guitar, synthesizer
Chris Lowe: synthesizers

Danny Cummings: percussion
Sylvia Mason-James: vocals
Keith Anthony Fluitt: vocals
L. Steve Abraham: vocals
Billy Cliff: additional vocals
John James: additional vocals

Peter 'Ski' Schwartz: musical director
Marc Brickman: lighting designer
Ian MacNeil: costume designer/staging consultant

List Of Songs
1. For Your Own Good
2. West End Girls
3. Discoteca
4. Being Boring
5. Closer To Heaven
6. Can't You Forgive Her?
7. Only The Wind
8. What Have I Done To Deserve This?
9. New York City Boy
10. Left To My Own Devices
11. Young Offender
12. Vampires
13. You Only Tell Me You Love Me When You're Drunk
14. Se A Vida
15. I Don't Know What You Want But I Can't Give It Any More
16. Always On My Mind
17. Lies
18. Opportunities (Let's Make Lots Of Money)
19. It's A Sin

(Encore)
20. Go West/It's Alright
21. Footsteps
22. Go West

관중들은 열광하지만 나는 - 직업이 직업인지라 - 귀를 기울여 그들의 사운드며 조절된 튜닝의 감도 등을 파악하려 열심히 노력한다. 사운드는 잘 조절되어 있다 - 적어도 이 첫 곡만은 믿을 수 없이 잘 튜닝되어 있다. 나는 심지어 이게 지금 라이브가 아니라 앨범(혹은 DAT 테이프)을 플레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진지하게 들만큼 놀랍도록 잘 조절되어 있는 사운드에 놀라고 있다(집에 돌아와 글을 쓰는 지금도 이 첫 곡만큼은 혹시 라이브 연주가 아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이후의 정황으로 보아 아마 이 곡 역시도 '라이브' 연주였을 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그래픽 화면 두상의 입이 움직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들은 이미 이 흰 천 뒤에 나와 있을 것이다. 노래가 끝나며 드디어 ... 흰 천이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그 뒤에는 물론 '펫 샵 보이즈', 닐 티넌트와 크리스 로우가 서있다!

이어지는 다음 곡은 ... 'West End Girls'. 그들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들이 무대 미술과 커버 등의 디자인 작업을 위해 최고급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만을 불러서 번 돈을 다 써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무대는 정말 화려했다. 그들은 그 동안 무대 디자인·배경화면·의상 등을 위해 영국 국립 오페라 등과 작업한 데이비드 필딩(David Fielding), 데이비드 아든(David Alden), 영화 감독 데렉 자만(Derek Jarman), 이언 맥닐(Ian MacNeil) 등과 일했는데, 바로 이번 월드 투어 무대도 다름 아닌 저 유명한 이락 태생의 세계적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디자인했다(심지어 공연 팜플렛에 그녀의 인터뷰도 있다-근영, 팜플렛 표지사진을 이 부근에...). 무대 정면 중앙에는 티넌트가 서있고 - 복장은? 앨범 속지에 나오는 그 빅토리아풍의 '울트라 모던' 치마 복장이다! 머리에도 역시 앨범 사진과 같은 노란 색 가발을 쓰고 있다. 우리가 그 우측에 로우가 신서사이저 앞에 서있고, 좌측에는 백인 보조 퍼커셔니스트가 있다. 그리고 4명의 흑인 백 보컬리스트 '아저씨들'과 또 한 명의 흑인 여성 싱어 '아줌마'(?)가 그 중간, 티넌트 뒤에 서있다. 그리고 무대 뒤쪽에는 - 아마도 최근 싱글 'New York City Boys'를 염두에 둔 듯 거대한 배 모양의 구조물이 서있다. 이 '배'는 높이가 한 2-3m 가량 되는데 '예술 작품용' 고급 함석(?)으로 만든 듯 얼핏 보아도 상당히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이 모든 것들과 흥겨운 멜로디, '죽이는' 사운드, 그리고 티넌트의 유머러스한 표정, 특히 '아줌마·아저씨들'의 정겨운 모습이 어우러져 무대는 위나 아래는 할 것 없이 화기애애하다. 관객의 입장에서 공연은 성공이다. 흥에 겨운 관객들이 뛰어나와 무대 아래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런데 ... 가히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 공연장에서 일하는 안전요원들이 사람들이 무대 아래에서 춤을 못 추게 제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 저런 또라이 같은 일이 있나 ... '펫 샵 보이즈 공연에서 관객들이 춤을 못 추게 한다' ... 정말 멍청한 일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꿋꿋이 나와서 계속 춤을 춘다. 역시 관객들은 훌륭하다. 잠시 후 무전기를 든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안전요원들에게 춤을 제지하지 말라고 신호를 보낸다. 이 신호를 보자 사람들이 아까 보다 엄청나게 많은 숫자가 몰려나와 무대 앞을 꽉 채운다. 한 300-400명? 당신과 나는 사람들에게 밀려다니느라 도저히 자리에 앉아, 아니 서서조차도 공연을 볼 수 없는 지경이 된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좀 뒤로 물러서서 객석 중간 정도로 자리를 옮긴다. 'West End Girls'가 끝나자 티넌트가 관객을 향해 '안녕하세요, 펫 샵 보이즈입니다. 사랑, 섹스, 삶 ... 언제가 우리가 자유로워질 날이 올 겁니다'(Bon soir, Nous sommes Pet Shop Boys. Love, sex, life ... One day we'll be free)라는 멘트를 하자 관객들은 열광한다. 아마 동성애 연대 운동을 위한 메시지였을 것이다. 티넌트는 말을 마치자 윗도리 겉옷을 벗는다. 위 아래가 붙어있는 겉옷을 벗자 앨범 속지 사진에 있는 검은 비닐 옷(?)이 나타난다. 바지 차림이다. 이어지는 곡은 'Discoteca'다. 그들의 걸작 에 실린 첫 곡이다. 그들은 연달아 의 'Being Boring', 의 'Closer To Heaven', 의 'Can't You Forgive Her?', (근영 이 다음 곡이 내가 모르는 곡이다. 노래는 조용한 일종의 발라드에 가깝고 맨앞절 가사가 'storm blows itself out'인가 그렇고 후렴은 'It's Only The Wind'이다 - 아마 이게 제목인 듯. 또 한 분의 전문가이신 계수씨와 네가 힘을 합쳐 곡명을 알아내 적어보시도록 하기 바란다...^^) 등을 연주한다. 사운드는 대체로 무척 만족스럽지만 역시 스튜디오 앨범의 정교함, 섬세함과 파워에는 미치지 못한다. 당신과 나는 조금 실망하지만, 우리가 너무도 좋아하는 'Being Boring'을 라이브로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전히 행복감에 넘쳐있다. 관객들은 이미 거의 '몰아지경'에 빠져있다.
이어지는 곡은 2집의 첫 싱글 'What Have I Done To Deserve This?'인데, 원곡에도 듀오로 함께 참여했던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가 무대 뒤 거대한 화면에 등장해 티넌트와 함께 노래를 부른다. 다음 곡은 'New York City Boys'이다. 아까부터 등장해 있다 잠시 퇴장했던 네 명의 백 보컬 아저씨들이 - 이 곡의 분위기나 리듬이 그렇듯 마치 80년대 빌리지 피플(Village People)을 연상케 하는 - 흰색 해군 복장 차림으로 나란히 등장해 코믹한 춤과 함께 코러스를 넣자 관중들은 더욱 흥겨운 분위기에 휩싸인다. 티넌트가 가발을 벗어 던지며 시작된 다음 곡은 의 'Left To My Own Devices'이다. 이 곡을 끝으로 1부 순서가 끝나고 20분간의 휴식이 시작된다. 9시 20분. 공연 시작 한 시간만이다.
20분이 지나자 티넌트와 로우가 다시 등장한다. 이번에는 둘만이 등장한다. 복장도 전형적인 '펫 샵 보이즈 패션'이라 할 검은 바지/셔츠와 흰 점퍼이다. 역시 로우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운동모자를 썼고, 이번에는 티넌트 앞에도 신서사이저가 한 대 놓여 있다. 로우가 건반을 누르자 울려나오는 노래는 의 'Young Offender'이다. 이어지는 곡들은 신보의 'Vampires', 'You Only Tell Me You Love Me When You're Drunk'이다. 그런데 특기할 만한 사실은 마지막 곡에서 티넌트가 의자에 앉아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한다는 사실이다. 그의 기타 실력은 깔끔하고 무난하다. 흠잡을 데 없다. 이 곡에서 퍼커셔니스트와 백 보컬리스트들, 또 다른 한 명의 보조 신서사이저 주자가 등장했다. 이어지는 곡은 의 싱글 'Se A Vida '와 신보의 'I Don't Know What You Want But I Can't Give It Any More', 의 'Always On My Mind'이다 - 우리에게는 원곡인 컨트리 싱어 윌리 넬슨(Willy Nelson)의 곡으로 더 유명하다. 다음 곡은 비디오 화면이 비춰지며 연주되었는데, 현대사의 역사적인 인물, 정치가, 연예인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노래는 신보의 'You Only Tell Me You Love Me When You're Drunk'의 싱글 시디에만 실려있는 아웃테이크 'Lies'(거짓말!)이다. 클린턴과 르윈스키도 나타난다. 이어지는 두 곡은 1집의 'Opportunities(Let's Make Lots Of Money)', 2집의 'It's A Sin'이다. 정말 줄줄이 이어지는 '히트 곡 메들리'이다. 이 곡을 마지막으로 공연이 끝난다. 10시 20분. 주변을 둘러보니 관중들의 얼굴에는 흡족한 표정이 역력하고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 춤을 추고 있다. 관중들이 열렬히 앵콜을 연호한다.
잠시후 다시 등장한 그들이 연주한 곡은 에 수록된 빌리지 피플의 원곡 'Go West', 의 'It's Alright'이다. 마지막 곡 역시 상당히 좋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는 같은 앨범 수록곡 'Always On My Mind'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두 곡이 끝나자 티넌트가 백 보컬리스트 등을 차례로 소개한다. 로우는 그들의 뮤직 비디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제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곡은 신보의 'Footsteps'이다. 다소 감상적인 이 곡이 끝나면서 티넌트가 키보디스트를 소개하고 이어 자신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저희들은 펫 샵 보이즈입니다!" 그들이 마지막 앵콜로 다시 한 번 연주한 곡은 'Go West'였다. 그리고 공연이 끝났다. 10시 45분이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늦은 전철 안에서 나는 오는 공연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 본다. 공연은 우선 '엔터테인먼트'로서는 100점 짜리 공연이었다. 그들과 관객 모두가 즐겁고 만족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나 자신도 느낄 수 있었다. 이것만해도 이미 공연은 성공적이다. 사실 '이것만'이라고 했지만 한 아티스트로서 이 '이것'을 실제로 달성하기는 정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들은 역시 실력 있는 뛰어난 뮤지션, 엔터테이너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적어도 '젠 체 하는' 구역질 나는 위선이 없다. 나는 송 리스트를 꺼내어 선곡된 곡들을 앨범별로 정리해 본다: 1집 2곡, 2집 2곡, 3집 3곡, 4집 1곡, 5집 3곡, 6집 2곡, 신보인 7집 7곡 및 그 외 아웃테이크 2곡 등이다(본문 및 송 리스트 참조).
나는 종이의 여백에 오늘의 공연을 이렇게 정리해 본다: 1) 그들의 본령은 역시 '팝' 음악이었다. 이러 면에서 일단 오늘의 공연은 엔터테인먼트라는 측면에서는 100% 대성공이었다. 그들을 프로그레시브 혹은 전위 음악의 기준에서 평가하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2) 그들은 역시 뛰어난 '스튜디오 뮤지션들'이다. 오늘 라이브의 '사운드'는 대체로 스튜디오 앨범의 그것을 밑돌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들의 스튜디오 앨범의 사운드는 라이브의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 물론 스튜디오 앨범의 섬세하고 깔끔한 사운드를 라이브에서 바라는 것은 어느 아티스트에게나 지나친 요구이다. 더욱이 지난 6집 앨범의 소리가 너무 좋아서 상대적으로 실망스러웠던 측면도 있을 것이다. 물론 '라이브에서 스튜디오 앨범의 소리를 듣기' 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라이브에서만 듣고 느낄 수 있는 그 거친 힘과 현장성, 혹은 카리스마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오늘 공연에서 아쉬웠던 점이다. 사실 이 글만 읽는 분들은 그들의 라이브가 '형편없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전체적인 사운드와 테크닉은 실로 '평균점을 훨씬 웃도는' 뛰어난 공연이었다. 아마도 우리의 기대가 너무 높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3) 그들 음악에 있어서의 '패러다임 체인지'를 가져왔던 앨범은 역시 88년의 3집 였다. 라이브의 모든 곡들은 그 나름으로 훌륭했지만 이 앨범의 곡들을 제외하고는 스튜디오 원곡의 세련됨과 파워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Left To My Own Devices', 'Always On My Mind', 'It's Alright' 등 3집의 곡들은 심지어 스튜디오 버전을 능가하는 라이브적 아우라와 사운드적 쾌감을 선사했다. 그들이 88년의 이 3집 이후 96년의 을 거치는 8년의 세월 동안 발표한 4장의 정규 앨범들은 모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안정된 기술적 완성도와 아름다운 팝 적 멜로디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99년 발표한 7집 에서 무엇인가 변화를 추구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적 실험은 그리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 그렇다고 그들이 '맛이 갔다'던가 한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그들은 여전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4) 마지막으로, 그들은 80년대의 프랭키 고우즈 투 할리우드(Frankie Goes To Hollywood)이래 맥이 끊겼던 주류 팝 음악 내의 '조용한' 게이 운동가들이다. 그들의 음악과 가사, 그리고 뮤직 비디오 등 전체적인 이미지는 '결코 공격적이거나 배타적이지 않으면서도 성적 정체성으로 대변되는 어떠한 나 혹은 너와 다른 모습들도 모두 - 결코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혹은 강요하지 않으면서, 때로는 즐겁게 또 때로는 가볍게 - 포용한다'는 게이 무브먼트(gay movement)의 이념에 적절히 부합한다. 이런 모든 면에서, 그들은 오늘의 다른 많은 그룹들과 많이 '다른' 그룹이다. --허경, 2001

RATM20000203 > PSB20000208 > KingCrimson20000306 로 이어지는 글입니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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